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아이 거부 사건으로 부각된 대리모 산업의 비극
제3세계 여성 ‘번식자 계급’, 아이 ‘생산품’, 장애아는 ‘불량품’
최근 태국 대리모에게서 태어난 장애아가 호주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대리모 산업의 문제점이 주목받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12월에 일어났다. 태국 방콕 촌부에 사는 파타라몬 찬부아(21)씨는 중개인으로부터 40만바트(약 1288만 원)의 돈을 받고 호주인 부부의 대리모가 되었다. 그런데 임신 4개월 때 태아질환검사에서 쌍둥이 중 한 아이가 다운증후군에 심장과 폐 질환까지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호주 부부는 파타라몬에게 1600호주달러(약 150만 원)를 더 주면서 낙태를 종용했다. 그러나 그녀가 불교 신자로서 그럴 수 없다며 아이를 출산하자 호주 부부는 건강한 딸 아이만 데려갔다.

파타라몬은 선천적인 장애가 있는 아들 ‘가미’를 자신이 직접 키우겠다고 했지만, 이를 위해선 심장 수술비 75만바트(약 2415만 원)가 필요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호주 자선단체는 대대적 온라인 모금을 벌여 지난 3일까지 20만호주달러(약 1억9300만 원)를 모았다. 이 단체는 이를 가미의 수술비와 앞으로 양육비 등으로 전액 후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서는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대리모 산업의 문제점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호주 외교 당국은 태국 정부와 협조를 통해 대규모 대리모 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여성의 자궁은 물건을 담는 자루나 여행가방일 뿐”?
태국은 현재 금전 거래를 통한 대리모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임부부의 확산 등으로 세계적인 수요가 많아지고, 이에 따라 공급도 맞아떨어지면서 불법 대리모 시장은 암암리에 팽창하고 있다. 한편, 호주는 각 주마다 규제 정도가 차이가 나는데 대리모 규제가 있는 지역에서는 인도와 태국, 미국 등에서 대리모를 찾는 수요가 매년 400~500명에 달한다.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태국에서 대리모 산업이 이토록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주로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찬부아의 경우도 이미 결혼을 해서 자녀가 둘이나 있었지만, 집안이 떠안은 빚을 갚기 위해 대리모가 되었다. 2002년 대리모 시술을 합법화한 인도에서 매년 대리모를 통한 출산이 3만 건을 넘어서고 있는 것도 이런 경제적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리모 산업의 팽창은 가난한 나라의 여성을 ‘신종 노예’로 만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태국 대리모 사건’이 알려진 직후 영국 <가디언>지에 실린 한 칼럼에서는 대리모 산업이 “특권계층을 위해 가난한 여성의 몸을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그릇으로 취급하는 뒤틀린 노예제”라고 꼬집었다.
인도와 같이 대리모가 합법화된 나라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대리모 시술을 받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이 준비되어 있고, 가난한 인도 여성들은 부유한 나라의 불임 부부를 위해 자신의 자궁을 빌려줄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는 세계적인 ‘아기 공장’으로 불릴 지경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자신의 책 '나를 빌려드립니다'(이매진, 2013)에서 대리모 산업이 가난한 나라 여성에게 주는 어두운 이면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에서 한 의뢰인 부부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라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본다. 그러나 ‘아기 생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인도의 대리모 여성들은 그동안 만져볼 수 없었던 큰 수입으로 가족을 위기에서 구하거나 그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고 고백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자궁을 물건을 담는 자루나 여행 가방처럼 몸 밖에 존재하는 단순한 운반 수단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리모 산업에 뛰어든 빈민 여성들은 ‘번식자 여성’이라는 새로운 하층 계급을 형성하게 된다는 지적이다.
상품이 되어버린 '아이'와 불량품으로 폐기되는 '장애아'
하락하는 여성의 지위와 더불어 직결되는 문제는 출산하는 아이가 어떻게 취급되는가이다.
대리모 산업을 옹호하는 이들은 체외수정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대리모 여성 사이의 자유롭고 공정한 계약만 이뤄진다면 대리모 산업의 부작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의뢰인 부부와 대리모 여성 간에 발생하게 될 부모-자녀 관계를 둘러싼 법률적 문제는 초기에 작성한 계약서를 잘 따르면 되는 정도의 문제로 취급된다.
그러나 아무리 계약서를 잘 작성하고 이를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출산한 아이의 지위는 오직 ‘생산품’일 뿐이다.
생태주의 여성학자로 알려진 마리아 미스는 '에코 페미니즘'(창비, 2000)이라는 책에서 “대리모는 여성의 가사노동 착취와 유사하게 기능하는 새로운 ‘청부산업’이 되었다. 기업가(남성)는 원료의 일부(정자나 그가 사들인 기증 난자)와 ‘임신수행자’ 여성에 대한 대가를 선지급한다. 그러나 생산품은 양도되어야 한다. 즉 생산자로 하여금 그들이 생산한 물건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상품이며, 그들이 하는 일이 소외된 노동이란 점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는 지점은 ‘태국 대리모 사건’에서처럼 '생산된' 아이가 의뢰인 부부가 원하지 않은 건강하지 못한 아이일 경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아이가 유전자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사례가 여럿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결함이 있는 태아를 제때 발견해 유산시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즉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는 거대 대리모 산업에서 단지 ‘불량품’으로 취급되어 폐기처분 될 위기에 처한다.
결국, 대리모 산업은 출산 시기부터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되어 장애에 대한 낙인화, 그리고 더 나아가 건강한 인간에 대한 서열화를 부추길 것이란 우려를 낳게 된다.
혹실드의 '나를 빌려드립니다'에 따르면, 최근 대리모가 신흥 산업으로 커 나가고 있는 미국에서는 일부 대학신문에 난자 모집 광고들이 실리는데, 이 광고들에서는 기증자에게 1만 달러(약 1천만 원)에서 많게는 3만5천 달러(약 3천5백만 원) 이상의 보상을 약속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금액 차이는 정확히 난자 기증자의 학업 성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학업 성적이라는 소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통해 장애 선별은 물론 우수한 형질의 인간을 출산 단계에서부터 뽑아내겠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정자은행인 '자이텍스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는 예비 고객들에게 태어날 아이의 예상 속눈썹 길이, 주근깨 유무, 기질 분류 테스트 결과를 포함하는 리스트를 제공한다고 한다.
<가디언>지는 이번 ‘태국 대리모 사건’을 접한 후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가 “믿을 수 없이 슬픈 일”이라며 “대리모 산업의 함정이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여성을 단지 한 번 쓰고 버리는 ‘아이 생산 기계’로 취급하고, 장애아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출생 이전부터 이를 걸러내고자 하는 시도가 단지 대리모 산업의 함정에 불과한지, 아니면 대리모 산업 그 자체의 모순인지는 국제사회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