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뇌병변 장애청소녀’들이 겪는 ‘학교생활’ 차별 실태조사 발표회
“전동스쿠터로 지하철 타고 등하교하는 데 1시간이나 걸려요. 비장애 학생이면 버스 타고 성수대교 건너 10분 걸리는 거리를 두 번에 걸쳐 환승해야 해요.”
“수업할 때 필기가 제일 어려워요. 필기도 노트북이나 패드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손으로 쓰는 것보다는 낫거든요. 근데 그게 내 생각이니까 말을 못했어요.”
“장애로 인해 친구들과 못 어울리거나 차별받은 적은 있지만 무조건 참았어요. 어차피 말해봤자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깐.”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아래 마실)’은 올해 하반기 지체·뇌병변 장애청소녀 16명에 대해 학교생활과 관련한 1:1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또한 부모와 교사 집단에 대한 포커스 인터뷰도 별도로 진행했다. 설문 영역은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인식, 보조기구 사용, 수업 및 학교생활, 다른 학생과 교사와의 관계, 인권과 성교육 상담, 자기인식에 관한 차별의 경험에 대해서였다.
조사 결과 장애청소녀들이 겪는 차별은 전방위적이었다. 학교 통학에서부터 수업시간, 교과별, 쉬는 시간 이동, 학교 밖 체험활동, 동아리, 심지어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급·특수학교에서조차 차별은 존재했다. 마실은 2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이러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조사원으로 참여한 20~30대 지체·뇌병변 장애여성들은 “내가 학교 다닐 때와 큰 차이가 없어 놀랬다”며 설문 결과에 대해 씁쓸함을 토로했다. 이번 분석글은 조사원 내부 워크숍과 자문을 거쳐 작성되었고 조사원 열 명 중 김라현 마실 활동가,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가 발표했다.
- 통학에서부터 시작된 차별, 학교 밖 외부활동에서도 이어져
장애청소녀들이 겪는 차별은 통학에서부터 시작했다.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장애청소녀 대부분은 부모의 승용차로 통학한다. 김라현 활동가는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으로의 등하교에 불편함이 많기에 가족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는 장애학생 등하교 문제에 그치지 않고 가족 전체가 생활에 제약을 받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어렵게 학교에 도착한 장애학생들. 하지만 학교 곳곳에 장벽이 존재한다. 우선 교내에서 수업받거나 이동할 때 신체의 각 부분을 보완해주는 보조기구의 이용이 원활하지 않다.
“선생님이 학습보조기구에 대해 알아보거나 권유하지도 않았어요. 워커를 신청해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는데 안 해준 적이 있어요. 휠체어 탄 다른 친구도 학교에 필요한 것을 요구했는데 소용없었고, 그걸 보니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 더 이상 다른 걸 요구하지 못했어요.”

보조기구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지만 필요성을 인지하더라도 학교에 요구하기 힘들었다. 과거에 요구한 적이 있으나 학교 측에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서 체념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장애청소녀는 그렇게 불편함에 익숙해진 채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또한 보조기구를 사용해본 적 없으니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보조기구는 장애학생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다.
보조기구가 적절히 지원되지 못하는 상황은 학습권 침해로도 이어진다. 장애로 필기가 어려운 학생은 필기를 제대로 할 수 없고 저시력인 학생은 학교에서 지원해준 돋보기로 교과서는 볼 수 있지만 칠판 글씨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지체·뇌병변 장애청소녀들은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교과목을 학습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비장애인 중심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김 활동가는 “주로 손으로 복기하며 학습하는데 장애청소녀는 주어진 시간에 학습할 내용을 받아 적고 습득하기 어렵다. 적절한 방법이 개발되지 못한 채 학년은 올라가면서 수업은 점점 어려워진다”면서 “장애·비장애 학생의 격차는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차별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체육·미술·음악 수업에서의 차별은 더욱 노골적이다. 교사들은 활동에서 장애학생을 배제하거나 할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구경만 한 미술수업에 대해선 점수를 주지 않는 일도 있었다.
“얼마 전 체육 시간에 수영하는데 애들은 수영해서 땀 흘리고 난 수영장 밖 땡볕에 혼자 있다가 땀을 흘렸어요. 체육 시간에 나는 짐꾼이 돼요. 물건 맡겨달라고 오는 애들 때문에. 체육 시간마다 짐을 잔뜩 보고 있는데 이건 정말 싫어요.”
학교를 떠나 외부활동에 참여하게 될 때도 이동과 접근을 이유로 참여가 제한됐다. 동아리 활동 참여도 장애청소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따라 택하기보다 장애특성을 고려해야 했다.
