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 ‘바깥’에 알린 공익제보자들
사건이 소비되는 동안 고통은 그들 몫이 되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오랫동안 인권침해와 폭행이 지속됐다는 뉴스가 일 년에도 수차례씩 터진다. 사회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년 전부터 발생해온 신체적 폭행, 성폭행, 노동착취는 ‘평온한’ 우리 사회에 균열을 낸다. 사람들은 사건의 충격에 분개하고, 누가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얼마나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얼마나 자주 착취당해왔는지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세상 앞에 드러난 시작점에, 그들이 있다. 오랫동안 이 사건을 지켜봐 온 사람들. 더는 ‘침묵의 공범자’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 대단한 정의감은 아니었다.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불편함이 그들을 기어이 폐쇄적인 시설 내부 사정을 바깥사람에게 털어놓게 만들었다. 그들은 곧 ‘내부고발자’, ‘공익제보자’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름만큼 무게는 무거웠다. 그러나 힘은 없었다. 그렇게 큰 무게를 짊어지고, 어떠한 힘도 없이 사회적 큰 책임 앞에 불러 세워진 ‘제보자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흐른 지금, 다시 만난 ‘제보자들’은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아직 사회복지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이제 다시는 사회복지계에 발도 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 웃으며 이야기하는 사람, 울며 이야기하는 사람,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하겠다는 사람, 너무 많이 후회한다는 사람.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한숨부터 쉬었다. 스스로를 다독이듯, 이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잘 전달하기 위해 숨을 고르듯.

얼마 전 불거진 남원 평화의 집 CCTV 화면. 자극적인 폭행 영상 소비에 그치는 동안, 문제를 제보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CCTV 화면 갈무리)
얼마 전 불거진 남원 평화의 집 CCTV 화면. 자극적인 폭행 영상 소비에 그치는 동안, 문제를 제보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CCTV 화면 갈무리)
#공익신고자 보호법? 법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인터뷰한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말한 점은 “내가 신고한 사실을 다음날이면 시설 측에서 이미 다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O 시설 인권침해 문제의 공익제보자인 S 씨는 “처음에 경찰에 신고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 익명 요청을 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경찰과 지자체는 시설 법인에 제보 사실을 알렸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였다. 그 과정에서 S 씨를 비롯한 제보자들의 이름은 시설 측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다.
 
S 씨는 시설이 지역사회에서 짧게는 십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세력을 확장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좋은 일 하는 곳’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시설이 있으면 지역사회에 돈이 도니까 경제적 이익도 창출한다. 그리고 시설장이 지역사회 행사에 많이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무원들과 가까워진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2조 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공익신고자 등이라는 사정을 알면서 그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공익신고자 등임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 또는 보도하여서는 아니 된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쉽게 노출됐다. 그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던 법은 현실에서 무력했다. 
 
# 거듭되는 징계와 해고… 재취업도 힘들다 
제보자 신상이 드러나면, 예정된 순서인 양 징계와 해고가 뒤따른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명예훼손’이라는 죄명으로 처벌받았다. S 씨와 함께 O 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를 신고했던 동료들은 권고사직을 받거나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다. S 씨는 파면을 당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고, 위원회는 그의 손을 들어 주었다. 복직되자마자 그는 또 파면을 당했다. 공익제보 이후,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고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중이었음에도.
 
시설은 지역사회 내에서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사회복지계는 좁기까지 하다. 소문은 빨라서 누가 시설에 ‘타격’을 줬는지 금세 퍼져나간다. 사회복지계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기는커녕, 지역사회에서도 취직이 힘들다. S 씨와 함께 시설에서 쫓겨난 사람들 대부분이 사회복지와 완전히 무관한 일을 하고 있다. 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보험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 S 씨는 “하나같이 사회복지 쪽에는 다시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치를 떨고 있다. 뭐, 사회복지계에서 일하고 싶어도 못 한다. 소문이 다 나서”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일하던 분야가 바뀐다는 것은 십수 년씩 근무했던 경력이 휴짓조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각한데, 이미 4~50대에 접어든 사람들은 취업이 잘 되지도 않는 데다 책임져야 할 가족까지 있다. 포상금제가 있기는 하지만 시설 인권침해 제보자의 경우, 포상금은 미미하다. ‘보상대상 가액’에 따라 공익신고로 인해 회복되거나 증대, 또는 절감된 비용의 일정 비율만 지급되기 때문이다. S 씨는 “공익제보자의 직업적 안정을 훼손하는 경우 강하게 불이익을 주고, 제보자가 이직을 희망하는 경우 직장의 연속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실질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힘겹게 돌아간 그곳, ‘은밀한 괴롭힘’과 싸워야 한다 
 
W 씨는 H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 문제를 제보했다. 그는 아직도 그곳에서 일한다. 다행히 H 시설에는 노조가 있었고, 그는 노조원들 몇몇과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 제보 후, W 씨와 다른 노조원들 역시 시설로부터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 구제신청으로 징계는 철회됐다. 그럼에도 시설 내에서 알게 모르게 벌어지는 차별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게, 정말 치사한 방식으로 차별한다.” W 씨는 시설의 차별을 이렇게 설명했다.
 
