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장애의 눈으로 함께’ 읽기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의 인터뷰를 구술 기록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읽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416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과 창비는 6월 초부터 7월 중순까지, 총 여섯 차례에 걸쳐 ‘다른 시선, 다른 해석, 세월호 참사의 새로운 이야기와 만나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 함께 읽기’를 진행했다. 마지막 시간은 지난 12일, ‘장애의 눈으로 함께 읽기’라는 주제로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고병권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의 발제로 진행되었다. 고 교사는 ‘빈자리를 지키고 가꾸는 일’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절박한 의미인지 세월호 참사와 광화문역에서 4년 가까이 농성 중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다. ‘없음’이 ‘있도록’하는, 어쩌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행위를 통해 그 빈자리에서 진실이 돋아나도록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_ 편집자 주
1. 그의 빈자리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거기 머물던 우리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의 빈자리를 아주 오랫동안 맴돕니다. 더 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좀처럼 인정할 수 없는 거지요. 사랑이 깊은 만큼 그의 부재를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그의 존재를 부인하느니 차라리 현실을 부인하려고도 합니다. 그가 없는 현실에서 사느니 차리리 환각에서 살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이가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 갑니다. 그가 있었으면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그가 있었으면 일어나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으로 형을 잃은 수범 씨에게는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갈 때 항상 보았던 형이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한 대여서 형이랑 둘이 같이 썼어요. 형이 한 시간하고 나면 저에게 양보했어요.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항상 형 가방이 보이고 형이 거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어요. “응, 왔어?” 하고 언제나 반겨줬어요. 근데 지금은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불이 껴져 있고 형이 없으니까 그게 제일 힘들어요.” (41쪽)
이런 걸 정신분석학에서는 ‘현실성 검사’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머물던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감각이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겁니다. 여기에는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가 그가 없는 현실로 돌아가는 걸 정말로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없어. 이게 현실이야’라는 말을 뒤집을 한 조각의 증거라도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온 주변을 다 살펴봅니다. 그만큼 우리는 그가 부재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는 그가 신던 신발에 더 이상 온기가 없음을 확인합니다. 책상 위의 책과 연필, 침대의 이부자리가 언제나 그대로임을 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결국에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나는 이 책에서 동생을 잃은 서현 씨가 악몽과, 악몽보다 못한 현실 사이에서 ‘영점 몇 초’ 동안 안도한 이야기를 할 때 가슴이 미어지듯 슬펐습니다. “얼마 전에 꿈을 꿨는데 지현이가 나온 거예요. 그런 데 꿈에서 지현이가 없어요. 지현이가 안 보여요. 지현이를 찾아도 찾아도 나오지 않아요. 꿈에서 오열을 해요. 지현이가 없으니까. 그러다 꿈에서 깨요. ‘아, 너무 다행이다, 꿈이었어’했는데. 현실에도 지현이가 없는 거야. 그 잠깐 영점 몇 초, 1초, 5초도 안 되는 순간 동안 안심이 돼요. ‘아, 꿈이었어’ 했는데 이게 현실이라는 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소름이 쫙 와요. …일어나서 그 잠깐 동안 ‘아, 진짜 너무 다행이야’ 했는데, 그건 꿈인데… 지현이가 없는 현실은, 이건 깰 수가 없잖아요(319쪽). ‘악몽’은 깰 수라도 있을 텐데, 깰 수 없는 악몽으로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애도는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긴 울음의 시간을 거쳐야 우리는 비로소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마음의 건강을 회복합니다.

2. 현실성 검사
그런데 이러한 현실성 검사가 불가능한 사람들, 이러한 현실성 검사로 더 깊게 병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이 현실에 나를 맞춰가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 아니 그렇게 되면 나를 정상화하는 게 아니라 더욱 비정상화하는 일이 되고 마는 사람들, 그런 죽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현실에서 비정상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현실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일이 자신의 비정상성을 재승인하는 일이 됩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차별받았던 삶의 증언일 때, 그래서 그의 죽음이 삶만큼이나 주변화되고 배척받은 것일 때, 우리는 현실로의 복귀가, 우리가 죽어지내온 그런 삶으로의 복귀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죽음의 세계에서 삶의 세계로 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현실, 일상, 삶의 세계란, 우리가 죽어지내온, 그리고 죽어지내야 할 그런 세계니까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며 우리는 죽음과 삶, 애도와 일상의 구분선이 아주 애매해진 사람들입니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니 삶이나 죽음이나 매한가지라는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겁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현실과 연루되어 있을 때, 현실로의 복귀는 우리에게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귀할 현실이 단지 그가 부재한 현실이 아니라, 그를 죽음에 몰아넣은 현실이라면 상황이 간단치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현실로 아무렇지도 않게 복귀한다면, 우리의 복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인한 현실에 협력하거나 최소한 묵인한다는 인식을 생겨나게 합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죄의식이 생겨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아프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에 죄의식까지 더해지니까요. 따라서 이 경우 현실에 대한 승인과 복귀는 우리를 치명적 위험에 빠뜨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의 운구를 붙잡고 ‘이렇게는 보낼 수 없다’고 목놓아 우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렇게는 복귀할 수 없다’고 외치는 일이기도 할 겁니다.
