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석 열사 26주기를 맞아
열사님도 이 순간 함께 투쟁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
열사님께 드립니다.

‘장애등급판정 재심사 중단과 2011년 활동보조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장애인들이 노숙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지하철 종각역 지하 1층의 답답한 공기에 피로감이 엄습합니다. 무수하게 많은 사람이 지나가고 우리는 열심히 외쳤습니다.

“서명하고 가세요.” “서명하고 가세요. 장애인 활동보조 확보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이 다가와 서명합니다.

그 중 한 청년이 귀에서 MP3 이어폰을 빼고 가볍게 서명하고 사라져갑니다. 그의 발랄함을 보다가 내 곁의 그와 비슷한 나이 또래 장애인 동지를 봅니다. 며칠째 농성으로 얼굴은 지쳐 눈을 반쯤 내리고, 스키니진과 산뜻한 패션 대신 노란 몸피시와 요구안이 줄줄이 써진 판을 온몸에 두르고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는 청년, 우리의 동지가 있었습니다.

우리 동지도 그 청년과 같은 또래인데, 어떤 청년은 음악을 들으며 가볍게 지나가고, 우리 동지는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서명받고 있습니다. 우리 동지와 지나간 청년과 다른 것은 장애가 있다는 것뿐입니다. 우리 동지는 지역의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되며 또한 그것을 당연한 운명으로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청년 장애인 동지는 장애인운동을 만나면서 서서히 자기 운명을 거부하는 활동가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지하철 바닥에서 노숙하며 몇 날 며칠 김밥과 차가운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비를 맞아가며 투쟁하며 지나가는 비장애청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동지는 자기 삶의 차별에 정면으로 저항해 가고 있습니다.

김순석 열사님, 보시고 계시지요?

지금 우리 장애인들은 장애가 소외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자기 삶의 주체로서 자립생활을 하고 사회참여 평등권을 주장하며 스스로 자기 권리를 쟁취해가려고 합니다. 우리 청년 동지들이 저항의 투쟁을 가열차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해방의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순간에도 어느 시설에서 또는 어느 곳에서는 당신이 돌아가셔야만 했던 그 절망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는 장애인이 있습니다. 열사님이 사셨던 시대부터 있어 온 가진 자들의 이기와 장애에 대한 차별과 비장애 중심의 사회구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사님이 혼자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차별의 벽 앞에서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여기 주저앉지 않으려고, 여러 동지들과 함께 정면으로 투쟁해 갑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좌절과 절망과 차별과 소외와 외로움을 유산으로 남겨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열사님도 이 순간 저희와 함께 투쟁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열사님의 좌절이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열사님의 절망감이 우리의 투쟁이 됩니다. 열사님의 외로움이 우리의 연대가 됩니다.

열사님, 당신이 우리 삶의 현장에 계시기에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장애해방 되는 그날 당신이 환하게 웃으시리라 믿으며 우린 열심히 투쟁합니다.

장애인차별철폐 투쟁!

* 9월 19일은 1984년 서울시장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김순석 열사의 26주기입니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가 열사께 드리는 추모의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