비마이너·전장야협 연속특강③ - 황지성 여성주의 장애학 연구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장애학의 주제들

비마이너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는 '빈곤과 차별의 시대를 넘어 장애인운동의 전망 찾기'라는 주제로 연속 특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9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9월 4일까지 격주 목요일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진행됩니다. 비마이너는 전 강의 내용을 요약해 싣습니다. _ 편집자 주
 
1. 국가에 맞서는 '인권'과 '인권들'(정정훈 수유너머N 연구원)
2. AIDS 인권운동과 장애인운동, 어떻게 만날까(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3.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황지성 여성주의 장애학 연구자)

4.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가?(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5. 활동지원서비스 시장화, 문제점과 대안 찾기(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원)
6. 관계에서 피어나는 놀이 - 장애문화예술교육의 길 찾기(최선영 로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자)
7. 왜 장애인권리보장법인가?(남병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8. 국가와 싸우는 밀양의 목소리를 듣다(이계삼 밀양송전탑대책위 사무국장) 

 

‘진정한 우리’, ‘진정한 여성’은 없다. 여성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서구/남성의 대립항으로서 ‘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것이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중

 

여성주의는 ‘여성’을 찾고자 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을 나눠 특정한 성을 억압하는 권력, 전형적인 ‘여성’과 ‘남성’에서 벗어난 이들을 배제하는 구조 등에 맞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언뜻 당연하게 보이는 사회 구조에 질문을 던져, 이런 구조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밝힌다. 여성주의는 거듭되는 질문을 통해 성적 차이로 구성된 사회 구조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 혹은 자연의 섭리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게 아니라는 것을 드러낸다. 오히려 그 뒤에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고 억압, 배제하는 권력이 있음을 폭로한다.

 

여성주의의 방식은 세상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고 장애인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사회 구조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에 물음을 던지고 실상을 밝혀내는 장애학의 방식도 여성주의와 유사하다.

 

▲황지성 여성주의 장애학 연구자.

 

비마이너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가 격주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연속특강 세 번째 시간은 이렇듯 장애와 질병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기획됐다.

 

강사로 나선 여성주의 장애학 연구자 황지성 씨는 장애와 질병을 규정하는 사회 구조를 밝히고, 앞으로 장애인운동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를 모색했다.

 

먼저 황 연구자는 여성주의가 여성만을 위한다는 오해와 달리, 성별로 권력을 나누는 총체적인 체계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장애를 여성주의적으로 본다면 장애를 특수화하기보다 장애-비장애를 가르는 권력체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 구성원을 장애-비장애로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남들과 다른 몸으로 말미암아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구분되는 듯하다. 또한 비장애인 중심사회에서 겪는 억압의 경험은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위치 짓는 요인들이다.

 

그러나 황 연구자는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이 그렇게 절대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청각장애인은 통념상 듣는 기능이 손상된 ‘장애인’이지만, 일부 청각장애인은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청인과 다른 언어로 소통할 뿐이며, ‘장애인’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길 뿐이다.

 

만성질환, 나이 듦과 같이 신체·정신적 기능이 ‘손상’된 상태라도 보통 장애인으로 불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면 여성이나 유색인종은 신체·정신적으로 ‘열등한 사람’으로 여겨져, 과학을 통해 이들의 ‘열등성’을 입증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들은 장애인으로 여겨지지 않으나, 특정한 시기나 공간에서는 이들도 장애인으로 간주한 적이 있다.

 

더욱이 같은 장애인이라도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이 느끼는 장애 경험은 같지 않다. 장애남성에게 장애는 역동적일 것을 주문하는 남성성의 상실을, 장애여성에게는 소극성을 강조하는 여성성의 강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은 성적 차이 등 사람을 구성하는 다른 정체성보다 언제나 우선할 수 없다.