우리가 4년 가까이 지키고 있는 광화문 농성장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투쟁의 공간이지만, 망자들과 함께 있는 장례식장, 다시 말해 애도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망자들을 보내지 않으면서, 그들이 살아왔던, 그들을 죽였던,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런 현실로의 복귀를 거부하면서 만든 공간입니다. 언젠가 광화문 농성장 야간 지킴이를 하던 밤, 나는 맞은 편에 놓여 있는, 지우와 지훈이, 김주영 씨, 송국현 씨의 영정을 찬찬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말없이 환하게 웃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 누군가 영정 속 망자들의 침묵을 불의의 현실에 대한 절규로 듣는다면, 그들의 환한 웃음을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대성통곡으로 듣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지 환각이라고만 해야 할까요. 만약 현실성 검사라는 것이 이것을 환각으로 치부하는 일이라면, 즉 그들의 소리나 몸짓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여느 때와 같은 일상으로 복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런 복귀야말로 우리를 더 깊이 병들게 하는 게 아닐까요. 아마도 이는 그들이 침묵으로 내지른 절규와 환한 웃음으로 쏟아낸 대성통곡을 매장해버리는 일이 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매장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매장한 것들, 억압한 것들은 우리에게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애도를 끝낸 우리는 건강해진 것이 아니라 병들게 됩니다.
우리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서는 현실로 복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변혁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신분석학에서의 현실성 검사는 현실에 비추어 내 의식과 감각을 수정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나는 현실성 검사가 ‘나’에 대한 검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검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망자의 부재와 침묵이 현실에 대한 고발일 때, 우리가 망자의 죽음에서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때, 우리의 건강은 현실의 승인이 아니라 현실의 변혁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비워두기와 삭제하기
수범 씨네는 최근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 간 집에, 망자가 된 형의 방을 꾸몄다고 합니다. 침대, 책꽂이도 있고, 사진, 세월호 반지랑 팔찌까지 물건들을 정리해두었답니다. “100퍼센트 좋다고 할 순 없지만 형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그래도 형이 없으니까 허전한 게 있지만요.” (52쪽)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를 없애지 않는 것이죠. 처음에 말한 것처럼, 떠난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마음이 그가 쓰던 물건이나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애착을 보이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거기에 깃들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죽음은 절대 부재가 아니라 부재 형식의 존재라고, 망자는 ‘깃드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령에 대한 마술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은 대부분 사물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사물들은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깊이 연관된 사물이나 공간은 우리가 그것을 접하자마자 마음속에 그를 불러일으킵니다. 마치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가 우리 마음속으로 뛰어듭니다. 단원고에 만들고자 하는 기억교실에도 이런 면이 있을 겁니다. 망자가 된 학생들이 함께 앉았던 자리, 그들이 다시 돌아왔어야 하는 자리, 그들의 유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리. 그것을 치워버리는 것은 그들이 깃드는 사물과 공간을 치워버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에게 이 사물과 공간에 대한 훼손은 또 한 번의 상실을 겪게 합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 문제를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망자들의 빈자리를 보존하고 또 빈자리를 마련해두는 것과 그 빈자리를 없애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비어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비어있음’을 ‘없앤다’는 것은 동어반복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어-있음’은 사실은 ‘있음’의 한 방식입니다. 빈자리는 우리에게 거기 있던 사람과 그 사람의 일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 그가 깃들어 있는 자리, 그에 대한 기억이 앉아 있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없앤다’는 것은 기억을 말소하는 것이고, 사건을 말소하는 것이며, 존재를 말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망자의 빈자리, 망자의 침묵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중대한 발언일 때, 다시 말해 진실의 자리이고 목소리일 때입니다. 이때 이 빈자리를 없애는 것은 진실을 매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이 문제를 떠올린 것은 세월호 사건의 생존자인 박준혁 씨와 오빠를 잃은 민영 씨 이야기를 듣고 나서입니다. 준혁 씨는 역사학과에 진학했더군요. 그가 역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세월호 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예로 들었습니다. 