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말하는 자신의 삶과 증상 ― 이기주

저는 반복성 우울장애와 화병을 앓고 있습니다. 증상은 시기에 따라서 달랐습니다. 심하면 자살충돌과 의욕상실, 흥미 결여 그리고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는 멍한 상태에 놓일 때가 많았습니다.

# 도미노처럼 무너진 삶, “7년 6개월 동안 난 암흑 속에 있었다”

심하게 발병했을 때는 40대 초반, 전치 14주나 되는 다리 골절상을 입은 때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집안이 뿔뿔이 흩어져 풍비박산되면서 각개전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사오정(45세 정년)이 유행하고 있어, 깁스한 상태에선 정상적인 취업이 불가능했습니다. 다리 다치기 전 취업을 위해 몇 군데 알아둔 곳이 있었는데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이마저도 다 놓치게 됐습니다. 생활환경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이사 가는 것도 꼬여 지하 굴속의 골방 같은 곳에 내동댕이쳐진 채 혼자 지냈습니다. 겨울엔 난방이 안 돼서 방 안에 있는데도 손이 동상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취업할 길은 막히고 식구들, 친척들로부터는 외면만 당하고. 심리상태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상황이 계속 안 되다 보니 소중한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신용불량자도 됐습니다. 하루하루 견디는 게 너무 힘들고 살 의욕이 없으니 끊임없이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무리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그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인 거죠.

▲이기주 씨

2002년경 당시엔 복지제도랄까,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있지도 않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직장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울증은 갈수록 심해졌는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살 의지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상적인 취업은 너무 먼 길이 되어버렸고 굶어 죽을 상황까지 가다가 ‘죽기, 아니면 살기’의 극한상황이 오면서 우연히 알게 된 일용직을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일용직을 다니면서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나 자신을 정화한다며 내심 의욕적으로 열심히 다니기도 했습니다. 눈뜨면 ‘어떻게 생을 마무리할까’ 고민만 하던 때라 의식을 다른 데에 몰두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살 충동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고 경제적인 여유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을 갖추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이땐 약을 복용하지 않고 처방받을 생각도 못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저 정신력으로만 버텼습니다. 늪에 빠진 상태였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거의 끊어지다시피 해 외부의 도움을 받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후 그나마 일용직에 몰두하면서는 끊임없는 자살 충동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심해지기도 했지만요.

첫 발병 후 별다른 치료나 지원은 못 받았습니다. 그나마 영등포구 정신건강증진센터에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기껏해야 병원을 소개해 준 것 말고는 특별한 조치가 없었습니다. 그때가 영혼이 파괴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제일 심각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7년 6개월간을 ‘하꼬방’ 같은 곳에서 지내다 나왔습니다.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했습니다. 정말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약물치료보다 심리치료를 원했는데 비용이 엄청 나서 마땅히 치료받을 데가 없었습니다.

# 정신병원에 대한 불신 싹텄던 어머니의 입원

강제입원·장기입원과 관련해서는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첫 발병 후 수차례에 걸쳐 강제입원과 장기입원을 겪었습니다. 어머니 면회를 가면, 어머니는 약에 절어 어눌한 상태로 대화도 잘 못 하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입원해있던 당시엔(1980~1996년) 약물치료라는 것은 약을 독하게 처방해서 그저 신경을 무디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병의 호전 상태는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약에 취해 누워 계시는 게 전부였습니다.

어머니는 수차례 반복적으로 입·퇴원을 하셨지만 병은 계속 재발했고, 실질적인 치료가 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입·퇴원 수속을 여러 번 거치면서 병이 났기는커녕 몸만 더 악화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는 퇴원이 낫다고 생각해서 어머니를 퇴원시켜 드렸습니다. 어머니도 퇴원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이후 약을 조절하면서 집에 계시니 훨씬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병원에서의 일입니다. 어머니를 면회하던 중 어머니가 말이 어눌하면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물어보니 ‘치매가 와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고 기가 막혀서 의사한테 따지며 물었더니 어머니가 더는 치매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겁니다. 정신질환 치료하려고 입원시켰는데 오히려 병을 더 얻는 결과가 나와서 도대체 어떻게 치료하길래 병을 더 얻게 되는 거냐고 의사한테 따졌습니다. 그날로 어머니를 퇴원시켜 집에 모셨습니다. 집에서 간호하니 일주일도 안 돼서 어머니의 치매 현상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병원에 신뢰가 안 가서 어머니를 쭉 집에서 돌봤습니다. 병은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건강이 상당히 악화했는데, 어찌 보면 이때부터 정신병원에 대한 불신이 싹터서 정신병원을 ‘치료기관’으로 인정하기가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정신병원이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생각했고, 강제입원이나 장기입원은 결코 환자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도 반복성 우울장애를 겪으면서도 병원에 갈 생각을 못 했고 약물치료도 꺼렸습니다. 전 이제까지 도를 닦는 마음으로 우울증과 화병을 다스렸습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의욕을 북돋웠지만 잘 안되었습니다. 홀로 신앙생활을 하며 하늘에 대고 내가 갈 길이 어딘가, 묻기도 많이 했습니다.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정신력과 신앙심으로 극복해나갔습니다. 지금의 의료시스템이었다면 병원을 찾으려고 노력했겠지만 당시로써는 약물치료에 대한 신뢰가 안 가서 정신력으로 이겨나갔습니다. 당시 제 상황은 입원하기에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지난 9월 한아름방송국에서 진행된 정신장애인 당사자 팟캐스트 녹음 당시의 이기주 씨(맨 오른쪽)

# 정신장애인, 사회복귀 위한 ‘일자리와 주거’ 간절

전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경제적인 부분은 수급비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장애 등록은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항우울제 약을 복용하며 가능한 우울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여러 일에 몰두하며 바쁘게 살려고 무척 애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10데시벨’이라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팟캐스트에 참여하고, 지금은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방송 모니터링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니터링단은 방송에서 정신장애인을 비하하거나 차별했을 때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리고 이에 대해 당사자들이 토론하는 모임을 하고 연말엔 모니터링 결과를 담은 책자를 발간합니다. 또 종종 카미(KAMI)에 요청 온 정신장애 관련 인권강의에 강사로 나가기도 하고, 정신장애와 관련한 기자회견, 시위 등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 인권 관련한 세미나, 학술대회에 꾸준히 나가 공부도 하고요.

정신장애인 당사자로서 현재 복지서비스에 대해서는 만족스럽지가 않습니다. 제일 큰 부분은 일자리에 대한 것입니다. 정신장애가 있는 상태에선 정상적인 일자리를 갖는 게 무척 힘듭니다. 물론 경력단절, 연령제한 같은 장벽도 있지만, 정신장애를 어느 정도 회복했음에도 정신장애 병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즉, 사회복귀를 위한 재취업 시설이 없습니다.

또한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 제일 힘든 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지역사회에 살 곳이 없는 게 장기입원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관련 서비스가 대폭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턱없이 적은 수급비로는 식생활 개선을 할 수 없어 건강 챙기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 반복성 우울장애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신력만 제대로 키운다면 약에 의존하지 않고도 완치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전에 마음의 깊은 상처라든가 오랫동안 느꼈던 트라우마 등이 치유되고 회복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조울병이나 조현병은 약물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고 완치가 안 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의학이 더 발달하면, 쉽진 않겠지만 완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복 과정에서 자기 주체성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이러한 과정을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꿈을 잊지 않는다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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