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의 정체성, 청인 자녀와의 갈등도 섬세하게 묘사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한 장면.

주인공 벨리에는 가족 모두가 농인인 가정에서 혼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녀이다. 흔히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Children Of Deaf Adult)를 '코다(CODA)'라고 부르는데, 벨리에가 여기에 해당한다. 영화는 우당탕탕 큰 소리를 내며 아침을 준비하는 부모님과 화장실 문을 열고 민망한 소리를 내며 일을 보는 남동생을 익숙하게 지나치는 벨리에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들이 일으키는 일상의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경험일지를 맛보게 하는 것이다.

젖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고 치즈를 만들어 파는 벨리에의 부모는 집에서 수화로 소통하며 일하는 것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바깥세상을 만나는 곳에선 장벽에 부딪힌다. 그 장벽은 장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언어장벽에 가깝다. 음성언어가 지배적인 언어환경에서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들은 언어적 소수자에 가깝다.

지난 4월에 개봉한 이길보라 감독의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에도 나왔듯이, 코다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철들고 자라서 부모님의 통역사 역할을 한다. 벨리에는 아직 초경도 시작되지 않은 나이에, 가족과 사회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화는 성병에 걸린 부모가 의사에게 진료 받는 장면에서, 벨리에가 통역자이자 딸로서 부모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 모습을 코믹하게 담는다. 또 치즈를 팔면서 부모의 장애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벨리에의 재치 있는 대응도 섬세하게 담는다.

벨리에는 음악선생으로부터 뛰어난 노래에 굉장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갈등한다. 농인인 가족과 소통할 수 없는 재능이기 때문이다. 마침 자신이 농인인 것은 장애가 아닌 일종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마을 선거에 출마하는데, 벨리에는 아버지의 선거유세를 도와야 할지 노래연습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벨리에의 노래 소리를 들려주던 장면이나 가족이 화해에 이르는 장면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딸에게 이질감을 퍼붓던 엄마의 모습이다. 벨리에의 부모는 벨리에가 농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슬퍼했다고 말한다. 청인의 입장에서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 농인들은 자녀도 농인으로 태어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농인을 그저 장애인으로 생각하는 청인들과 달리, 농인들은 자신들을 언어적 문화적 소수 공동체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는 벨리에가 노래 부르는 장면을 무음으로 처리한다. 농인인 부모가 느끼는 감각을 관객들에게 체험시키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농인들이 세상에 대해 어떠한 감정과 감각을 느끼고 사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사춘기를 맞은 자녀가 가족을 떠나 자신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린다. 벨리에의 마지막 노래 장면은 흡사 <마당을 나온 암탉>의 비상장면을 보는 듯하다.

농인들을 장애인이 아닌 언어적 소수자로 보는 농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미라클 벨리에>와 <반짝이는 박수 소리>등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귀하다. 장애를 무능과 동일시 하지 않고,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고 이해하려는 사고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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