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경험 98%, 성 정체성 숨긴 경험 92%
만 13세부터 18세의 청소년기. 어떤 이에게는 그립고도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시절이기도 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가능성 많은' 시기라고 말하며, 이성애와는 다른 자기 안의 감수성과 감정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잠깐의 감정적인 혼동", "크면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라는 식의 말로서 재단해버리는 이 사회에서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1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200명의 청소년 성소수자 중 92%는 학교 내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숨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성소수자 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은 이미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차별과 괴롭힘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응답자의 98%가 교사나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들은 경험이 있었다. 특히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표현이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는데, 교사로부터는 65%, 학생으로부터는 78%로 집계됐다.
그 외에도 "동성애는 도덕적이지 않다", "동성애자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동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치료할 수 있다." 등의 완곡한 혐오표현에서부터, 성소수자를 향해 '더럽다', '역겹다', '징그럽다' 등 비난의 말을 들은 경험도 상당했다. 이런 비난성 표현을 교사로부터 들었다는 응답자는 21명에 달했다.
그러나 혐오 표현에 대해 당사자들의 대응은 쉽지 않았다. 77%의 응답자는 성소수자임이 드러날까 봐, 12%의 응답자는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서라는 이유로 혐오 표현을 들어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대응 방식에 있어서도 못 들은 척하거나 무시했다는 답변이 58%였으며, 동의하는 척했다는 답변도 33%로 집계됐다. 직접 항의한 경우는 28.5%로 가장 낮은 수치였다.
실제 학교생활에서 물리적인 차별을 겪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 소수자에 대해 벌점이나 정학 등의 징계를 부과하는 정책이 있다는 응답은 10명, 강제 전학이나 퇴학의 중징계까지 존재한다는 응답도 6명이나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실제로 교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밝힌 학생은 20%였으며, 다른 학생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104명의 학생 중 86.5%가 ‘교사에게 알린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교사에게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알리더라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한 비율이 71.1%에 달했다.
![]() ▲지난 6월 말에 열린 퀴어퍼레이드의 한 장면, 혐오세력에 "love conquers hate(사랑이 혐오를 이긴다)" 피켓을 내미는 참가자 |
이런 문제를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같은 조사에서 중고등학교 1년 이상의 재직 교사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를 보면, 50%의 교사가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라는 말에 동의를 표했다. "동성애자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문장에 대해서도 39%가 동의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적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런 인식은 실제 상담 태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성 정체성 관련 상담을 요청받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73%가 '성적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관련 단체, 상담 기관 등을 소개해줄 것'이라고 답했으나, ‘아직 어려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득할 것’이라는 응답도 29.0%로 적지 않았다. 또한 ‘다른 학생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를 줄 것’(9.0%), ‘비정상적인 성적 태도임을 알려주기 위해 강하게 주의를 줄 것’(3.0%)과 같은 부정적 태도도 상당했다.
정욜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가는 "학교 내에서 내 주위에는 성 소수자가 없을 것이라는 또래 문화가 자리 잡혀 있는데 이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경우에는 직·간접적인 폭언과 폭력이 행사된다"며 "그러나 학교에서는 당사자들이 갖는 위축감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고 학교생활을 못 하는 것은 학생의 책임으로만 보고 질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욜 활동가는 "교육청의 결단이 필요한 지점으로 다양한 청소년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교육체계를 고민해야 하며, 학교 내에서도 우리 반에 성소수자 학생이 있다는 전제하에 학칙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 서울, 경기 등에 갖춰진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이 실효성을 갖도록 후속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인권위 실태조사에서는 성소수자 1126명과 중·고등학교 교사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실태조사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진행했으며, 청소년 성소수자를 비롯해 고용, 의료 등에 대한 실태조사 및 해외 법·제도 소개와 정책제언 등이 담겨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