이러한 장애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는 도우미 제도(또래 학생을 도우미로 정해 장애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 지원해주는 제도로 도우미 학생에겐 봉사시간이 인정된다)를 운영하고 있다. 설문 참여자 대부분도 교내 도우미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우미라는 단어엔 이미 ‘장애인=도움받는 사람’, ‘비장애인=도움 주는 사람’이라는 위계와 차별이 존재했다.
그 안에서 장애청소녀들은 평등한 또래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들은 심한 소외감과 위축감을 느껴야 했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장애·비장애학생들은 섞이기보다 끊임없이 분리됐다. 위계질서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장애학생에 대한 비장애학생의 부족한 장애인식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음악 시간에 가창시험을 보는데 언어장애 때문에 발음이 이상해서 짓궂은 남자애가 며칠 동안 그 발음을 흉내 내며 계속 놀렸어요. 장난인 걸 아니까 보통 무시하고 넘어가요. 그런데 그 아이가 이후에 짝이 됐는데 이유 없이 계속 때렸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왕따 당한 적이 있어요. 남학생들이 머리 감았는데 안 감았다고 머라하고 따돌렸어요. 수동휠체어 탔는데 장난을 쳐 공포감을 조성하고 밀어준다고 하면서 뒤로 젖혀버리고….”
그러나 학교 내에서의 이러한 차별과 폭력에 장애청소녀 대부분은 외부에 적극적으로 말하기보다 참는 방법을 택했다. ‘말해도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이들은 경험적으로 체득해 알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선 인권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형식적이고 지루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심지어 인권교육이 ‘인권침해’가 된 경우도 있었다. 교사가 인권교육의 일환이라며 장애청소녀가 수업 들을 일반학급의 학생 한 명 한 명과 일일이 인사시킨 것이다.
“특수반 선생님이 반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 인사하게 했어요. 너무 창피하고 불편했어요. 한사람 콕 찍어서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교육 역시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교내 성교육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역할을 내면화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장애청소녀 중엔 자신의 장애를 긍정하는 이도 소수 있었으나 대부분 부정하며 장애는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김지수 대표는 그중에서도 월경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생리대를 본인이 교체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교체해주는 것에 많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면서 “이러한 경험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데 어려움이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장애학생들만 있는 특수학급·특수학교에선 상황이 나았을까. 당사자들은 이곳에서도 장애유형과 정도, 각자의 욕구에 따른 개별화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불편과 차별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특수학교에 다니는 지체·뇌병변장애청소녀의 경우, 대학 진학을 위한 수능을 공부하고 싶어도 발달장애 중심으로 수업이 짜인 특수학교 내에서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긴 어려웠다.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학교생활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에도 불구하고 참여자들은 대체로 ‘학교를 안전하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는 곳’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라현 활동가는 “내면의 불안과 학교 외 어디에서도 내게 맞는 기회를 누려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면서 “지체·뇌병변장애인의 속도를 고려해 시간을 더 줄 곳이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우려,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 대한 두려움이 학교에 대해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듯하다”라고 해석했다.

- 장애청소녀 문제, 학생 인권 전반에 대한 고민과 함께 가야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진희 장애여성 공감 사무국장은 “통합교육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학교 환경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있다”면서 “장애청소녀의 문제를 학생 인권 전반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며 학교 환경이 동시에 바뀌는 과정 없이는 장애청소녀의 인권 확보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도우미, 도움반과 같이 장애청소녀의 경험을 특수화하는 표현도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 사무국장은 “장애청소녀 당사자에겐 학교가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을 배려와 도움의 문화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장애라는 낙인을 심화시키는 부분이 된다”고 전했다.
이 사무국장은 지체·뇌병변청소녀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청소녀는 모든 행동이 성적으로 읽히거나 혹은 성적 행동을 해도 성적 행동이 아닌 과잉성애 혹은 탈성애로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반면 지체·뇌병변 장애청소녀의 경우엔 탈성애됐다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청소녀의 섹슈얼리티는 “별도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상성, 성규범·성역할 속에서 몸에 대한 통제와 같이 이뤄진다”면서 “젠더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것과 함께 문화적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울시교육청 차원에서 제도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 교수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접수된 상담통계는 올해만도 천 건이 넘지만 장애와 관련된 사례는 거의 없다”라고 꼬집었다.
한 교수는 또 “최근 서울시교육청 내 학생인권교육센터가 인력을 확충하고 비정규직 조사관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앞으로 힘이 막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장애인권의 특수성에 대해선 잘 모른다.”면서 “따라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별도로 장애학생을 위한 장애학생차별금지조례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