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소수자, 노숙인 등 혐오범죄에 노출

▲2014년 1월 게이 남성이 살해된 범죄를 다룬 외국 언론 기사. 출처 : Szczecinian.eu

 

2014년 1월 폴란드 북서부 슈체친(Szczecin)에서 21세 게이 학생인 패트릭 씨가 게이 클럽을 나서던 길에 18세 남성 2명에게 폭행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남성의 시신은 얼굴에 멍이 들고 바지가 벗겨진 채로 근처 공사 현장에서 발견되었고, 최종 사인은 수차례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혀 익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폴란드 정부는 이 사건이 동성애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규정했고, 법원은 가해자 2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는 과정에서 일반 범죄와 다름없이 취급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나치의 인종차별적이고 폭압적인 지배를 받았던 폴란드는 인종과 민족에 대한 혐오범죄 처벌 조항을 비교적 잘 마련한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조항에 장애인, 성소수자, 노숙인 등 일부 소수자들은 포함되지 않아 이들이 혐오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폴란드의 혐오범죄 현황을 조사한 ‘증오의 표적으로, 법에 외면받다’ 보고서를 17일 공개했다. (전문 보기)

 

보고서를 보면 폴란드는 형법 119조 1항, 126조a, 256조, 257조 등에서 국가, 민족, 인종, 정치적·종교적 입장, 종교적 신념 부족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단체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불법적인 위협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를 어기는 이는 죄질에 따라 최소 3개월,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공적으로 파시즘이나 전체주의를 옹호하고 국가적, 인종적, 종교적 혐오를 불러일으킬 경우에는 벌금 혹은 징역 2년 이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 성소수자, 노숙인 등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범죄 대상으로 포함하진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앰네스티 측은 폴란드 법 제도가 혐오범죄를 형법으로 처벌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범죄에 노출된 일부 소수자를 방치하는 이중적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등 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유로 공격을 당하더라도 경찰에서는 혐오범죄가 아니라 단순한 범죄 사건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폴란드 내무부 인권보호팀 공식자료로는 2014년 315건의 혐오범죄가 발생했고, 이중 민족·인종 관련 범죄는 223건이었다.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은 7건에 불과했고, 장애인, 노숙인 관련 혐오범죄는 수치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앰네스티는 이러한 수치가 실제로 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폴란드 정부에서 이들 소수자들이 공격당한 사건에 대해 전국적 통계 자료를 수집하려는 제도적인 노력이 부족해, 혐오범죄 문제의 규모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폴란드 지적장애인협회(PSOUU)가 2013년 말 폴란드 사회에 있는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응답자 중 87%가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61% 이상은 신체적 폭력을 당했고, 29%는 성폭력을 겪기도 했다. PSOUU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지적장애인의 경우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므로 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매우 크나, 이러한 폭력을 거의 신고하지 않고 자존감도 낮다”라며 “지적장애인에 대한 폭력은 이 집단에 대한 차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폴란드의 대표적 성소수자 단체 ‘동성애혐오 반대 운동’은 2014년 한 해에만 동성애자 또는 성전환자를 대상으로 발생한 증오범죄 사건이 최소 120건 이상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동성애혐오 반대 운동 측은 실제 폴란드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소수자 혐오범죄 수치는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노숙인에 대한 혐오범죄도 십수 건 이상이 폴란드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예컨대 2012년 10월 폴란드 남동부 제슈프(Rzeszów)에서는 가해자들이 노숙인 스테인슬로(Stanisław) 씨를 폭행하고 몸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이전에도 노숙인들을 “심심해서” 공격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음에도 법원에서는 범행 동기의 심각성을 판결에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폴란드 내에서 소수자 혐오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움직임은 더디다는 것이 앰네스티 측 주장이다. 2012년 폴란드 의회에 장애인, 성소수자, 노약자 등을 혐오범죄로부터 보호하는 형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지금까지도 일부 폴란드 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특수 검사, 경찰 조정관 등과 같은 제도적 절차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앰네스티는 폴란드 정부가 국제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소수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사실상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규탄했다.

 

앰네스티는 혐오범죄로부터 보호받는 대상으로 최소한 장애, 성 정체성, 성적지향, 경제적·사회적 상태 등을 형법 조항으로 포함하고, 이러한 내용을 범죄자 조사와 기소, 판결 등에 충분히 반영하라고 폴란드 정부에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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