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 등급 재심사 결과 적게는 7시간에서 많게는 193시간까지 감소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 피해 가장 많아

강서구에서 활동보조 등급 재심사 이후 등급 탈락이 속출한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모습.
강서구에서 활동보조 등급 재심사 이후 등급 탈락이 속출한 사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모습.
 
황정용 씨는 탈시설 이후 강서구에서 살고 있다. 예전에는 혼자서 움직이기 어려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시설에 입소하는 것이었지만, 활동보조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새겼다. 
 
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기쁨도 잠시, 국민연금공단 강서지사가 진행한 '활동보조 등급 재심사'에서 그는 2급 판정을 받았다. 그 결과, 198시간이던 활동보조 시간이 114시간으로 확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여름이 되자 발이 곪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신발을 혼자 벗기 어려워 잘 벗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활동보조 시간이 줄어 병원에 다니기도 힘들다.
 
강서구에는 이런 피해자가 집계된 것만 161명이나 된다. 처음 활동보조 등급을 받을 때와 동일한 '인정 조사표'로 심사를 받았음에도 1~2등급씩 모두 하락했다. 5월 한 달 동안 진행된 재심사에서만, 그것도 일부 중개기관에서만 파악된 수치이다. 강서구 활동보조 서비스 이용자가 총 966명(2015년 12월 기준)이니까, 5월 한 달에만 전체 대비 약 17%의 등급이 하락한 셈이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6개 단체가 20일 오후 2시 국민연금공단 강서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 등급이 대거 하락한 사태를 규탄하고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전장연 등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강서구에 있는 7개 활동보조 서비스 중개기관 중 2개 기관에서만 5월 갱신대상자 64명 중 95%에 해당하는 61명의 등급이 하락했다. 주최 측은 "보건복지부 통계에서 나타난 2015년 전국 갱신자 중 등급 하락자 비율인 3.51%에 비해 27배나 높은 수치"라며 강서구의 대규모 등급 하락 사태를 비판했다. 5월에 재심사를 받은 이용자들의 활동보조 시간은 6월부터 최소 7시간에서 최대 193시간까지 감소될 예정이다.
 
황정용 씨는 기자회견에서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진 등급을 받고 앞이 캄캄했다"라며 "내가 이런 막막함을 토로했더니 친구들이 전부 '나도 떨어졌다'고 앞다투어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황 씨와 같이 198시간 지원을 받다가 114시간으로 서비스 시간이 감소한 윤용옥 씨는 "여러분이 보기에 내 장애가 가벼워보이나"라고 입을 열었다. 윤 씨는 하반신과 왼쪽 팔이 없다. "연금공단 직원들이야 서류 몇 장 처리하면 끝나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로 줄여야 하는 삶의 문제다." 윤 씨는 "이 문제가 강서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활동보조 등급은 한 사람의 삶 자체를 뒤흔든다. 이 무게를 공단과 국가가 알아야 한다"라고 일침했다. 
재심사 결과 활동보조 등급이 하락한 당사자 황정용 씨(왼쪽)와 윤용옥 씨(오른쪽). 황 씨는 발이 곪아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활동보조 시간이 줄어든 후로는 병원에 가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윤 씨는 하루에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로 줄였다.
재심사 결과 활동보조 등급이 하락한 당사자 황정용 씨(왼쪽)와 윤용옥 씨(오른쪽). 황 씨는 발이 곪아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활동보조 시간이 줄어든 후로는 병원에 가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윤 씨는 하루에 세 끼 먹던 밥을 두 끼로 줄였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장애유형은 발달장애와 시각장애였다. 주최 측은 "두 개 기관에서 등급이 하락한 61명 중 발달장애인이 24명, 시각장애인이 19명으로 두 집단을 합치면 전체의 70%에 달한다"고 전했다. 활동보조 서비스 등급 기준 자체가 신체 장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장애유형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강완식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실장은 "활동보조 인정조사표는 '혼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지', '혼자서 배변 처리를 할 수 있는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지' 같은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라면서 "매 순간 내 앞에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해 집 밖으로 다니는 것이 두려운 시각장애인이 혼자 옷을 입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활동보조가 지원되지 않는 것은 장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 실장은 "장애가 천차만별이고 개인의 욕구도 다양한데,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은 공단과 구청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최 측은 "활동보조 제도는 장애인의 삶과 죽음에 직결된 문제이다. 故 김주영, 故 오지석 등의 죽음으로 촉발된 투쟁을 통해 활동보조 제도가 마련되었고, 대상자의 범주도 확대되어 왔다"라며 "이토록 소중한 제도가 인정지표부터 조사과정, 위원회 심의에 이르기까지 엉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관련 법률 및 지침 개정을 위한 대응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국민연금공단 강서지사 및 강서구청 담당자들과 중개기관 대표자들이 면담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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