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 탈시설 선언 콘서트 현장

일어나는 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일어나라고 해서 일어났고 밥을 먹으라 해서 밥을 먹어야 했다.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그럴 때면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주먹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문턱을 넘지 못해서 온종일 벽지를 보고 그것이 심심하면 내일은 천장을 보고 그 다음 날은 반대쪽 벽지를 보고 사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23일 서울 시민청 활짝 라운지에서 열린 탈시설 선언 콘서트,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를 슬로건을 걸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런 죽음과도 같은 시설에서의 삶이 아닌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를 외치는 '탈시설 선언 콘서트'가 23일 저녁 서울시민청 지하 1층 활짝 라운지에서 열렸다.

# "바위에 달걀을 계속 치고 나니 체험 홈이 생기고 탈시설 계획이 생겼다"

콘서트의 1부 "탈시설을 돌아보다"는 탈시설운동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던, 2009년 '마로니에 8인'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석암재단의 비리 문제를 알게 되고 이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시설에서 나오게 된 8명의 장애인은 무작정 마로니에 공원에 서게 됐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그들은 살기 위해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시설과 싸우다 시설에서 나왔지만, 막상 살 수 있는 집도 없었으며 활동보조인도 없었다. 그래서 살 곳을 마련해 달라며,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62일을 지새웠다. 그러나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 자리에서 그들은 원할 때 자고, 원할 때 먹을 수 있음에 '자유'를 느꼈다.

▲석암재단 비리와 맞선 8인 중 한 명인 김진수 김포 자립생활센터 부소장
"그때만 해도 바위에 달걀 치기였죠. 시설 비리 문제도 있었지만 다급한 것은 집이었어요. 그 당시 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을 3개월간 따라다니며 요구했어요. 그러고 나니 체험홈이 처음으로 생겼죠"

석암재단 시설에서 나온 8인 중 한 명인 김진수 김포 자립생활센터 부소장의 이야기다. 그는 이제 막 시설을 나온 장애인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주거이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서울시에 탈시설을 지원하는 제도적인 체계를 마련하고 활동보조서비스의 시간을 늘려 자신들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그들의 투쟁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에 '장애인 전환서비스지원센터'가 설립됐다. 그리고 지난 2014년 서울시는 '탈시설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들이 갈 길은 멀다. 시설 밖으로 나와도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노동환경 속에서, 그들이 수급을 통해 혹은 적은 급여로 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김진수 부소장은 이런 문제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었다.

"체험홈에서 6개월 살다가 자립생활가정으로 옮겨서 6년을 살아도 그 후에 갈 곳이 없어요. 영구임대 주택을 가려고 5년 동안 빠짐없이 지원했는데 한 번도 된 적이 없어요. 생각해보면 하나의 자립생활가정에서 6년이 지나면 기껏 3명에서 4명 나오는데 LH공사와 서울시에서 논의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요."

사회 구석구석에 뚫려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메우고 있는 그들의 길은 험난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대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1부의 끝으로 그들은 이 투쟁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자립생활은 그들에게 "꿈이고 행복", 그리고 "자유"이기에.

# 한 시설의 거주인의 삶이 아닌,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삶으로

2005년, 장애인거주시설의 원장과 관련 종사자가 아닌 시설 거주 장애인 당사자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 조사"가 나왔다. 조사를 진행했던 활동가들은 더 이상 시설 민주화가 아닌 '탈시설'을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삶을 직접 만나고, 그들과 세상 속에서 함께 살기 위해 발로 뛰고 있는 활동가의 이야기, 2부 "왜 탈시설인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설 인권침해에 활동가들이 대응해 오면서, 조금씩 시설 민주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조아라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최근 인천 해바라기 시설 문제에 대응하면서 느낀 점을 전했다.

"해바라기 시설에서 의문사하신 분과 교사의 폭행으로 돌아가신 분이 있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났죠. 그래서 해바라기 시설로 조사를 나가게 되었고, 거주인들이 살아온 기록을 살펴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들의 기록을 보면 다른 시설로 옮겨 갔던 적이 5번에서 6번씩은 있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시설의 문제가 드러나면 책임자들은 법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남은 사람들은 다른 시설로 옮겨지고 마는구나. 그럼 또 같은 삶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잖아요. 어떤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탈시설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왼쪽부터 순서대로 조아라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 김정하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 남구현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를 맡은 임영희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 사무국장

실상 이런 탈시설을 하기 위해서는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당사자의 의지가 없다면 힘들다. 그렇기에 시설에서는 나가지 못하도록 겁을 주고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겁을 주기 위한 폭력, 폭언 등의 문제가 방송에 보도되면서 시설의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에 대해 김정하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 운동을 하는 이들이 해야 할 지금의 역할에 대해 짚었다.

