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마미'
보호시설에서 퇴소당한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자비엔 돌란 감독의 영화 마미 포스터.

지난달 국내 개봉한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마미>는 2015년 ‘가상’의 캐나다를 배경으로 한다. 돌란 감독이 설정한 2015년 캐나다에서는 새 정부가 ‘S-14’라는 법안을 도입해 보건 정책을 바꾸는데, 그 내용인즉 ‘행동에 문제가 있는 자녀의 부모가 경제, 신체, 심리적인 위험에 처할 경우 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도 자녀를 공공병원에 위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보건 정책이 어떤 상태이기에 돌란 감독이 이런 배경을 발명해냈는지 모르겠지만, 돌란 감독이 가상한 배경은 한국에서는 가상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나는 이 영화를 다큐로 이해하는 오류를 기꺼이 저질러가며 해석할 생각이고, 이 과정에서 영화의 많은 내용이 누출될 수 있다.

돌란 감독이 가상한 ‘S-14’ 법은 한국의 정신보건법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와 매우 닮아있다. 이 법 24조는 정신질환자의 가족 등 보호의무자가 동의하면,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의사의 판단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킬 수 있는 조항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계에서는 이 조항을 ‘강제 입원’ 조항이라고 부르며,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폐지를 촉구해왔다. 이런 현실 탓에 이 영화를 ‘mommy’의 ‘모성’을 다룬 영화 정도로 풀이한 국내 평론에 선뜻 공감이 일지 않았다.

이 영화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영화에선 'ADHD증후군'으로 표현)가 있는 아들 스티브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디안의 아들 스티브는 (문제적인 것부터 나열하자면) 분노 조절이 잘 안 되고 폭력성이 종종 나타나는 ADHD증후군이 있는 10대다. 아빠가 죽은 뒤로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진 스티브는 엄마 디안과 떨어져 보호시설에서 지내왔다. 하지만 보호시설에서 화재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마저도 퇴소 ‘당’하게 되고, 문제아 중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한다.

스티브의 화재사고 직후 사고 수습차 보호시설에 불려간 디안에게 시설 직원은 S-14 법을 고려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직원은 보호시설에서도 적응 못 하는 아이가 갈 곳은 감옥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디안은 그러한 “비관적인” 입장들에 맞서며, 아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스티브와 디안은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다.

디안은 스티브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기로 한다. “니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널 집에서 가르칠 거야.” 하지만 디안은 마침 직장에서 잘려 생계가 막막해지고, 자존심 구겨가며 일자리를 찾아헤맨다. 집에 돌아온 스티브는 자유를 만끽한다. 온 집이 울리도록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고, 롱 보드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그는 이런 시간을 보내며 "자유"라고 소리내 외치기도 한다. 스티브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데, 이 때문에 엄마와 끝없이 갈등한다. 

디안은 이런 스티브를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매력이 넘치는 아이이지만, 위험하기도 하다고 이야기한다. 스티브의 분노가 조절되지 않을 때엔 엄마도 아이를 피해 도망쳐야 한다. 스티브는 욕설과 폭력으로 타인은 물론 자신까지 위협하며, 일상을 한순간에 불안과 두려움 속에 뒤섞는다. 이것은 이 아이가 가진 문제적인 상태이고,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가 될 때 보호시설에, 감옥에, 공공병원에 강제 분리당한다.

▲마미 포스터.

“우린 그동안 참 잘 지내왔어요. 여기서 계속 잘 지내고 싶어요. 스티브와 함께 사는 건 주사위 던지는 것과 같아요. 운이 나빠지기 전까진 운이 좋은 거죠. 스티브는 난폭한 아이예요. 하지만 속은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죠. 스티브가 이성을 잃을 땐 난 도망가야 해요. 너무 끔찍해지거든요. 그럴 때면 난 너무 혼란스러워지죠. 머지않아, 난 모든 게 두려워질 거예요.” - 디안

제 스스로 통제되지 않는 분노의 에너지 속에서 스티브는 세상과 충돌을 일삼는다. 스티브는 타자에게 으르렁대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이후 스티브와 디안 그리고 둘의 친구였던 이웃 카일라의 관계는 방향을 잃는다.

카일라는 스티브가 보호시설에서 쫓겨나 집에 오게 된 뒤, 스티브가 벌인 소동 때문에 이들 관계 속으로 휘말려 들어온 인물이다. 교사였던 카일라는 안식 기간을 갖고 있는데, 그건 갑작스럽게 찾아온 ‘말더듬’ 증세 때문이었다. 영화는 카일라가 말을 더듬게 된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유추해볼 만한 오브제를 배치해 놓았을 뿐이다. 카일라는 가슴속에서 꽉 막혀 잘 나오지 않던 말들을 스티브와 디안을 만나며 조금씩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둘에서 셋이 된 이들은 불안 속에서도 툭탁거리며 웃음과 행복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키워간다. 셀린 디옹의 히트곡을 틀어놓고 다 같이 노래하며 춤추는 아름다운 장면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서로의 결핍과 불안을 껴안으면서 결집된 셋은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라고 믿으며, 이를 삶속에서 증명해나간다. 그렇게 영화는 사랑과 자유를 바탕으로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자유롭게 던지며 흘러간다. 돌란 감독은 1:1 비율의 독특한 스크린 설정에 더해 스크린이 확장되는 묘기도 보여주면서, 감독 특유의 영상미로 이 셋의 시간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말미에 이르러 이들이 품은 희망에 찬물을 끼얹듯, 우리의 발목을 잡고 현실로 끌어내린다. 그렇지만 셋은 서로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운이 나빠지기 전까진 운이 좋은 거"라던 디안의 말대로라면, 그들의 최선에도 불구하고, 운이 나빴나 보다. 돌란 감독은 왜 ‘S-14’를 가상했을까. ‘S-14’는 적절한가. ‘S-14’가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 헤매는 우리의 상상력을 한 방향으로 손쉽게 가두고 있진 않은가. 기분이 영 좋지 않은 엔딩을 보고 말았다.

 

“날 슬프게 하지 마 날 울게 하지 마. 때론 사랑은 부족하고 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 날 계속 웃게 해줘 나와 함께 취해. 가야 할 길은 멀지만 가는 동안 행복해져야 해. 이 거친 길을 같이 걷자. 쏟아지는 빗속에서 키스하게 해줘. 넌 정신 나간 여자를 좋아하지. 마지막 말을 생각해둬 이게 마지막이니까. 너와 나, 우린 죽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영화 엔딩곡인 Lana Del Rey의 'Born to Die'가 어지러운 관객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적절하다.

스티브가 디안, 카일라와 함께 노래 부르며 춤추는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공동체가 둘에서 셋이 되면서 '함께-삶'의 가능성이 피어났던 것처럼, 둘이 셋으로, 셋이 여럿으로 확장되면 이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을까. ‘S-14’가 가상이 아닌 현실인 이 나라에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기’를 모색해야 할까. 엔딩곡이 노래하듯,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났지만 어떻게든 행복해져야 한다. 그 누구도 소외하지 않고. <마미>를 보고 나오는 길에 가슴이 턱 막혔지만, 영화는 분명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말을 걸고 있다. <마미>는 우리가 그간 억눌러온 많은 말들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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