H 시설은 세 개의 시설과 같은 공간 안에 있다. 모두 다 같은 법인 시설이다. 시설은 각각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조리실은 하나다. 그런데 H 시설 조리원들은 조리실에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하지 못한다. H 시설 노조원 ‘일부’가 시설문제를 제보했다는 이유만으로 H 시설 조리원 ‘전부’에게 ‘배신자’ 딱지가 붙은 것이다. 법인 소속 영양사가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좁으니 당신들은 H 시설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명령했다. 종일 불 앞에서 일해야 하는 조리사들은 끼니때마다 땀에 흠뻑 젖기 일쑤다. 하지만 조리실 바로 옆에 있는 샤워실을 두고, H 시설 조리사들은 먼 길을 돌아 나가 씻을 수밖에 없다.
시설문제 제보자들은 제보 후 시설 내에서 이뤄지는 차별과 부당 징계 등과도 싸워야 했다. 거대 권력에 맞섰으나 보호해 주는 존재가 없다는 점도 외로움을 가중시켰다. ⓒpixabay
시설문제 제보자들은 제보 후 시설 내에서 이뤄지는 차별과 부당 징계 등과도 싸워야 했다. 거대 권력에 맞섰으나 보호해 주는 존재가 없다는 점도 외로움을 가중시켰다. ⓒpixabay
 I 시설에서 지속된 문제를 바깥에 처음 알린 K 씨도 마찬가지였다. 폐쇄적인 시설에서 거주인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몫이 시설로 흡수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K 씨는 ‘입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 시설 측에선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시설은 초등학생 아이가 있는 그에게 야간업무 부서로 이동하라고 명했다. 이에 불복하자, 시설은 ‘명령 불복종’으로 인한 파면 내용 증명서를 보내왔다. K 씨는 이미 그동안 I 시설에서 자행되었던 수많은 인권침해를 알리기로 결심한 터였다. 신문고에 I 시설 문제점을 폭로하는 글을 쓰고, 노동위원회에는 부당해고 신청을 했다.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K 씨는 해당 시설로 재입사했다.
 
시설은 이미 K 씨가 신문고에 글을 올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밖에 더 있겠냐’는 추측이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K 씨는 아예 ‘그래, 나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재입사한 K 씨에게 시설은 어떠한 업무 지시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거주인이 그와 말 한마디만 섞어도 시설 측은 그 거주인을 닦달했다. 게다가 이미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는데도 피해자와 가해자는 여전히 분리되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었다. 경악했다. 이뿐만 아니다. K 씨는 가해 종사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너도 잘못 한 것이 있으니, 내가 만약 감옥에 가게 되면 너도 감옥에 갈 것이다”라며 협박하는 것을 들었다. 법정에서 겁먹은 피해자는 거짓 증언을 하거나, 앞선 증언을 번복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K 씨는 후회했다. 억울하다는 감정도 컸지만, 거주인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나와 인사만 해도 혼나고, 수사 과정에서 거짓 증언하도록 유도되고, 협박당하는 거주인들을 보니 그냥 가만히 있을걸. 거주인들은 원치도 않는데 내가 괜히 나서서 그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는구나 싶었다”. K 씨는 수화기 너머에서 한참 울었다.
 
# 시설 바깥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지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S 씨와 W 씨, 그리고 K 씨까지. 이들이 공익제보 과정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시설 바깥에서 자신을 지지하고 보호해 주는 존재’였다. 거대권력인 시설과의 싸움은 외롭고 힘들다. 어제까지 나의 ‘갑’이었던 시설 앞에서는 아무리 마음을 굳게 다잡아보아도 주눅 들 수밖에 없다. “보호받지 못한다, 나는 누가 보호해주나. 이 질문이 제일 힘들었다”고 S 씨는 회상했다. “국가도, 인권위원회도, 지자체도, 경찰도. 그 어디에도 ‘내 편’은 없었다.”
 
W 씨는 자신을 비롯한 노조원들이 H 시설로부터 ‘보복’을 덜 받는 이유는 시설 바깥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 노조는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다. 아무래도 한국 최대 노조가 우리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시설에서도 우리를 잘 못 건드리는 것 같다.” K 씨는 시민단체 도움이 컸다고 한다. “탈시설 운동을 하는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활동가들이 큰 힘이 됐다. 사실 나는 시설 문제를 목격만 했지, 그게 정확히 왜 문제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혀 몰랐다. 오랫동안 활동해온 ‘전문가’들이 함께 해줬기 때문에 문제가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
 
폐쇄적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범죄 행위들이 양지로 드러나려면 내부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시설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문제는 행정부에서 의례적으로 하는 ‘점검’에서 놓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를 외부에 알린 사람들의 고통이 반복되기만 하는 구조에서는 그 누구도 쉽게 입 열지 못할 것이다.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사회. 이를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사건의 충격’을 소비하는 데 열 올리느라 정작 그 사건을 수면 위로 들어 올린 사람의 고통은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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