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어디는 ‘장애인 천국’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명백히 한국사회보다 장애인으로서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세계 곳곳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장되었다는 점을 감수하더라도, 명백히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지난 2주간 유엔인권재단, 인권정책센터와 스위스의 제네바를 다녀왔다. 제네바는 유엔본부를 비롯해 각종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세계의 ‘수도’라고 불린다. 무엇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비준된 바 있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롯한 각종 인권협약과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을 ‘인권의 수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네바의 주요 교통수단인 트램(지상위를 이동하는 작은 전철)은 휠체어를 타고 혼자 탑승할 수 없다. 버스들 역시 한국에 비해서는 많은 수의 저상버스가 있지만, 대부분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혼자 탈 수 없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경사로를 스스로 설치해야 한다. 스위스는 세계적인 선진국이며 유엔이 위치해 있지만, ‘천국’일 수는 없는 것이다.(돌아다닐 수 없는 천국은 없다)
자유의 나라이며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네덜란드 역시 저상버스의 비율이 한국보다는 훨씬 높지만, 여전히 많은 교통수단의 탑승이 휠체어를 타고서는 불가능하다. 점자유도블록도 충분치 않다. 분명 사회보장 체계는 한국보다 훨씬 훌륭한 수준이지만, 세밀한 곳에서 충분히 장애인들의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는 않다.
천국은 존재하지 않지만 명백한 교훈은 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노동자들의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귀족을 상대로 한 혁명의 역사를 통해 수준 높은 사회보장체계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의 흐름에서 장애인들이 투쟁의 주체였던 사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른바 좌파와 우파의 타협,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통해 일정한 수준의 노동시간제한과 임금, 그리고 사회보장체계가 완성된 덕분에 장애인들도 한국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정치적 실천을 감행했던 경험이 적은 나라들은 세심한 부분부터 때로 중요하고 커다란 부분까지 장애인들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것은 세상에 천국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천국에 그나마 가까운 사회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은 매우 질 낮은 수준의 사회보장만을 (그것도 매우 생색내면서) 하는 나라지만 명백히 장애인운동의 숨결이 거쳐 간 곳곳에는 유럽의 국가들보다 더 세밀하게 장애인들의 권리가 언급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국은 천국이 아니지만, 적어도 천국에 가까운 사회를 장애인들 스스로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언제나 큰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체장애인. 올해가 20대의 마지막. 지하생활자로 15년간 살았고 세상으로 나온지 올해가 지나면 15년이 된다. 한국사회의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서 대학을 지나 대학원까지 왔다. 관심사는 연극, 장애학, 생물학, 드라마, 소설, 진화론 등 다양하다. 까칠한 말투로 종종 비난을 듣는다.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스위스나 네델란드에 비하면 ...? 그리고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장애인운동이 더 많이 한다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