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편의증진법 등 장애인 법제 개선 사항 수두룩
"법제 개선 과정에서 당사자 참여 보장돼야"

한국 정부는 지난 10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로부터 한국의 장애등급제가 의료적 평가에만 의존하고 다양한 장애인의 욕구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등 유엔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이행이 미흡하다는 내용의 최종 견해를 받았다.
한국 정부는 이제 이 권고를 바탕으로 협약의 온전한 이행에 나서야 할 의무가 생겼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내 장애인 관련 법을 상당 부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개최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공익인권법재단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권리협약과 최종 견해의 이행을 위해 개정되어야 할 국내 법제를 제시했다.
먼저 염 변호사는 의료적 관점에 의존해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편의시설, 신체의 자유, 자립생활, 이동권, 정보 접근권, 노동, 생계, 참정권 등 사회 전반적인 장애인 관련 법제가 대폭 개선돼야 함을 역설했다. 아래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국내 장애인 관련 법규들이다.
- 장애인 정의(장애인권리협약 2조) : 의료적 관점에 의존해 장애인의 상황과 필요·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제 전면 개편
- 평등과 차별금지(5조) :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인력 확충 및 독립성 강화, 장애인차별시정소위원회 확대, 차별구제소송 지원
- 접근성(9조) : 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 개정 통해 모든 공공시설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편의시설 설치 의무 부과
- 법 앞의 동등한 인정(12조) : 성년후견제도를 장애인이 직접 의사를 행사하도록 돕는 지원의사결정 방식으로 변경.
- 신체의 자유와 안전(14조) : 장애를 이유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정신보건법상 비자의 입원제도 개정
-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로부터의 통합(19조) : 시설수용 중심의 장애인복지법 개정해 탈시설 전환 계획 수립
- 이동권(20조) : 교통약자가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대중교통 정책 전면 검토
- 정보 접근권(21조, 9조 2항 (f)) : 장애인차별금지법 접근권 관련 임의규정을 의무규정으로 개정. 한국 수화, 점자를 공식 언어로 인정하는 관련법 제정
- 건강(25조) : 정신장애인 보험가입 거부하는 상법 732조 폐지, 장애인권리협약 25조 e항 유보 철회
- 근로 및 고용(27조) : 최저임금제에서 배제된 장애인의 소득 보전을 위한 보충급여제, 장애인의무고용할당제 실효적 이행 방안 마련
- 적절한 생활 수준과 사회적 보호(28조) :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장애인 특성과 욕구에 맞는 최저생계비 지원
- 정치와 공적 생활 참여(29조) : 장애와 관계없이 투표권 보장하고 투표 정보가 모든 접근 방식으로 제공되도록 제도 마련, 금치산자에 대한 선거권·피선거권 제한 조항 삭제 |
염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라는 국제적 지위와 국민이 처한 조건을 고려해 최종견해에 지적된 내용을 시정하고 권고사항을 이행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도록 상설화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협약 이행을 효과적으로 모니터링하도록 충분한 인적·재정적 자원을 제공하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장애물없는생활시민환경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법제 개선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배 사무총장은 “한국 정부는 (저상버스 도입 대상 교통수단으로) 노선을 운행하는 승합차, 버스로만 제한하고, 구역을 운행하는 차량(전세버스나 택시)는 대상에서 제외했다.”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동편의증진법을 개정해 노선 여객수송차량뿐 아니라 구역을 운행하는 전세버스도 대상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최종 견해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장애인 당사자가 법률 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염 변호사는 “장애인과 그들을 대표하는 단체의 완전한 참여를 보장해야만 협약의 이행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고, 배 사무총장 또한 “장애인 당사자가 협의하는 자리를 통해 법률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조례,규칙까지 개정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