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의 주거사(住居史) 1
가장 바빴던 당신에게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그래도 이번 여름에는 당신이 비 때문에 잠을 설치는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는데, 당신은 여전히 빗소리가 크게 들리는 밤이면 깊은 잠을 자다가도 깜짝 놀라며 깨어 귀를 기울인다고 하였죠. 그리고는 ‘아! 고덕동 집이 아니지’하고는 혼자 쓴웃음을 짓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럴 만도 할 것이, 지난 3월 당신이 그렇게 오랜 세월 기다리며 준비했던 임대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반지하 고덕동집에서 13년을 살면서 항상 걱정하던 것이 그렇게 금방 사라지겠습니까.
몇 해 전부터 여름이면 한 곳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가 되고 있습니다. 하수구가 대문 앞에 있었던 고덕동 집은 당신에게 늘 근심거리였습니다. 언제였죠? 비가 엄청 내리는 날, 하수구로 미처 내려갈 수 없었던 빗물이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위기상황에 마침 활동보조인이 함께 있었기에 그 위기를 잘 넘겼었다고 했어요. 그날 이후 당신은 비가 많이 내릴 때면 늘 긴장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혼자 있는 밤은 잠을 설쳐야 했죠. 비가 많이 내려도 문을 열고 나가볼 수 없는 장애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귀를 세우고 비 내리는 정도를 측정할 뿐이었습니다. 또한 물이 넘치는 위기 상황이 되어도 가장 가까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인가에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었죠.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시간이 늦어지면 더 늦어질수록 만약을 대비해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며 밤을 새우고는 하였습니다.

물론 당신이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던 것이 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반 지하방은 창문도 담도 낮습니다. 서민들이 밀집한 주택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죠. 깊은 밤에도 주차 문제로 이웃 사이에 큰 소리가 오가고, 또한 주차한 차 안에서 시동을 끄지 않으면 그 매연이 반지하 방안으로 들어와서 목이 아팠었던 순간들도 있었다고 하였지요. 그뿐인가요. 가끔은 술을 많이 마신 사람들 담 아래에 몇 시간씩이나 구토하고 소리를 질러대고, 그리고 밖에서 담배를 피워도 낮은 창 안으로 들어오던 것, 창 앞에서 기나긴 시간 통화하는 소리, 그때마다 당신은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그리고 혼자 사는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방안에서 고스란히 겪어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영화 오아시스에 나오는 장애여성 공주였습니다.
현관문을 안으로 잠글 수 없는 당신의 장애 때문에, 나가는 사람이 문을 잠그고 열쇠를 바깥 약속된 곳에 숨겨둬야만 했지요. 그래서 항상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당신은 극도로 긴장해야 했습니다. 가끔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골라 성폭력과 강도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남의 일 같지 않아 며칠 동안은 두려움의 밤을 보내야 했었죠. 그래서 오아시스에서 종두가 공주집의 문밖 화분에 숨겨둔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침입했을 때 공주가 느끼는 공포를 당신도 그대로 느꼈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고덕동집은 화장실 창문이 길 쪽에 있어서 늦은 밤 목욕하기도 두려워했습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두면 들여다보는 남성들 때문에 낮에도 환기시키는 일도 조심스러웠고, 밤에 목욕할 때면 온 신경을 창에다 두고 서둘러야 했었죠. 그래서 당신은 늘 핸드폰에 가까운 경찰지구대 번호를 입력해 놓고 있었죠. 그래서 항상 핸드폰을 곁에 두고 있었다면서요. 당신은 궁여지책으로 가끔 집 앞 골목에 CC-TV 설치를 생각해 봤다지요? 하지만 그것이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또한 무엇인가 안전하고 싶다는 것과 사생활보호와 감시당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에 갈등이 된다고 심각하게 고민했었죠. 자동열쇠와 여러가지 잠금장치를 찾아 개선해 보려고 했지만, 문짝 자체를 바꿔야 하고 또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이사할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만 했었죠. 지금 이사한 아파트에서 당신이 제일 마음에 든 것은 당신이 문을 열고 닫고 잠금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당신의 긴장감이 조금이라도 해소되었나요?
당신에게 고덕동 집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증장애를 가지고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해 살아보겠다고 가족을 설득하고, 어렵게 전세대출도 받으면서 처음으로 당신 이름의 큰 빚을 졌고, 당신은 그 순간 두려움이 생겼다면서요. 그래도 당신은 당당하게 같은 고민을 가진 장애여성들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특별한 사람에게는 임대하지 않겠다는 집주인들을 만나면서 당신은 그때부터 독립의 삶이 결코 쉽지 않겠다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덕동 집 주인 할머니의 호의적인 태도와 계단이 없고, 깊은 지하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집이 재판에 걸려 있다는 걱정을 감수하며 얻게 된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당신 이름으로 된 계약서를 보며 진짜 독립하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당신은 '생애 처음'이라는 것을 많이 하게 되었죠.
당신은 그 집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검정고시 공부도 했고, 장애여성운동의 독자적인 조직을 탄생시켰고, 많은 장애여성들이 머물다가 떠났으며, 그래서 그릇도 이불도 옷도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해야 했습니다. 서너 명이 밥을 먹을 때보다 항상 예닐곱 명이 식사를 해야 했다지요. 큰살림이었습니다. 구석구석 쌓이는 짐들 때문에 공간은 자꾸 좁아져 갔었죠.
