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점자규정 개정 후 10년 만에 2차 개정안 공청회 열려

점자의 중복성과 비일관성을 개선하자는 취지가 반영된 ‘한국점자규정’ 개정안이 공개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점자 번역과 교육의 편의를 높였다는 의견과 사용자가 불편을 겪을 것이라는 의견이 충돌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등은 3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공청회를 통해 한국점자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해 100여 명이 모였다.
‘한국점자규정’은 1997년 문화체육관광부 고시로 제정됐고, 2006년 한 차례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후 10년간 규정을 개정하지 못해 현대 사회 다양한 학문, 기술, 예술 분야의 새로운 개념과 기호를 점자 체계에 반영하지 못했다. 또한 여러 문자를 같은 점자 형태(점형)로 표기하고, 묵자(시각장애인이 점자가 아닌 문자를 일컫는 용어)와 다른 표기 방식을 사용하면서 점자 사용과 번역에 혼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차 한국점자규정 개정안 연구를 진행한 뒤, 지난해 10월 시각장애인 당사자와 점자 전문가 등을 포함한 점자규범정비위원회를 구성해 개정안을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 중 한글 점자 규정을 보면 점자가 같은 점형으로 여러 문자나 기호를 표현하는 문제를 수정했다. 구체적으로 기존 쌍시옷 받침을 3-4점(6점 점자 기준으로 왼쪽 위, 중간, 아래 점을 1~3, 오른쪽 위, 중간, 아래 점을 4~6으로 표기) 약자에서 시옷(3점)을 두 번 쓰는 것으로 바꿨다.
기존 점자규정은 모음 ‘ㅖ’도 쌍시옷 받침과 같은 점형을 사용하면서, 상황에 따라 두 문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기존 점자는 ‘ㅏ’, ‘ㅑ’ 등 모음자에 이어 ‘예’를 사용할 때 앞에 붙임표(-)를 붙여왔다.
또한 기존에는 성, 썽, 정, 쩡, 청 등을 표기할 때 ‘ㅓ’와 이응 받침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영’(1-2-4-5-6점) 약자로 대체했으나,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예외 규칙을 삭제했다.
3-6점으로 붙임표와 똑같이 표기했던 소괄호는 기존 대괄호 표기로, 대괄호는 기존 중괄호 표기로 바꿨다. 중괄호 점형은 새롭게 만들었다.
이어 개정안에는 묵자와 달랐던 표기방식도 수정됐다. 한글 자음자가 순서를 나타낼 때 반드시 마침표를 쓰도록 했고, 줄표(_)와 줄임표(…)를 쓸 때 띄어쓰기 방식도 묵자의 표기 방식을 따르도록 했다.
아울러 이번 개정안은 지난 2015년 1월부터 개정된 한글 맞춤법 변경 사항도 반영됐다. 낫표(「, 」), 겹낫표(『, 』) 대신 화살괄호(<, >), 겹화살괄호(《, 》)를 쓸 수 있다는 맞춤법 규정에 맞게, 화살괄호 관련 점자를 새로 추가했다. 또한 따옴표와 표기 방식이 같았던 낫표를 성격이 유사한 화살 괄호와 같은 점자를 사용해 표기하도록 했다.
이외에 규정에 사용 예시를 포함해 점자 번역의 편리함을 도모하고, 옛말에 대한 규정을 정비하는 등의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안 내용을 두고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은 점자를 사용이 더 불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약자를 풀어쓰게 되면서, 점자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활용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안익태 부산점자도서관 사무국장은 “결론적으로 쌍시옷 받침을 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써야 할 글자 수가 늘어 입력 속도가 느려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쌍시옷이 겨우 한 칸에서 두 칸으로 늘어나는 문제에만 그치진 않는다. 쌍시옷 약자를 쓰면 줄 끝까지 쓸 문장도 한 줄이 더 늘어나 더 많은 공간을 버리게 된다.”라고 비판했다.
안 사무국장은 “만약 쌍시옷 받침이 사용 빈도가 낮은 약자였다면 이렇게까지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ㅖ’에 붙임표를 붙이는 것은 사용 빈도도 (쌍시옷 받침보다) 낮다. 이런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편리한 쌍시옷 받침을 없애는 누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지적했다.
공청회에 참가한 일부 시각장애인들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일부 약자를 풀어쓰는 것이 묵자책보다 두꺼운 점자책의 부피를 기존보다 더 늘릴 수 있다며 우려했다.
반면 묵자를 점자로 번역하는 점역사, 점자를 가르치는 교육계는 이번 개정안에 찬성의 뜻을 보였다. 박옥련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 겸임교수는 “졍, 셩을 점자로 번역해야 할 경우 여타 한글 점자 체계와 다르게 약자(‘영’)를 사용해 적지 못하고, 모음 ㅕ와 받침 이응을 적어야 했다”라며 “예외적으로 적용되던 규정이 최소화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다만 박 교수는 점자 번역의 편리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통일된 문서 형식을 규정하고 다양한 사용 예시를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허병훈 서울맹학교 교사도 “한 가지 점형을 이중으로 사용하면서 규칙의 일관성이 흐트러져, 점자를 처음 배우는 학습자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 문제점이 제기돼왔다”라며 “(이번 개정안은) 한 가지 점형을 이중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규정한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허 교사는 “(이번 개정안은) 점자가 규칙이 명쾌한 문자 체계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동시에, 점자 번역의 자동화를 촉진하는 전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립국어원은 이번 공청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점자 표기의 국제적 추세를 반영한 수정 개정안을 오는 3월 발표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