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2]
기여하지는 못하면서 누리는 자들의 수를 줄여라!

사회적 다윈주의는 20세기 초의 세계적 조류였고 미국의 각 주에서 단종법이 확산되고 있던 1920년대 말과 193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도 단종법이 널리 채택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앞선 글에서 언급되었듯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1997년 8월 스웨덴의 일간지 『다옌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는 스웨덴에서 1950년대까지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반강제적인 불임수술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도해 충격을 주었고, 이는 영국의 언론에서도 큰 뉴스로 다루어지면서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과학사회학과 사회정책을 연구해 온 영국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힐러리 로즈(Hilary Rose)는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이러한 오래된 이야기가 어째서 현재의 뉴스가 되었는지에 대해 성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나라들, 특히 강력한 복지국가가 발전되어왔던 나라들은 부인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 밖에 없는 우생학의 역사는 망각되었다. 대신 우생학적 실천은 단지 나치의 소행으로만 치부되었다. 나치의 악마들을 악마로 묘사하는 것은 충분히 온당하지만,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과거를 부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유전학자, 사회정책 분석가, 사회개혁가, 맑스주의 혁명가를 불문하고 20세기 전반기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우생학에 대한 열광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좌파와 자유민주주의자 양쪽 다 잊고 싶어 했다.1)

많은 사람들이 인간주의의 얼굴을 한 최상의 복지국가들에 비인간적인 단종법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영국, 미국, 독일에서도 좌우파를 막론하고 우생학에 대한 지지가 존재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후의 연재 글에서 설명이 되겠지만 근대적 복지의 탄생과 뒤얽혀 있던 생명권력의 속성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우리가 이해한다면, 북유럽 국가들에서 이루어진 우생학적 폭력은 어찌 보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생학은 1912년에 헬싱키에서 열린 제6차 북유럽장애인복지컨퍼런스(Nordic Conference on the Welfare of the Handicapped)의 의제로 오른 후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확산이 되기 시작하며, 국제우생학회의와 같은 국제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볼 때 지리적으로 가까운 독일보다도 미국이 우생학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야기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지요.

1909년에 설립된 스웨덴인종위생학회(Swedish Society for Racial Hygiene)를 이끈 의사 헤르만 룬드보리(Herman Lundborg)는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의 대븐포트와 공동의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덴마크의 우생학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시설 재벌 켈러 가문의 크리스티앙 켈러(Christian Keller)는 자신 직원들로 하여금 미국의 시설들을 견학하도록 했으며, 매사추세츠정신박약자학교(Massachusetts School for the Feeble Minded)의 교장이었던 월터 퍼날드(Walter Fernald)의 우생학 강의를 직접 번역해서 출간하기도 했지요. 그럼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에서 단종법을 중심으로 한 우생학 정책이 어떤 식으로 도입되고 시행되었는지를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덴마크

덴마크의 우생학 정책에 있어 두드러진 인물로는 사회민주당의 핵심 정치가였으며 덴마크 복지제도의 설계자라고 불리는 칼 크리스티앙 스테잉케(Karl Kristian Steincke), 그리고 앞서 언급된 시설 재벌 크리스티앙 켈러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테잉케와 같은 사회개혁가들에게 있어 우생학은 합리적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청사진의 핵심적인 일부분이었습니다. 즉, 사회적 약자로 범주화되는 일부 집단이 아닌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복지국가가 ‘모두가 함께 기여하고 모두가 함께 누린다’는 원칙에 따라 운영된다고 할 때, 기여하지는 못하면서 누리는 자들의 수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식되었던 것이지요.

▲덴마크 복지제도의 설계자 칼 크리스티앙 스테잉케는 덴마크 우생학 정책의 설계자이기도 했다.

스테잉케는 1920년에 출간된 『미래의 사회구제(Social Relief of the Future)』에서 부적합하고 무력한 이들을 국가가 그냥 버리는 것은 냉담한 태도인 반면, 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재생산되도록 놔두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생학이 바로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즉, 우생학적 조치들이 그들의 수가 증가하지 않는 것을 보장한다면, 사회가 그들을 인도적이고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켈러는 발달장애인들의 성적인 격리를 목표로 발달장애남성만이 거주할 섬과 발달장애여성만이 거주할 섬을 각각 별로로 사들이기까지 했던 인물인데요, 그는 스테잉케의 책이 출간된 1920년에 시설 운영자들을 대표해서 정부에 단종수술을 논의하기 위한 전문가 위원회의 설립을 요청하였습니다.