20만 명이 죽었다는데, 그 20만 명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사람들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요. 민영 씨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겨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유리한 건 다 넣고 불리한 건 다 빼는” 국정역사교과서에 대해 분개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생략된 것들, 빠진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략된 곳, 빠져나간 곳, 비어 있는 곳에 진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진실이 침묵 속에, 부재 속에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빈자리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실의 자리니까요. 빈자리를 메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그 빈자리에서 진리가 드러나도록, 진리가 현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정 속 망자들의 침묵을 절규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망자에게 들은 절규와 통곡을 현실성 없는 환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비현실적 환각이 환각적 현실을 꿰뚫는 진실의 음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 대한 순응을 거부했던 68혁명의 젊은이들이 ‘상상력에 힘을!’이라고 외쳤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우리 장애인들은 모두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애도는 죽은 자로부터 일상 현실로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이를테면 송국현 씨가 사실상 장애등급제 때문에 죽었는데 우리가 장례를 마치고 다시 장애등급제의 현실로 돌아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현실로의 복귀는, 단지 죽어지내야 하는 현실로의 복귀라는 것, 따라서 삶으로의 복귀, 건강한 자아로의 복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광화문농성장에서 우리가 무한정 장례식을 이어가는 이유가 그것일 겁니다. 그것이 빈자리에 영정을 두고 우리가 망자와 마주 앉아 계속해서 장례의 나날을 보내는 이유일 겁니다.
4. 기억한다는 것
비워둠은 삭제함이 아니라 마련함입니다. 덮어버리지 않고, 메워버리지 않고, 삭제하지 않고, 자리를 마련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기억해달라며 했던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 그가 깃들 자리. 그래서 그가 우리 곁에 앉아 말을 건넬 수 있는 그 자리 말입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그를 위한 자리, 그가 깃들어 우리에게 말 건넬 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동생을 잃은 보나 씨는 ‘죽은 자의 인권’에 대해 말했는데요(156쪽). 망자의 인권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기억에서든, 현실에서든, 그의 자리를 없애는 것, 그가 깃들 자리를 삭제하고 매장해버리는 것은 그를 ‘존재하지 않는 자’로 만들려는 짓이지요. 보나 씨는 해방된 후 귀국하다 난파한 우키시마마루호에서 세월호를 본 것 같습니다. 당시 시신은 맨땅에 그냥 매장되었는데요. 이후 사람들이 싸움을 통해 묘지를 만들고 계단을 내고 추도비에 하나씩 이름을 새겨넣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들이 깃들 자리를 마련하고 우리 기억에도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라진 자리로서, 상실된 자리로서 빈자리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가 만들어내 하는, 우리가 마련해야 하는 자리로서 빈자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상실의 자리가 아니라 마련한 자리, 그래서 그가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깃드는 자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기억한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의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비단 국가기록원의 기록물로서가 아니라(물론 이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우리 사회에, 그리고 우리 안에, 떠난 이들이 깃드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의 주인공인 생존학생들과 형제자매들은 별수 없이 마음속에 큰 빈자리를 갖게 된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울부짖고 때로는 흐느끼며,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때로는 애써 웃음 지어 보이기도 하면서, 이들이 그 빈자리를 어떻게 품고 또 가꾸고 있는지, 이 책을 읽고서 알게 되었습니다. 망자들의 부재를 품은 채로, 그 부재를 없애지 않은 채로, 살아가야만 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기꺼이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 때로는 노골적 비난으로, 때로는 ‘미안하다’는 말로 그만 덮어버리려고 하는 온갖 시도에 맞서 진실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 게다가 그 빈자리가 절망의 구렁텅이가 아니라 진실이 피어날 꽃밭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절망 속에서 피워봤자 절망이에요. 뿌리 내린 곳이 절망이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냥 꽃밭에서 꽃피우게 하자고요. 꽃은 절망 속이 아니라 꽃밭에 있어야죠. 나는 꽃이 아니라 절망을 정화하는 미생물이 되고 싶어요.” (236쪽) 최윤아 씨의 이 말은, 향기를 피워 덩어리를 해체하는 법을 연구한다는 전태일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에 서야 하나를 고민한다면, 저는 이들이 그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