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부산 고숙희, 원주 이석광, 경산 하용준 활동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한 10회 전국장애인활동가대회(아래 활동가대회)가 지난 23일부터 2박 3일간 대전장애인고용공단 직업능력개발원에서 열렸다. 올해 활동가대회에는 갓 활동에 나선 새내기부터 매년 참가해온 활동가 등 다양한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참여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활동을 다짐했다.

 

올해 활동가대회를 통해 장애인운동의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 활동가부터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중견활동가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부산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고숙희 활동가 (23세, 뇌병변장애 2급)

 

▲부산 삶장애인자립생활센터 고숙희 활동가.

“솔직히 오기 싫었어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부산시청 앞 투쟁이 중요한데…. 거기 있지 못하고 여기 오는 게 정말 미안했어요.”

 

부산시청 앞에서는 420장애인차별철폐부산공동투쟁단이 장애인콜택시 ‘두리발’의 부산시 직영화와 활동보조서비스 24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14일째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활동가대회가 열린 지난 24일은 농성 9일째였다.

 

고 활동가는 20년간 장애인시설에서 살다 지난해 11월 시설에서 나왔다. 시설에선 자신만의 시간도, 누릴 자유도 없었다.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다행히 체험홈에 들어갈 수 있었고 올해 6월 원룸으로 옮겨 진정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부터 장애인운동에 관심이나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자신만 다치는데 왜 굳이 힘들게 나와 싸우는 걸까’ 싶은 생각에 꺼렸다. 그런데 지난 2월이었다. 서울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참가했는데 경찰이 그녀에게 그러더라.

 

“장애인이 왜 나와서 지랄이야.”

 

모욕감이 들었고 분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가 안 바뀌는구나, 내가 안 하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부산시청 앞에 두고 온 동지들 때문에 오기 싫었던 활동가대회였지만, 처음 참가한 이곳에서 열심히 투쟁하는 다른 지역 활동가들의 소식을 접하니 대단하기도 하고 반갑고 뿌듯하다.

 

그녀가 이번 활동가대회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프로그램은 토론연극이다.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갈등을 다룬 토론연극은 연극 속 상황을 관객이 직접 개입해 바꿔나가는 관객 참여형 공연으로 진행됐다.

 

고 활동가는 활동보조 이용자로서 평소 생각했던 문제점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그것을 이용자들이 직접 바꿔나가는 것에 해방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현재 고 활동가의 활동보조 시간은 40시간밖에 안 된다. 뇌병변장애로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서 식사도, 요리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부산에서 장애인운동 활동가로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원룸으로 옮겨 자립생활을 하면서 꼬박꼬박 들어가는 월세가 부담스럽다. 비싼 방도 아니건만 적은 활동비 탓에 활동비보다 방값이 더 나간다. 그럼에도 그녀는 “힘들지만 힘내야죠”라고 자신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그녀는 활동가대회 오기 전날까지 부산시청 앞 노숙농성에 함께하다 왔다. 그리고 활동가대회를 마치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 강원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석광 씨(30세, 지체장애 1급)

 

▲강원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석광 씨.

이석광 씨는 활동가대회가 낯설다. 아직 ‘활동가’라 칭하기에도 어색한 빛을 띠는 그는 원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개로 올해 처음 참석하게 됐다. 

 

이 씨는 이번 대회에 와서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외국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한국과 같이 강고하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이 씨는 9년 전 다이빙 사고로 경추가 손상되어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다. 이후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더는 가족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 1년 전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자립생활을 하니 전보다 활동보조 시간은 늘었으나 그에겐 여전히 부족하다. 그는 24시간(월 720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하지만, 현재 받는 시간은 강원도 추가 시간을 포함해 겨우 520시간이다.

 

활동보조가 퇴근한 밤엔 방안에 혼자 누워 있어야 한다. 이 씨는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다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불편하다”라고 했다.

 

욕창 방지를 위해 몸의 자세를 수시로 바꿔줘야 하는데, 체위 변경도 하지 못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밤이 너무 길다.