덴마크에 사회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1924년에 스테잉케는 법무부 장관이 되었고, 그는 켈러 등 여섯 명의 시설 대표자들이 포함된 ‘거세와 단종수술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이 위원회에 참여했던 또 다른 인물로는 ‘유전자(gene)’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저명한 멘델주의 식물학자 빌헬름 요한센(Wilhelm Johannsen)과 투철한 유전론자 정신과 의사였던 아우구스트 빔머(August Wimmer)가 있었습니다.

‘거세와 단종수술을 위한 위원회’는 1926년에 『퇴행적 소인을 지닌 이들에 대한 사회적 대책(Social Measures Toward Degeneratively Predisposed Individuals)』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요, 이 보고서는 단종수술이 유전질환의 발생률을 감소시키지는 않기 때문에 인종개량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지만,2)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태어날 아이 또한 유전적으로 해를 입을 수 있는 일정한 집단에 대해서는 단종수술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단종수술은 시설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논란을 피함과 동시에 그들을 지역사회로 재통합시키면서 시설에 가해지는 재정적․공간적 압박도 완화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정책안의 후반부에는 반복적인 성범죄자의 거세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었는데, 이는 성범죄의 증가를 우려하면서 거세를 해결책으로 요구했던 전국여성단체협의회(Women's National Council)의 청원서 내용을 반영한 것이었지요.

이 보고서의 내용에 기반을 두고 덴마크에서는 단종법안이 마련되었으며, 1929년 농민당(Agrarian Party) 정부하에서 단종법의 재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사회민주당 정부가 마련한 단종법안이 농민당 정부하에서 재가되었다는 것은 우생학이라는 이슈에 대해 존재했던 초당파적인 합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덴마크는 정신적 손상 및 정신질환을 지닌 이들이 결혼을 하려면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한 1923년의 혼인법과 더불어 우생학 정책의 골격을 갖추게 됩니다.

1929년 선거에서 다시 사회민주당이 집권한 이후 스테잉케가 사회부장관으로 재직하던 1934년에는 새로운 「정신적 장애법(Mental Handicap Act)」이 제정되었습니다. 그 법은 발달장애인들 중 일정한 집단에 대한 강제 감금 조치를 포함하고 있었고, 단종수술을 미성년자와 시설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하였으며, 수술을 받게 될 사람의 동의 절차를 삭제했습니다. 이에 따라 1929년의 단종법하에서보다 이 법 아래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단종수술이 이루어졌지요.

아래의 표에서 확인되듯 1950년까지 단종수술을 받은 이들 중 70% 정도가 ‘학습적 장애’로 표기되고 있는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들이었으며, 이들 중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가량이나 많았습니다. 또한 성범죄에 대한 규정이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폭력적인 성범죄뿐만 아니라 노출증 같은 성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동성애자들에게까지도 단종수술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덴마크에서의 단종수술, 1929~1950년]3)

시기

학습적 장애여성

학습적 장애남성

학습적 장애를 지니지 않은 여성

학습적 장애를 지니지 않은 남성

총계

1924~1934년

84

19

4

1

108

1935~1939년

825

375

150

30

1,380

1940~1945년

1,000

500

510

110

2,120

1946~1950년

869

469

902

96

2,332

총계

2,778

1,359

1,566

237

5,940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미간행 논문. Kerr and Shakespeare, Genetic Politics: From Eugenics to Genome, p. 46에서 재인용.

각주 2) 유전질환 중 하나의 유전자만이 관여하는 단일 유전자 질환에는 상염색체 우성 질환과 상염색체 열성 질환이 있다. 상(常)염색체란 성(性)염색체 이외의 모든 염색체를 말하는데, 암수가 동일하며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상염색체 우성 질환은 질병 유전자(A)가 우성이기 때문에 AA뿐만 아니라 Aa와 같이 한 쌍의 대립유전자 중 한쪽만 이상이 있어도 발병하고 aa인 개체에서만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상염색체 열성 질환은 질병 유전자(b)가 열성이기 때문에 bb와 같이 양쪽에 이상이 있는 개체에서만 발병하고 Bb나 BB인 경우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즉, 상염색체 열성 질환의 경우에는 Bb인 개체(보인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양쪽 부모가 해당 유전질환의 증상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후손에게서 다시 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즉 Bb인 아버지와 Bb인 어머니가 만나 25%의 확률로 bb인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전질환 중 많은 경우는 부모에게서 실제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돌연변이가 그 원인이다. 예컨대, 저신장장애의 가장 주된 원인인 연골무형성증(achondroplasia)은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하지만 환자의 약 80% 이상은 새로운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또한 여러 유전자가 동시에 관여하는 다인자성 유전질환도 존재하기 때문에, 유전질환 환자에 대한 단종수술이나 결혼금지를 통해서 해당 질환을 제거한다는 것은 통상적인 유전법칙에 근거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각주 3) Kerr and Shakespeare, Genetic Politics: From Eugenics to Genome, p.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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