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공연 ‘옹달샘, 그 요술 같은 세상 속으로’가 이틀 동안의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11월 24일 총연습을 시작으로 본 공연(26일, 27일)을 마치는 날까지 많은 사람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장소인 이룸센터 지하 이룸홀 무대 위에 조명과 각종 소품이 하나하나 준비되자 무대 전면과 좌우 양면에 영상이 켜지고 연기자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환상적인 영상을 시작으로 연기자들은 대사 하나라도 빼먹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으며, 몸짓을 하다가 한 동작이라도 실수를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한 듯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푹 숙인다. 뭔가 아귀가 잘 안 맞는 듯 실수도 잦았지만 모두 열심이다. 첫날 총연습 풍경이었다.
이번 공연은 장장 6개월에 걸친 준비과정이 있었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도 살기 좋은 지역사회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들은 활동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영역도 개척한다. 장애인노래패 ‘시선’과 전장연 몸짓패 ‘바람’ 그리고 중증장애인 현장글쓰기모임 ‘글텍’이 그런 작은 문화모임이다.
여기에 ‘새봄프로젝트'라는 영상활동가 모임이 있다. 또 장애인극단 ‘판’도 존재한다.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노들음악대도 나중에 합류했다. 각각 노래와 몸짓, 글쓰기와 영상, 그리고 연극과 연주 등 다른 방식으로 세상 바꾸기를 시도한다. 이러한 문화모임들을 미디어아트라는 하나의 매체로 모으는 작업은 장애인문화공간의 몫이었다.

각기 다른 문화 표현 방식들이 미디어아트라는 하나의 예술로 완성되기까지는 고된 노력과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 첫 작업이 대본을 만드는 것이다. 글텍과 시선, 바람 등의 활동가들이 이번 공연의 방향을 토론했다. 저자워크숍이라는 방식이었는데 이 워크숍에 참가한 참가자 몇 명이 공연의 줄거리를 어떤 형태로든 써 오는 것이다.
그 글을 가지고 워크숍에 참가한 모든 사람이 공연의 줄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몇 번의 워크숍을 거쳐 대략적인 내용이 잡혔고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글텍에서 대본작업을 했다. 하지만 완성된 형태는 아니다. 정작 공연 무대에 서야 할 공연자들의 실제 연기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5막의 대본이 완성되었다. 공연에 들어갈 노래 다섯 곡은 ‘장애해방가’를 지으신 민중가요 작곡가 김호철님이 만들어 주셨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연습할 장소를 구하는 일, 어찌어찌해서 교회 예배당과 장애인문화공간이 있는 영등포 사무실에서 하기도 하는 등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연습에 매진했다. 시선은 시선대로 따로 모여 노래연습을 해야 했고, 바람 또한 별도의 장소를 구해 몸짓 구상과 연습에 최선을 다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해 자립생활의 참맛을 알아가던 중증장애여성 난산은 부족한 활동보조 이용시간을 더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장애 재심사를 받지만, 오히려 2급으로 떨어져 기존의 시간조차 사라질 위기에 놓인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보조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장애인활동가 정. 복지 당국은 가짜장애인을 가려낸다는 명목으로 지침을 바꿔 장애인등급 재심사를 시행한다. 이 지침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던 중증장애인들이 2급으로 자꾸 떨어져 더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정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도 센터 소장은 계속 사업보고서를 내라고 재촉한다. 정은 왕년에 투쟁의 선봉에 서서 치열하게 싸웠던 자신의 옛 모습이 그립다.
실제 술을 마시며 촬영했던 술집 장면의 영상도 이채롭다. 정과 소장, 연대사업을 담당하며 투쟁의 선봉에 있는 강민, 세 사람이 가진 갈등의 골을 영상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공연 내용 자체가 각 센터가 고민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 공연의 주인공인 난산, 정, 센터 문 소장 그리고 장애등급 재심사 모두 공연무대 밖 현재의 시점이다.
아침에 눈을 떠 활동보조인을 기다리며 오늘의 계획을 짜는 마음도, 올 시간이 지났는데 오지 않은 활동보조인을 향해 짜증내는 마음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에, 본 공연을 관람했던 중증장애인이었다면 많은 부분 공감했을 것이다.

영상 또한 총연습 기간 동안 완벽하게 완성했다. 뼈와 살과 피가, 골격을 이루고 살이 붙여지고 피가 흐르는 마음 따듯한 사람을 이루듯이 미디어아트 공연도 뼈대가 세워지고 살이 붙여지고 각 부분의 필요한 요소들이 각각 조화롭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노래와 연기와 몸짓과 영상이 조화를 이루고 관객들과 하나되어 호흡하는 모습. 옹달샘 5막에 참여한 노들음악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들야학에 다니는 장애학생들과 교사로 구성된 노들음악대다. 나는 처음 이들이 옹달샘 공연에 참여한다는 말에 속으로 의아했었다. 그들이 구성하는 악기는 벨과 큰북과 작은북, 케스터네츠, 한 음만 내는 하모니카 그리고 교사들이 연주하는 전자오르간과 기타, 지휘자에 맞춰서 소리를 낼 뿐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열심히 한다. 5막 마지막 곡 ‘세상 속으로’는 노들음악대와 시선, 바람 등 공연에 참여했던 모든 출연진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합창하는 형태다. 그런데 이 속에서 노들음악대는 제법 그럴듯한 소리를 낸다.
미디어아트 역시 각각의 불협화음들이 각기 제 위치에서 조화롭게 소리를 낼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 아닐까 싶다. 세상 속에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우리였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또 다른 서로가 채워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세상에서 최고가 아닌 최선의 모습으로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조화롭게 소리를 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발산되는 것 아닐까? 우리의 미디어아트공연은 막을 내렸지만, 현실에서의 미디어아트공연 ‘옹달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