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안전 담론에서 배제되는 시청각장애인의 고통, 사회가 알아야 청각장애인, 수화통역 없어 한밤중 119신고도 못해
장애여성은 장애인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의 위험에 처한다. 조사 결과, 그중에서도 시청각장애여성이 체감하는 위험도가 가장 큰 것으로 드러났다.
30일 오후 1시 이룸센터에서 열린 여성장애인 안전권 실태 및 정책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와 같은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지체, 뇌병변, 시각, 청각장애여성을 중심으로 지난 2013년 9월부터 11월까지 이번 설문을 진행했으며 총 370명이 이에 참여했다. 지적장애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 “시청각장애인이 느끼는 사회적 위험, 사회가 알아야”
폭력의 위험과 관련된 경험을 묻는 응답에 언어·신체적 폭력의 경우 청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성폭력의 경우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시각장애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고립되었을 경우 느끼는 위험도에 대해서도 청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순으로 청각장애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이날 설문조사를 발표한 숭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곽지영 교수는 “고립되었을 경우 청각장애인은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기에 더 큰 위험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지체장애인은 이동이 어려워 위험이 발생해도 그 자리에서 즉각 벗어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라고 설명했다.
특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체험되는 불안의 수준을 나타내는 상태불안에 대해선 시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장애 순으로 나타났으며, 상태불안이 쌓여 자신에게 그러한 상황이 다가온다고 생각했을 때 나타나는 예기불안의 경우엔 시각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청각장애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곽 교수는 “예기불안이 높으면 외출을 꺼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라고 덧붙였다.
사회적 위축에선 청각장애, 지체장애, 시각장애, 뇌병변장애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등 뒤에서 자동차 크락션이 울려도 듣지 못하는 등 이러한 일상에서 느끼는 위험도가 큰 것이다.
장애여성이 외출하지 않는 이유로는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39%)’이 제일 높았으며 ‘행선지로 가는 방법에 대한 정보부족(24.1%)’, ‘여성장애인에 대한 폭력(성폭력) 위험(18.2%)’, ‘외출 시 활동보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17.6%)’ 등이 뒤를 이었다.
곽 교수는 “시각장애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시각장애임을 표시하는 흰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 않았다. 이를 짚고 다니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시청각장애인이 느끼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사회가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위험상황 발생 시 필요한 정책에 대해선 긴급의료지원 서비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인력지원, 장애여성 전문병원(의료시설), 법률지원 등이 시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 청각장애인, 수화통역 없어 한밤중 119신고도 못해
이를 방증하는 시청각장애여성들의 생생한 증언도 이어졌다.
가족 모두가 청각장애인인 청각장애여성회 홍정예 이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2011년 7월, 우면산 사태가 일어날 당시, 우면산 아래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던 홍 이사는 사건 소식을 당일 저녁이 돼서야 알았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인터넷, 전기, 휴대전화, TV 등 모든 것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집안에 있던 홍 이사는 창밖 너머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길이 ‘흙바다’처럼 흘러가는 것을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저녁 5시 너머, 집 앞 카페 TV에 산사태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때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홍 이사는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에게 안전에 대한 정보소식 여부는 생사를 가르는 문제”라면서 “그러나 당시 어떤 누구를 통해서도 정보를 알 수 없었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정말 답답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위험했던 순간들은 자주 발생했다.
어느 날은 자정이 넘어 홍 이사의 한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 그러나 가족 모두가 청각장애인이라 119에 연락 할 수도 없었고 밤이라 수화통역사도 부를 수 없었다. 다행히 여름이라 앞집이 문을 열고 자고 있어 앞집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도 수화통역이 없어 고생해야 했다. 휴대전화 영상으로 수화통역 지원을 받으려고 했지만 통화는 계속 끊겼고 결국 의사 설명도 듣지 못했다. 홍 이사는 이러한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이야기하며 “24시간 수화통역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시각장애인여성회 강미애 부대표는 어느 날 새벽에 성추행당했던 경험을 토로하며 눈물을 쏟았다.
“새벽 2시 30분경, 택시에서 내려 집에 가는데 한 남성이 달려오더니 가슴을 만지고 달아났다. 그러나 나는 쫓아갈 수도 없었다.”
강 부대표는 이제 정부가 장애인 편의증진을 넘어 ‘안전’을 기할 때라고 당부한다.
“불이 나면 어떻게 도망가지. 사람들이 날 데리고 도망가줄까, 생각한다. 만약 세월호에 시각장애인이나 지체장애인이 탔었다면 살았을까. 당연히 죽었을 것이다. 편의증진에만 신경 쓰지 말고 안전에도 신경 써주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