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문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마이너리티리포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것과 맥을 같이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제목만 가져와 봤다. ‘소수자 의견’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누가 있을까.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 도시빈민, 장애인 등 흔히 아웃사이더라고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그렇게 불리는 것이 아닐까.

 

그 중 장애인과 관련해서만 이야기해보자. 장애인이 이 나라에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변해야 할까. 집만 나서면 쏟아지는 시선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은 이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일 정도이고 그 이상의 것들이 장애인의 활동을 가로막는, 말 그대로 ‘장애’인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다 똑같은 장애인일 수 없듯이 그중 발달장애인들의 삶은 팍팍하다 못 해 흙먼지 펄펄 날리는 척박한 환경에 처해 있다.

 

얼마 전에 부모교육을 간 적이 있었다. 의례 그렇듯이 “아이가 몇 살인가요?”하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이었다. 모두 40~50대인 자제를 두었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니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60~70대의 어머니뻘이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가히 눈물과 한숨의 시간을 보내온 분들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무언가 변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현실은 장성한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디 발붙이고 살아가기 어렵다. 장애인들마저 그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정도이고, 멀끔하게 차려입으면 딱히 어떻게 다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점도 있어 사람들은 지적, 자폐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과 똑같이 대한다.

 

발달장애인들은 겉모습만으로는 장애가 있는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지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 다반사이고 왜 지원해야 하는지도 모르며,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말도 하지, 밥도 먹지, 바깥출입도 가능하지, 남들 하는 것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지원해야 하고, 왜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반문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장애인들 중에서도 또 소외를 당하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의 복지 지원체계는 우선 눈으로 드러나는 장애를 가져야 하고, 중증이어야 한다는 것이 늘 우선순위라 할 수 있다. 지원이라는 것이 쥐꼬리에 해당한다고 해도 방식이 그렇다는 것은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결국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국가로부터 고립되고, 지역에서 고립되고, 가족으로부터 고립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삶은 연속극에 나오는 장애인의 삶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언제나 눈총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고, 언제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아야 하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해코지할 위험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보니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박대당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홀대당하는 것이 발달장애인이 가진 사회적 존재감이다. 왜 발달장애인은 복지지원에서도 밀려나고, 장애인들 속에서도 가장자리에 있어야 할까. 혼자 다닐 수 있어서? 아니면 혼자 먹을 수 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겉으로 멀쩡해 보여서?

 

부모회 일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아직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운동을 이끌어가는 집단에서도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현저하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그렇다고 반대의 경우 이해도가 높은 것은 또 아니니 비긴 셈이다), 교육과 복지를 책임지는 관련 부서에서도 발달장애와 관련해서 이해도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발달장애인의 주변 환경에 변화가 생길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이 분야에 대해서 식견을 가지고 대처해 가는 것도 아니다 보니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셈이라 하겠다. 교육의 현장에서나 지역사회에서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누구도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적절한 ‘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아주 단적으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 부모들의 경우 어디 한적한 시골에 집이라도 짓고 살겠다고 하거나, 그룹홈에 들어가겠다거나. 시설에 보낸다는 생각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것은 모두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가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자기결정권?

이것도 어찌 보면 사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소수의 되는 사람을 위한 이론에 불과한 것을 가지고 마치 그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표현되는 것들을 보면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립생활?

발달장애인들이 이게 가능하냐는 질문이 먼저 돌아온다.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답답해진다.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장애인운동 진영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안고 갈 것이며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장애영역에서도 변방에 놓여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길을 좀 열어 놓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법을 제정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것부터 점검을 해 나가면서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이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부모운동은 학령기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좀 더 대상영역을 넓혀 갈 방안을 함께 마련해 가야 한다. 그것이 단순하게 ‘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당장 고통을 받고 있으며 거의 방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성인들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안고 갈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새삼 거론할 것도 없다. 그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이고, 그 부모들이다. 마이너리티리포트. 이 말이 발달장애인들을 한 마디로 표현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발달장애인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일하고, 교육도 받고, 취미도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싶다고. 이 소수자의 의견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답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최석윤의 '늘 푸른 꿈을 가꾸는 사람들'

 

복합장애를 가진 아이와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정신연령이 현저히 낮은 아비로 집안의 기둥을 모시고 살아가는 다소 불충한 머슴.  장애를 가진 아이와 살아가면서 꿈을 꾼다. 소외받고, 홀대 당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한 가운데로 모이는 그런 꿈을 매일 꾼다. 현실에 발목 잡힌 이상(理想)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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