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우리 회사 상품팀에 입사한 장애인 직원
'유통의 꽃'이라고 하는 MD까지 되면 좋겠다

올 봄 회사에 처음으로 장애인 직원이 들어왔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걸음도 잘 못 걷지만, 상품팀 MD(바이어)들 보조업무를 맡아 수월하게 해내며 가끔은 옥상 올라와서 구부정하게 담배도 피고, 다른 직원들과 말 나누는 것도 보곤 했다. 전해 듣는 근태나 평판도 좋았다. 그런데도 아직 내 쪽에서 먼저 말 걸고 인사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장애인을 가까이에서 처음 접해보는 직원들이 더 거리낌 없이 인사하고, 남들 대하듯 말 걸고 요즘 어떠냐고, 일은 괜찮냐고 묻곤 했다. 광장이든, 철탑이든, 천막이든 가끔씩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고정된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비슷한 느낌도 조금은 받았다.
얼마 전 회사 1층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 직원이 절룩거리며 혼자 들어왔다. 식당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밥을 혼자 먹나 했더니 그건 아니었고 김밥을 주문하고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니 여러 줄이었다. 자기 팀 사람들 심부름까지 포함된 모양이다. 왠지 기분이 상했다. 뭐야 저 팀 사람들. 왜 하필 몸 불편한 사람을…
아. 뒤늦게 아차, 싶었다. 몸이 불편하면 뭐가 어때서? 출근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다. 그저 좀 더 시간이 걸릴 뿐이다. 팀 막내가 김밥 심부름하는 건 회사라면 대부분 다 똑같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만류도 했을 것이다. 그가 먼저 나섰을 모습이 그려진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그리고 그걸 불편하게 보는 시선을 그는 더 불편해했을 것이다.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비장애인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가 있고, 그걸 똑같이 보장해주는 게 이 사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잘나게 머리에 욱여넣은 것들이 한순간에 참 부끄러워졌다.
와글거리는 식당에 혼자 있으면 시선 두기 어색해 그렇듯 그 역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에서 내 막내 시절 모습도 보였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웃으며 하나하나 알아가고 일해가다 보면 나중에는 지금이 다른 색깔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들보다 일하기 힘든 몸을 이끌고 남들이랑 똑같이 일하는 그에게, 분식집을 나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목례를 건넸다.
그가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 대리도 달고 과장도 달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품팀에 있는 한, 실력도 많이 쌓아서 "유통의 꽃"이라고 하는 MD까지 되면 좋겠다. 한국 최초의 장애인 MD가 꼭 되어줬으면 좋겠다. 전국을 발로 누비며 좋은 상품을 구해오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좋은 상품을, 그라면 반드시 전국의 매장에 깔 수 있을 테니까. 
뱀발) 1990년 무렵 불꽃처럼 타올랐던 장애인들의 투쟁으로 얻어낸 제도 중 하나인 장애인의무고용제가 올해로 25년에 달한다. 민간사업주에 대한 의무고용률은 매년 조금씩 올라서 2014년에는 2.7%에 육박한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되며,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으면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2013년 말 기준 약 70억 원의 고용부담금이 부과됐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연간 4억 원을 고용부담금으로 납부했으며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을 1명 고용했다. 7천 여명 회사의 의무고용 장애인 직원 수는 184명이고, 지금 1명이니 아직은 0.01% 수준이다. 장애인고용공단이 기업 세수로 유지되는 데 비해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장애인 고용은 사회적 연대와 기업의 비용절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행위로 적극 장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애인 직원들도 업무에서 비장애인들 보란 듯이 성과를 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는다.
뱀발2) MD : 머천다이저(Merchandiser). 유통회사의 바이어 개념. 하지만 바이어(Buyer)가 단순히 구매자를 일컫는 데 비해 상품의 선정, 구입, 진열, 판매 전반에 걸친 특화된 업무능력과 권한을 갖는 직책. 그 업무 성격 때문에 업계에서는 "유통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해태 님은 어느 마트에서 일하는 5년 차 직장인입니다. 직급으로 불리기보다는 매장에서 일할 때 단골 아주머니들에게 '삼촌'이라고 불렸던 호칭을 더 좋아합니다. 필명(별명)은 특정 회사와는 아무 관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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