"이제는 시설에서 탈시설 이야기를 하면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가도 된다고 말하면서 나가면 어떻게 살래? 하고 기를 죽여요. 이렇게 시설이 쓰는 방법을 보면 시설운영자도 바뀌어야 하지만 거주하고 있는 당사자들을 많이 만나서 기를 살리는 것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탈시설을 해야 하는 이유는 '좋은 시설'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삶이 자유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날이 교묘해지는 시설에 맞서 우리가 당사자들에게 의지를 갖추게 하기 위해서는 탈시설을 하고서 떳떳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했다. 이를 통해 시설 밖으로 나와도 괜찮다고 믿음을 심어줘야 했다. 이에 남구현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

"탈시설을 해서 사회로 나와도 그 사회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은 살기 힘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한 바꿔나가는 싸움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결국, 장애해방은 사회의 해방과 함께 가야 합니다"

▲이번 탈시설 선언 콘서트는 탈시설 당사자들의 모임 '벗바리'에서 만든 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애인은 다 시설에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어요", "33년 동안 저는 한 번도 지하철을 타본 일이 없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기념일은 시설에 들어간 날과 시설을 나온 날뿐이에요", 이는 탈시설 콘서트를 진행하는 곳곳에 붙어있던 현수막에 적힌 탈시설을 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다. 2부가 끝나고서 탈시설 장애인 모임 벗바리가 직접 만든 선언문 낭독의 시간이 이어졌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할 불완전한 존재로서 동정과 배려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 사회의 그릇된 가치와 통념을 바로잡고자 한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모든 말과 인식 그리고 장애인거주시설과 그에 관한 모든 것들에 반대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선언문은 시설 속에서 자행되는 부당한 문제들에 대해 지적하고 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해야 할 국가에 책임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총 15조로 구성된 선언문은 배제와 분리를 통해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 생산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담았으며 이러한 문제를 연대를 통해 헤쳐 나갈 것을 선포했다.

▲"자유로운 삶, 시설밖으로!!"라는 행사의 슬로건을 담은 피켓을 든 참가자

▲시설을 나온 이들이 가져왔던 생각과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현수막이 선언콘서트가 열리는 곳곳의 기둥에 붙어있다.

탈시설 선언문

[전문]

우리는 장애인을 보호받아야 할 불완전한 존재로서 동정과 배려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 사회의 그릇된 가치와 통념을 바로 잡고자 한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모든 말과 인식 그리고 장애인거주시설과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반대한다. 시설은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억압적이고 계급화된 관계, 틀에 매인 규칙과 강제적 시간통제에서 오는 자기결정권 침해, 사생활 없는 단체생활, 그리고 궁극적으로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배제 하고 격리하는 부당한 결과물이다.

모든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 행사 및 탈시설 선언을 전 사회에 공포하며, 이를 현실화할 정책 마련에 국가가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제1조.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인간이다.

제2조. 우리는 시설 밖에서 살아갈 자유와 권리가 있다.

제3조. 삶을 모두 다 동등하고 가치있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제4조. 시설은 장애인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라.

제5조. 시설은 감옥처럼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제6조. 내 삶의 보호자는 나다. 시설이냐 지역사회냐 내가 살곳은 내가 정한다.

제7조. 정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탈시설 정책을 수립하라.

제8조. 모든 시설을 폐쇄하고 자립생활 주택을 많이 만들어라.

제9조. 정부는 시설에 들어가는 돈을 자립하는 우리들에게 달라.

제10조. 모든 장애인에게 등급이나 유형에 상관없이 활동지원 서비스를 의무화하라.

제11조. 밥만 축내는 동물로 취급하지 말라. 우리도 일할 수 있다.

제12조. 모든 장애인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현하라.

제13조. 정부는 공공장소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라.

제14조. 우리는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다니고 싶다. 모든 대중교통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하라.

제15조.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지켜졌을 때,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탈시설에 연대하라. 이 선언이 이루어질때까지 함께가자. 자유로운 삶, 시설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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