그 집에 이사하던 날, 동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면서요. 장애인들이 어떻게 사느냐고 왜 가족과 안 살고 나와 살려고 하느냐고요. 그리고 관심의 대상이었다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열심히 살았지요. 이웃사람들이 방문오면 으레 하는 말이 ‘우리 집보다 깨끗하네’였다면서요. 왜 그런 말을 할까요. 장애인이 사는 집은 더러울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어서일까요. 당신과 함께 살던 장애여성들의 청결지수가 꽤 높은 편이라 서로 갈등은 별로 없었던가 봅니다. 그렇지만 큰일은 합의가 잘되고 서로 도와주며 이해하는데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였죠. 당신은 항상 처음 고덕동에 살기 시작했던 장애여성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중증장애여성이었고, 큰언니였고, 성격도 쉽지 않았고, 잔소리가 많았던, 그리고 여러 부문 다른 것들을 잘 이해하고 봐줬던 것에 고맙다는 뜻인 것이겠죠.
당신은 고덕동 집에서 임대차계약법이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었다면서요. 입주할 때 걱정했던 것이 불행히도 적중해 집이 경매로 넘어갔고, 임대차 계약법에 따르면 세입자는 전세금을 일부만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서요. 전세금 대출도 아직 못 갚았는데 전세금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 당신의 독립생활이 좌초될 위기에 망연자실했다지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남동생 집에 당신까지 의존하러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지, 어떤 시설을 알아봐야 하는 것인지, 당신은 괴로웠습니다. 밤에는 울었고, 낮에는 떨린 가슴을 안고 법률상담도 하고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동분서주했습니다.
당신은 독립해 살면서 그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지요. 잠을 잘 수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을 만큼 힘들어했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봐도 결국 법률에 정해진 데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답답한 가슴으로 재판을 거듭 하면서 몇 년이 지나갔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새 주인이 와서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면서 전세금을 전부 찾을 수 있게 되던 날, 몇 해 동안 조였던 가슴을 맘껏 펴 볼 수가 있었다고 했죠. 당신에게 큰 위기였지만 잘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진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죠. 우선 함께 살던 당신의 동지들과 장애여성운동을 함께한 동지들이 또 당신의 삶을 지지해주는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그분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고덕동 집은 당신 혼자만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1997년 8월 30일 고덕동에서 생애 첫 독립을 한 날이었죠.
그리고 2010년 3월 20일 그 집을 떠났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그 집에서 이루어졌고 많은 기억들이 있는 곳이죠. 그리고 당신에게 가장 빠르게 달려온 세월이었답니다.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당신에게 고덕동집은 소녀 시절 미래의 집을 상상하며 그려 보았던 파란 물방울무늬 커튼을 넓은 창에 걸어보기도 하고, 푸른 잔디 마당에 강아지를 키우기도 하고, 베이지 프릴 커튼이 있는 거실에서 헤이즐넛커피를 마시는 꿈을 꾸었던 낭만의 집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 안 계시면 형제들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지 않겠다는 것, 가야 할 곳이 없어서 시설로 가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어렵게 독립을 하였고 당신은 잘 버티어 왔습니다.
요즘 집값이 떨어진다고 야단났습니다. 그 야단스러움에 당신은 다른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전세 값이 오르지 않을까?’이죠. 전세 대출받아 독립하여 그것을 겨우 다 갚고 나니, 전세금이 올라서 또 대출을 받고 이자와 원금 갚아나가니 따로 저축할 여유는 더욱 없고 세월이 가니 계약기간이 되면 또 올리고.... 소녀시절 꿈꾸었던 집은 진정 상상의 집이었고, 내 앞의 집은 현실이었다고 당신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많은 사람들은 말했죠. 혼자 살기가 무섭지 않으냐고.
당신은 독립해서 함께 살던 장애여성들이 각자 독립하고 몇 년을 혼자 살면서 안전에 대한 불안함, 만약을 대비한 빠른 조치에 대한 준비 여러 가지 고민은 있지만 그래도 혼자 사는 것이 나름 의미있다고 하였죠. 자기 삶을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 취향대로 디자인하고, 눈치 보지 않고 사람을 초대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당신은 고덕동집에서도 그렇게 살았죠. 비록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것 때문에 혼자의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죠.
고덕동집은 이제 떠나 왔습니다.
그곳에서의 기억들은 추억이 되었지만, 이제 또 다른 주거공간에서 어떤 기억들을 만들어 나갈지 긴 시간들이 앞에 있습니다. 강일동의 임대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하였나요. 당신은 대출금, 관리비 임대료를 내기 위해서 절약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기료 수도료 가스료 통신료 절약을 위해 짠순이로 변해갑니다. 이 무더위에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가만히 앉아 바람 한 점의 시원함을 찾고 있는 당신을 봅니다. 그래도 요즘 당신은 조금씩 상상을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넓은 창에 여러 색깔 모시 천으로 시원한 커튼을 쳐볼까? 내년에는 햇살 잘 드는 베란다에 고추 몇 개를 심어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 당신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상상이 즐거운 것이기만을 기원합니다.
분명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박김영희의 거북이도 길을 만든다. 나의 별명은 거북이 또는 굼뱅이 달팽이였다. 그만큼 나의 몸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처럼 느리다. 나이 들어갈수록 더 느려지는 나는 시간에게 더 쫒기며 살아간다. 나의 행동은 느리지만 그래도 내가 지나가는 땅에는 길이 만들어진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되고 어떠한 생명도 소중하게 존중되는 길을 만들고 싶다. 나의 지나간 흔적이 길이 되고, 그 길을 따라오는 사람들 땜에 길은 더 선명해 질 것이다. 거북이도 굼뱅이도 달팽이도 길을 만든다. 나는 길을 만들려고 나선 거북이 장애여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