그럼에도 그는 올해 독립하고 난 뒤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다. 재밌어서 택한 공부라기보다 ‘이거라도 하자’라는 결심으로 택한 것인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자신이 뿌듯하다고.

 

장애를 입은 뒤 이 씨는 바깥 외출이 뜸해졌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 있을뿐더러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원주에서 대전으로의 외출은 그에게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전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보니 그 또한 관심이 생기고 함께하고 싶지만, 몸이 자신의 마음 같지 않다.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데 몸이 좋지 않아서” 그는 우선 마음만 보태고 있다.

 

#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하용준 소장(32세, 뇌병변장애 1급)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하용준 소장.
“전국 각 지역에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꾸려서 활동가대회에 오는 거 보면 부러워요. 우리도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오고 싶네요.”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경산센터) 하용준 소장은 올해로 8번째 활동가대회에 참가한 ‘고참’ 활동가다. 그가 활동하는 경상북도 지역에는 아직 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장차연)가 없어, 활동가대회에 올 때마다 부러움과 아쉬움이 든다.

 

하 소장은 경북지역에서 진보적인 장애인단체는 경산센터, 안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안동센터) 등 몇 군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경북지역의 장애인 인권 상황도 열악한 편이다. 특히 경북에서 장애인들이 이동할 수 있는 저상버스나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이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등 이동권이 열악했다.

 

“경북지역은 땅 자체가 크고 길이 험해서 도내로 다니기 험한데다가, 특히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거의 없어요. 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기차가 다니지 않으면, 버스에 타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도내를 거의 이동할 수 없죠.”

 

이런 상황에서 하 소장을 비롯한 경산지역 활동가들이 4년 전 경산센터를 설립하고 지역에서 진보 장애인운동의 씨앗을 움터냈다. 이들의 투쟁으로 경산시청으로부터 장애인콜택시 도입과 활동보조 시비 지원 등 일부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하 소장은 경산시청을 상대로 한 투쟁으로는 경산 일부만을 변화시킬 수 있었을 뿐, 도 전체 차원의 성과를 이뤄낼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 소장이 경북도청을 상대로 한 투쟁에 나서게 된 이유다.

 

“4년 동안 경산에서 투쟁하면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경산에서만 이동권 투쟁을 진행하니, 다른 시도에는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없었죠. 활동보조도 경북도청이 활동보조 추가시간을 제공하지 않으면 도의 지침을 따르는 시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도 차원의 문제를 풀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겠다 싶어서 경북도청에 초점을 맞추고 장애인단체들이 연대했어요.”

 

▲활동가대회 문화제 조별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하용준 소장.

 

경북지역에 있는 경산센터, 안동센터, 15개 시군의 부모단체는 올해 3월 말 420장애인차별철폐경북공동투쟁단(아래 420경북공투단)을 꾸려 경북도청을 대상으로 한 투쟁에 나섰다.

결국 420경북공투단은 지난 6월 11일 전국 장애인단체들이 연대한 결의대회를 통해 △시내버스 대폐차 물량 저상버스 도입 △2016년까지 특별교통수단 법정 대수 확보 △활동보조 24시간 시군별 1명 이상 지원 등의 성과를 얻어냈다.

 

하 소장은 “지난 6월 11일에 전국적으로 연대해서 감사했다. 솔직히 경북장차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경북의 사안만 보고 같이 연대해준 지역장차연 분들께 고맙다.”라며 “앞으로 우리도 다른 지역에서 투쟁했을 때 적극적으로 결합하려 한다”라고 강조했다.

 

하 소장은 대학생 때인 지난 2006년 활동가대회에 처음 참가했고, 2009년부터는 경산센터 소장으로 참가해왔다. 그리고 이제 경북장차연 활동가로 참가하는 첫 활동가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경북장차연 출범은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빠르면 올해 하반기에서 늦으면 1~2년 정도 보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경북지역은 진보 장애인운동 조직이 적고 주류 장애인단체가 힘이 세요. 그래서 경북지역 활동가들은 기성 단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운동적인 조직을 만들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경북에서 몇 군데 장애인운동단체를 만들고, 이를 초석으로 삼아 경북장차연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음 활동가대회에는 경북장차연 활동가로서 참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지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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