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투쟁에서 활동보조가 뭔지 알게 되었어요"
"무섭고, 어리둥절하고, 전경의 과격진압에 분노하기도"

나와 무관했던 세계에 '나'를 들여놓게 하는 '첫' 힘으로부터 '나'는 시작된다. 어떤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처음'은 설렘이자 두려움이다. 제6회 전국장애인운동활동가대회에 진보 장애인운동의 소통과 실천을 위해 모인 활동가들의 첫 투쟁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왜 이 사회에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며 자신의 권리, 나아가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거리로 나섰는지 전국의 활동가들의 '첫 투쟁'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를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 모경훈 사무국장.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모경훈(지체장애 1급) 사무국장은 2002년 장애인연금법 제정 투쟁을 통해 활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은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 불합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며 크게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전경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에서 어떤 반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받은 인상이 지금까지 장애인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모경훈 사무국장. 원래 애니메이션 관련일을 하고 싶었고, 장애인문제나 인권 등의 내용을 담은 웹툰을 발표하면 그것을 보고 자란 어린 세대들이 지금보다 인권 쪽에 관심을 두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사회를 좀 제대로 만들고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학교의 운동 단체나 장애인 동아리 등에 왠지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형식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어서였죠. 하지만, 친구를 통해 장애인운동이 기존의 활동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운동이라는 것 자체는 날 위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 한 것이기도 하지요. 운동은 바로 나를 이 세상을 만드는 주역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움직임" 

▲ 황민규 간사.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황민규(뇌병변장애 2급) 간사는 2009년 420 투쟁이 활동의 시작이었다. 그는 첫 투쟁의 날 온몸에 사무쳤던 시린 바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은 이상기온 때문에 날씨도 몹시 추웠어요. 당시 우리의 요구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런 움직임이 모여 사회가 조금씩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가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매우 의미 있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해요." 

 

황 간사는 노원중증장애인독립생활센터 오성환 대표의 권유로 장애인운동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고, 활동가로 일한 지는 1년 6개월이 지났다. 장애인운동 진영에서 일하는 것이 경제적인 면 등에서 매우 힘들지만, 활동가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되어준 이가 바로 오 대표였다. 그는 오 대표가 하고자 했던 장애인운동 관련 일들이 매우 의미가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되었고 열정도 높게 느껴져 조그만 힘이지만 보태기 위해 활동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노원센터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발걸음을 동료와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비록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걸음이 모여 서서히 사회를 바꾸리라고 믿기 때문에.

"경찰들이 장애인들에게 너무 과격하게 진압해 나도 모르게 화가나서...."

▲조상래 소장.

"먼저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투쟁을 하고 싶어요. 나아가 장애인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투쟁하고자 합니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삶'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상래(뇌병변장애 1급) 소장은 사회당으로부터 시위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나선 것이 장애인운동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2006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렸던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보조 요구 시위가 그가 참가한 첫 투쟁이었다. 처음 참가한 투쟁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마냥 두려움을 느낀 채로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는 조 소장. 그러나 중증장애인에 대한 경찰의 과격한 시위 진압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느껴 동료와 함께 온몸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로부터 장애인운동의 현장에서 묵묵히 활동해 온 조 소장은 부산 지역 활동가들과 함께 지역 내에서 진보 장애인운동을 펼쳐가려고 한다.

"부산에는 현재 30명 정도의 장애인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지난 7월 30일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투쟁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장애인의 권리 쟁취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해나갈 것입니다."

"활동보조가 뭔지 알게 되었어요."

 

▲이철영 씨.

현재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철영(지체장애 1급) 씨는 투쟁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선 존재였다. 그러나 지난 1월 지인을 따라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하게 되어 장애인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의 첫발을 디뎠고, 장애인운동에 대해서 조금씩 시야를 넓혀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씨는 이전까지 활동보조 서비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투쟁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활동보조가 무엇이고 장애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처음 참여하는 시위라 너무 떨렸는데 한번 하고 난 후론 겁이 없어졌어요. 우리가 내세운 요구를 안 들어줄 때는 화가 나기도 해요. 정부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도 해요."

이 씨는 투쟁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요구하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올해 활동가대회에도 참여하는 등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조금씩 활동영역을 넓혀가면서 자립생활을 준비하고 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 많다는 것을 느꼈죠."

▲김시형 활동가.

"투쟁이라는 것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는 마냥 어리둥절했어요. 하지만, 이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구나 하는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홍보팀 김시형(지체장애 1급) 활동가. 그의 첫 투쟁은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에 개최된 결의대회로, 그곳에 모인 활동가들을 통해 서로 같은 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장애인활동가들과 우리라는 연대의식으로 한울타리를 형성했다. 김 활동가는 대학 시절 선배를 통해 대학 내 장애인 학생에 대한 차별에 대항하는 활동 등을 펼쳐왔고,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와 활동가로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생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경찰이 너무 많아서 금방이라도 연행될 것 같았어요"

▲김민정 인권팀장.

"처음엔 무서웠어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투쟁해서 얻어지는 성과도 없이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만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싶었죠. 그러면서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전공이 디자인이라 웹 에이전시에서 두 번 정도 고용차별을 겪었어요. 회사에 취직한 후에는 임금착취나 언어 폭행 등을 당하기도 했고요. 그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하던 박옥순 언니를 만나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네가 경험한 일이 너만의 일이 아니라 사회의 일이라고 이야기해주었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운동해야 한다고 조언해 줘 활동가로 일하게 됐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김민정(뇌병변장애 1급) 인권팀장은 한 장애인단체의 장애학생모임에서 활동가들과 조금씩 친분을 쌓게 되면서 420 투쟁 때 처음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 팀장은 장애인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 평범하게 살아가던 자신이 하루아침에 삶의 패배자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박 활동가를 만나게 되면서 생각의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김 팀장은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결코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과거의 경험을 활동의 토대로 삼으며 3년째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동료가 연행되어 너무도 화가 났어요."

▲이종광 팀장.

경북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종광(지체장애 1급) 자립생활팀장은 대구대학교 재학 당시인 2005년 장애인 특수교육법 제정 투쟁을 통해 처음으로 장애인운동에 참여했다.

"일반 학교에 장애인들이 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게 되어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죠. 당시 동료가 연행되기도 해 경찰을 향해 격렬하게 저항했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나 화가 나서 경찰차에 오르면서까지 항의했었죠." 

이 팀장은 대구대 장애인권사수대 레츠에서 활동하면서 레츠 부회장을 지냈고,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 투쟁'에 결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 팀장은 첫 투쟁의 기억을 간직하면서 앞으로도 현장에서 더욱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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