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3 -
영국 공공정책 변화가 장애인 삶에 끼친 영향 분석

많은 장애인들이 의료, 교육, 노동과 같은 사회 제도와의 부딪침 속에서 차별과 시련을 경험한다. “우리 엄마는 전문의에게서 나를 시설에 보내고 나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또다시 아이를 낳으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으셨어요”라거나 “난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학교를 떠났는데, 그때까지는 정말 고치 안에 들어앉아 있는 누에 같았어요”와 같은 감정 토로가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격리’에 대한 증언들은 “신체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을 (차별받는)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다.”라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의료 제도, 교육 제도 등에 장애인들이 수동적으로 타협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목도하는 정책의 변화 또한 타협하지 않는 장애인들의 역동성 덕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시리즈의 3권으로 최근 출간된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소날리 샤·마크 프리슬리 저, 이지수 역)은 영국 장애인의 생애경험, 특히 청소년 시기에 겪은 제도의 변화와 사회적 억압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이에 적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살아왔는지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장애인의 생애 속에 새겨진 ‘장애인 정책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소날리 샤·마크 프리슬리 저, 이지수 역, 그린비)

저자들은 1940년대, 1960년대, 1980년대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거친 장애인 50여 명의 생애를 인터뷰하여 주제별(의료 제도, 교육 제도, 고용 제도 등)로 정리해, 영국 장애인 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저자들은 당대의 문제뿐 아니라 세대를 거쳐 변화하거나 고착되어 온 문제들을 추적하기 위해 반세기가 넘는 기간의 이야기들을 모으고, 각 세대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형성한 장애 정체성과 그 의미에 대해 분석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 중 맨 첫 세대인 194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영국의 사회 정책과 장애 정책이 처음 형성되고 확대되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로 장애와 관련한 서비스를 처음 경험한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경험 한 것은 장애인의 사회 통합보다는 분리의 조장이었다.

두 번째 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로서, 분리와 배제를 조장하는 정책과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의 자각과 사회운동이 성장하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분리를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연대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맛본 세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장애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장애인 인권이 강조되는 현재에 초기 성인기를 맞이한 세대이다. 이들은 고양된 장애예술과 장애운동의 영향으로 긍정적인 장애 정체성을 형성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일련의 변화를 거치며 개개인의 장애 정체성 역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조정되고 변화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장애에 부착된 낙인 때문에 장애를 드러내지 않도록 요구받기도 했던 선배 세대들에 비해, 젊은 장애청소년들에게 장애는 숨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 책은 비판적 장애학과 장애운동, 장애예술의 발전에 힘입어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자각하고, ‘장애운동가’로서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장애인들의 삶의 서사를 통해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개인의 전기와 정책의 역사, 구조와 행위자 사이의 연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저자들은 이렇게 새로 쓰인 역사 서술 속에서 장애인들은 수동적인 피해자 혹은 장애를 극복한 승리자로 재현되는 것이 아닌, 역사의 증언자로서 새로운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강조한다.

저자 : 소날리 샤 (Sonali Shah)

리즈 대학교 장애학센터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글래스고 대학교의 스트래스클라이드 장애연구센터(Strathclyde Centre for Disability Research)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공공정책과 서비스가 장애인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연대기적으로 분석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최근에는 드라마를 매개로 하여 학령기 아동들에게 장애 문제를 교육하는 자료 개발에 참여하였고, 폭력을 당하는 장애여성을 위한 서비스 개발에도 참여하였다.

저자 : 마크 프리슬리 (Mark Priestley)

리즈 대학교 장애정책학 교수이며, 장애학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유럽장애전문가 학술네트워크(Academic Network of European Disability Experts, ANED)의 연구이사와 국제적인 온라인 토론 포럼 ‘장애연구’(Disability Research)의 운영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장애와 공공정책에 대해 국제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각국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불평등과 장애운동에서 분출되는 정치적 불만 간의 연관관계, 서로 다른 사회적 맥락에서 장애인의 권리가 점진적으로 실현되어 가는 과정 등에 관심이 많다.

역자 : 이지수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장애인 복지를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6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발달장애 아동의 일반학교 통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장애여성의 삶의 질, 장애아동의 차별 경험과 정체성 발달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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