 

황 연구자는 “장애 범주는 잘 정의되기 어렵다. 사회적 상황과 젠더·인종 등에 따라 유동하는 범주이기 때문”이라며 “장애가 다른 어떤 차이들과 떨어진 독자적인 차이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애 범주에 관한 문제는 곧 장애를 규정하는 관점과 연관된다. 장애에 관한 관점은 장애를 개인의 손상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의료적 관점’과 법·제도·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유발한다는 ‘사회적 관점’으로 나뉜다.

 

그러나 황 연구자에 의하면 여성주의 장애학은 의료적 관점과 사회적 관점 모두를 비판한다. 몸의 손상과 사회적인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위험천만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장애를 입은 사람, 환경오염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장애아 등 손상과 사회적 상황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한 장애를 유발하는 사회 구조를 모두 제거한다고 해도 장애인이 손상으로 겪는 고통이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황 연구자는 사회적 관점이 자칫 ‘건강한 장애인’을 전제해, 실제로 장애인들이 손상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는 것을 외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황 연구자는 최근 여성주의 장애학에서 새롭게 제안된 '정치적·관계적 모델'을 소개했다. 정치적·관계적 모델은 손상과 장애 모두 사회 내 권력관계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관계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렇기에 정치적·관계적 모델에서 보는 장애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유동적이다.

 

황 연구자는 “모든 사람의 몸은 불안정하다. 어떤 외부의 오염이나 손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은 하나도 없다.”라며 “누가 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모든 사람의 몸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황 연구자는 “사람의 몸이 완전하다고 하는 바로 그게 이데올로기, 정상신체 중심주의이자 권력이다”라며 “천박한 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우더라도, 이러한 것들을 밝혀내는 게 우리의 궁극적 투쟁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밝혔다.

 

▲강의를 듣는 참가자들.

 

마지막으로 황 연구자는 장애와 재생산 문제를 다뤘다. 황 연구자는 최근 의료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의 발달로 장애를 부정하는 담론과 지식이 퍼지고 있으며, 이에 최근 장애학에서 장애와 재생산 영역을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의 임신, 출산 등은 대체로 환영받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 세계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단종시술이 이뤄진 바 있으며, 장애인으로 의심되는 태아의 낙태를 허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모자보건법 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에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재생산과 관련한 의료적 지식과 생명공학기술은 장애를 없애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생물학자들이 우성 인자와 열성 인자의 유전을 발견하자, 근대사회는 ‘열등한’ 인자를 말살하는 우생학을 만들어냈다. 태아의 상태를 감지하는 기술은 태아의 장애를 확인하고 장애를 예방, 제거하는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으로 임신 전 단계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부모의 장애를 알아내고 장애 형질을 없애는 기술이 개발되기도 했다. 얼마 전 공중파 방송에서 유전성 장애를 제거한 여성의 사례가 소개됐다. 그녀는 의료기술을 통해 장애 없는 아이를 출산해 대중의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황 연구자는 “의료기술이란 것도 결국 실험실에서 따로 만들어져 인간에게 전달되기보다, 인간의 욕망이 의료기술을 만드는 것”이라며 “정상신체 중심사회의 욕망, ‘미래에 장애는 없어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의료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황 연구자는 “사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미래에 장애를 완전히 없애거나 치료할 순 없다”라며 “다만 기술의 존재는 ‘장애를 없애야 한다’, ‘없어져야 한다’는 인식만을 확산할 뿐 실제로 의학으로 없앨 수 없고, 장애의 현존을 못 보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장애로 말미암아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위독할 때조차 기술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장애아를 기르며 고통받는 장애인 부모가 생명공학에 기대 아이의 장애를 없애려는 시도를 매도할 수만도 없다.

 

황 연구자는 “발달하는 의료기술을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라며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미리 무엇인가에 대해 선악의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황 연구자는 “‘장애가 보존되어야 하는 것인가’, ‘장애라는 게 보존됐을 때 우리 사회에는 어떤 이익이 있느냐’ 이런 문제를 논쟁할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과제를 남기며 이날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강의를 마쳤다.

 

아래는 황지성 연구자의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 강의 전문이다.

 

[ 강의 전문 펼처보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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