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애인'의 창작극 '3인 3색 이야기'
장애 너머 인간의 보편적 고민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극단 '애인'은 2월 19일부터 21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연극 '3인 3색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극단 소속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극을 쓰고, 연출하고, 연기를 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세 개의 극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여있다. 세 극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물론, 분위기도 제각각이다. 
 
건드리지 마세요 (극본, 연출: 강예슬 / 은수 역: 하지성, 서은 역: 진성선)
집세를 받으러 와서 빌라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물주를 피해 옥상으로 피신해 있는 은수, 서은 남매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책만 읽는 은수와 달리, 서은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땅 위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한다. 
 
소리전쟁 (극본, 연출: 백우람 / 하남 역: 호종민, 미현 역: 이보원, 집주인 역: 김해운)
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하남은 젊은 예술인들의 동네, 홍대로 이사를 왔다. 작은 옥탑방이지만, 홍대에 자기 집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하남은 곧 엄청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하남의 집 맞은편에 아침마다 큰 소리로 베토벤의 '운명'을 치는 미현이 살고 있는 것. 피곤에 지친 하남은 복수를 결심하고 화려한 기타소리로 맞불을 놓는다. 하지만 미현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오늘도 '운명'을 치는데...하남의 복수는 왜 실패했을까.
기억이란 사랑보다 (극본, 연출: 김지수 / 준민 역: 이수진, 영숙 역: 원영숙, 수영 역: 이보원, 남일 역: 하지성)
버스에 가방을 두고 내린 준민은 가방을 찾기 위해 정류장 근처 도장가게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걸음걸이가 불편한 영숙이 도장을 파고 있다. 영숙은 넉넉한 마음씨를 가져 동네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지만, 남일이 키우라고 권하는 강아지 '복실이 새끼'는 한사코 거절한다. 영숙을 지켜보던 준민은 쉽게 닳지 않아 오래 쓴다는 벽조목, 즉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도장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준민은 이 도장을 혼인신고서에 쓸거라고 설명한다. 도장 깎는 영숙 옆에 앉아 갑자기 자기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 준민.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영숙은 어쩐지 마음이 먹먹해진다.
'건드리지 마세요'. 옥상에 올라와 있는 은수와 서은. ⓒ극단 '애인'
'건드리지 마세요'. 옥상에 올라와 있는 은수와 서은. ⓒ극단 '애인'
 
사람들이 '장애인 예술'에서 으레 기대하는 것은 장애인의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연극 '3인 3색 이야기'는 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극을 쓴 사람들과 배우들 대부분이 장애인 당사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 의도가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장애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극본과 연출을 담당한 강예슬, 백우람, 김지수, 그리고 연기자로 무대에 오른 하지성, 이수진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비마이너(아래 비): 긴 장편이 아니라 단편 세 개가 모인 옴니버스 형식이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지수 극단 '애인' 대표(아래 김): 제가 극단을 9년째 하고 있어요. 그동안 장애인 당사자는 주로 연기자로 무대에 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조금씩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연기뿐 아니라 희곡도 쓰고 연출도 할 수 있는, 연극 하나를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극단이 되어 보자. 그래서 가능하면 더 많은 장애인이 극도 쓰고, 연출도 해보는 기회를 주고자 옴니버스 연극을 만들게 됐습니다.
 
비: 연출가님들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각자의 극을 통해 관객들께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강예슬 연출가(아래 강): '건드리지 마세요'에서 등장인물들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죠. 하지만 저는 옥상으로 쫓기듯 도망쳐온 이 작고 여린 존재들이 부서져버리지 않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는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백우람 연출가(아래 백): 전 언어장애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의사소통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낍니다. 제가 느끼는 답답함을 좀 더 확장해서 소통의 어려움을 관객들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길 원했습니다. 
 
