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3세에서 ‘2개월’ 지났다는 이유로 성폭력 사건이 아닌 ‘성매매’로 기소
법원, 손해배상 청구 기각… 다른 가해자들도 ‘솜방망이’ 처벌

“지적 능력이 7세 수준인 아동의 자발적 성매매가 웬 말인가?” 이번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내용의 손피켓을 든 기자회견 참가자.
“지적 능력이 7세 수준인 아동의 자발적 성매매가 웬 말인가?” 이번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내용의 손피켓을 든 기자회견 참가자.
만 13세의 지적장애 아동에 대한 성폭행 사건을 '자발적 성매매'로 판단한 법원의 판결에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법원은 '성매매'라는 이유로 원고 측의 손해배상청구도 기각했다. 이에 십대여성인권센터를 비롯한 178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4년 6월, ㄱ 양은 엄마의 핸드폰을 가지고 놀다 떨어뜨려 액정이 깨지자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가출했다. ㄱ 양은 만 13세이나 지능지수 70의 경계성 지적장애 아동이었다. 집을 나온 ㄱ 양은 핸드폰 친구찾기 앱으로 “가출함, 재워줄 사람”이라는 방을 만들었다. 친구찾기 앱은 ㄱ 양이 장애로 말이 어눌하고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움을 겪자, ㄱ 양의 모친이 채팅을 통해서라도 또래 아이를 만나게 해주려는 마음에 ㄱ 양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이후 ㄱ 양은 그 앱을 통해 성인 남성들을 만나게 됐고, 가해자 양아무개 씨는 ㄱ 양을 모텔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이후 ㄱ 양은 공포와 혼란스러움에 더더욱 집에 돌아가지 못한 채 핸드폰 앱을 통해 자신을 재워줄 ‘친구’를 찾았다. 그렇게 ㄱ 양은 이후 6명에 달하는 남성 성인들에게 지속해서 성폭행을 당했다. 모친의 가출신고로 ㄱ 양은 1주일 만에 다시 집에 돌아오게 됐지만 이미 몸과 정신은 피폐해진 상태였다. 모친은 서울의 한 해바라기 아동센터 지원으로 성폭력 신고를 한 뒤 증거를 모아 경찰에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ㄱ 양은 극도의 불안과 혼란, 심각한 우울증상을 보이며 급기야 자살시도까지 했다. 결국 모친은 아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만 했다. 가장이었던 엄마 역시 이 일로 생업을 중단하게 되면서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생각한 사건 해결은 난항을 겪었다. 만 13세 이하 아동은 합의 여부와 관련없이 성폭행 인정이 되지만, ㄱ 양의 경우 나이가 ‘만 13세 2개월’이라는 이유로 성폭력 사건이 아닌 성매매 사건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가해자 양 씨 역시 ‘성매매 위반’으로 기소됐으며, 미성년자에 대한 유사성교행위가 인정되어 벌금 4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지난 4월 28일,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서울서부지법 1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에 십대여성인권센터 등은 16일 공동성명서에서 “양 씨에 대한 판결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를 포기하고 그 피해자의 권리를 박탈한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ㄱ 양이) 인지기능발달의 부진,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거나 사회적으로 적용하는데 어려운 사실을 인정하나 그것이 의사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판사의 결정은 장애인에 대해 몰이해와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성매매 행위자로 낙인” 찍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공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형사소송에 대해서도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다. 현재 가장 중한 처벌을 받은 사람이 징역 10개월이며, 나머지 2명은 집행유예, 양 씨를 포함한 가해자 2명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1명은 현재 소재불명으로 기소 중지 상태다.

만 13세의 지적장애 아동을 성매수한 가해자에게 불법성이 없다며 서울서부지법이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178개의 여성·시민사회단체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만 13세의 지적장애 아동을 성매수한 가해자에게 불법성이 없다며 서울서부지법이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178개의 여성·시민사회단체는 16일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지적장애인은 판단력, 대처력, 미래에 대한 예측이 지적장애가 아닌 사람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면서 “법원은 채팅방을 통해 잠재워줄 사람을 찾고, 그에 따라 자발성에 기인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지적장애인과 지적장애 아닌 사람 사이의 무형의 위력 관계를 법원이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배 대표는 “최초 사건 발생 시 수사기관에서 법률적 검토를 할 때 청소년성보호법 제8조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궁금하다”면서 “이에 따르면 장애가 있는 청소년(만13~19세)에 한해, 가해자가 상대방의 나이와 장애를 인지했는가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성폭력 특별법의 의제 강간 해당이 안 되면 이를 적용할 수 있었으며, 그랬다면 현재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는 “현재 가해자 처벌도 굉장히 약하고, 법원은 피해자 회복 지원에 대해서도 아무 관점이 없다. 재판부가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해 인지했다면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없다”면서 “이번 판결을 뒤집고 사법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참가자들은 양 씨의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형사사건에 대한 항소심과 함께 정신적 피해 보상과 생업 중단으로 인한 손실액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릴레이 1인시위, 청소년성보호법 개정활동 전개, 서명운동, 관련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문제상황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각계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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