김: 저는 소수자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대사나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수자들이 사회에서 느꼈을 차별과 배제, 여기서 비롯한 아픔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비: 그렇다면 이번엔 배우들께 여쭤볼게요. 연기를 하면서 특히 중점을 뒀던 것은 무엇인가요? 신체적 장애로 인해 특별히 신경을 썼다거나, 소수자의 상황에 이입하기 어려웠다거나 하는 애로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수진 배우(아래 이): 제가 유일한 비장애인 배우긴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 소수자의 감정에 공감을 못해서 어려웠던 점은 전혀 없었어요. 다만, 제가 연기한 준민이 워낙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다 보니, 이 감정의 흐름을 어떻게 어색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대본을 읽을때도, 연습을 할때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무대에 올라와서도 여전히 어렵네요.
 
하지성 배우(아래 하): 신체적 장애 때문에 고민한 것은 별로 없었어요. 저는 인물의 감정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건드리지 마세요'에서 제가 담당한 은수는 시종일관 무기력한 인물이예요. 이 무기력함을 제가 완전히 이해해야 관객들이 보실때에도 설득력 있게 표현을 할텐데, 그게 선뜻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저도 이게 여전히 어렵네요! 
'소리전쟁'. 하남은 아침마다 피아노를 시끄럽게 쳐대는 미현에게 복수하기 위해 밤마다 기타를 친다. ⓒ극단 '애인'
'소리전쟁'. 하남은 아침마다 피아노를 시끄럽게 쳐대는 미현에게 복수하기 위해 밤마다 기타를 친다. ⓒ극단 '애인'
 
비: 장애인이 쓰고, 장애인이 연기했다고 하기에는 '장애'가 극의 중심 주제로 두드러지지는 않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강: 저희 극단이 주목을 받았던 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렸을 때였어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장애인의 삶, 그 특수한 이야기를 극화하는 작품도 했지만, 고전의 반열에 올라 보편성을 검증받은 극을 장애인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에 중점을 뒀었죠. 저는 이번에 극본을 쓰면서도, 그 보편성에 집중했습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누구나 연기할 수 있는 극을 쓰려고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장애는 두드러지지 않게 되었어요.
김: 저도 비슷해요. 강예슬 연출가의 작품에 비하면 영숙의 장애가 극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조금 더 부각되긴 하지만, 그 자체가 극을 끌어가진 않지요. 저는 장애인만이 아니라 소수자의 이야기를 두루두루 쓰고 싶었거든요. 보편적인 테마 속에 소수자의 특수한 경험과 아픔을 엮는 데 초점을 맞췄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장애는 두드러지지 않아요.
백: 제 작품 역시 장애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합니다. 저는 장애인 배우가 무대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관객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보편의 이야기를 장애인의 목소리와 장애인의 몸짓으로 볼 때, 관객들은 낯설음과 불편함을 느끼게 되겠죠. 그리고 내가 왜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가 곱씹어보게 될 겁니다. 
비: 장애인 배우가 등장했을 때의 '불편함'.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연극은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강: 맞습니다. '낯설게 하기'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여 줄 것인가도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장치'를 합니다. 관객이 장애인 배우의 움직임과 표현방식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는 겁니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할 때 배우의 움직임이나 그의 말을 '관찰할' 시간적 여유를 넣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첫 장면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연습도 제일 많이 해요. 
'기억이란 사랑보다'. 영숙, 준민, 수영이 도장가게에 둘러앉아 있다. 세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아픔도 돌아본다. ⓒ극단 '애인'
'기억이란 사랑보다'. 영숙, 준민, 수영이 도장가게에 둘러앉아 있다. 세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아픔도 돌아본다. ⓒ극단 '애인'

'장애인이 쓴 극본과 비장애인이 쓴 극본, 혹은 장애인 배우에게 디렉팅을 하는 것과 비장애인 배우에게 하는 것의 차이점'을 질문했을 때, 연출가들과 배우들이 이 질문에 뭔가 답을 해줘야한다는 의무감에 한참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장애인이 만든 연극은 뭔가 다르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게으르고 편협한 질문이었는가. 질문을 던져놓고 보니 마음 속의 편견이 명징하게 드러나 이내 무안해졌다. 그리고 극단 '애인'은 의도했건 아니건 '장애인 연극'에 대한 기자의 안일한 기대감을 깼다. 그리고 그 자리에 편리한 상식에만 기댔던 기자의 편견이 얼마나 뿌리깊었던가, 라는 새로운 질문의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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