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산참사’ 장애운동 내 공동체상영 열려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공동정범’(김일란·이혁상 감독)이 진보적 장애인운동과 만났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장에서 영화 ‘공동정범’ 공동체상영이 열렸다. 상영 후엔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의 사회로 ‘공동정범’을 만든 김일란·이혁상 감독,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에서 철거민 5명,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가 발생한다. 이후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은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수감된다. 영화 ‘공동정범’은 2013년 1월, 이들이 특별사면으로 출소된 때로부터 시작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충연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과 이날 남일당에 연대하러온 다른 지역 철거민 4명이다. 서울 상도 4동 철거민 천주석, 서울 신계동 철거민 김주환, 서울 순화동 철거민 지석준, 성남시 단대동 철거민 김주환. 그 날 망루에 오른 사람들은 이후 부상자 혹은 사망자, 범죄자가 되는데 이 5명은 범죄자가 된 이들이자 이 참사의 생존자들이다.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생존자들 사이의 깊은 갈등과 상처를 응시하게끔 한다.

21일 공동체상영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선 사회적 참사를 기억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현장의 목소리를 옮겨 적는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장에서 영화 ‘공동정범’ 공동체상영이 열렸다. ‘공동정범’을 만든 김일란·이혁상 감독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장에서 영화 ‘공동정범’ 공동체상영이 열렸다. ‘공동정범’을 만든 김일란·이혁상 감독
# 가해, 피해를 단순 이분법적으로 볼 수 있을까? 

- 정창조 : 현재 두 감독님이 속해 있는 ‘연분홍치마’는 과거 주로 성적소수자와 관련된 영화를 많이 찍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동정범’ 관련 글 중 ‘이번 영화도 페미니즘 시각에서 그린 게 있다’는 게 많았는데 페미니즘과 공동정범을 어떻게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까.

- 김일란 : 공동정범을 페미니즘에 연장해서 볼 수 있다고 저희가 주장을 한 것도 있고, 많은 영화 평론가가 공동정범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읽어준 것도 있다.

우리의 경우, 세상을 보는 시각을 페미니즘에서 많이 배웠다. 특히 영감받은 것 중 하나가 피해와 가해를 이분법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연분홍치마 첫 작품 ‘마마상’은 성매매여성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그 여성은 젊은 시절 자신의 성을 상품화해서 팔 수밖에 없었던, 성매매 구조의 피해자였다. 미군 남성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였기에 ‘기지촌 피해여성’이라고 불렸는데 나이를 먹으면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졌다. 더 이상 자기 성을 팔 수 없게 되자 그 여성은 이주 여성들을 2차로 내보내는 일종의 ‘중간포주’가 됐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거다. 이 여성을 ‘피해자/가해자’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나눠 볼 수 없다면 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고민을 했다.
전작 ‘두 개의 문’도 그렇다. 경찰은 가해자가 맞다. 그런데 ‘경찰 시스템 안의 한 개개인들은 과연 가해자인가?’라고 했을 때, 그들도 국가폭력의 희생자까지는 아니지만, 원치 않는 명령을 수행해야만 했던 점에서 단순 가해자라고만 보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동정범’에서 이충연 위원장의 경우, 가해자는 아니나 누군가에겐 원망의 대상이다. 김창수 씨도 가해자는 아니나 그의 부인 입장에서 보면 남편의 선택으로 원치 않은 삶을 살게 됐으니 원망의 대상이기도 할 거다. 이렇게 가해와 피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한 것도 저희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창조 : 영화가 특히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연대자분들과 용산 분들 간의 갈등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분들이 불편해하거나, 이건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부분이 혹시 있나.

- 이혁상 : 맨 처음 기획한 것은 이충연 위원장 혼자 주인공인 영화였다. 우리도 ‘유가족 중심주의’에 빠져있었던 거 같다. 이충연 위원장과 인터뷰하다가 이에 대한 부연설명, (사실 확인) 체크를 하는 과정에서 같이 망루에 올랐던 다른 연대자들과 인터뷰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이게 점점 사라졌다. 정말 연대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용산분들은 우리를 나몰라라 한다는, 그런 억울하고 소외받는, 안타까운 마음들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사실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이 갈등을 우리가 드러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야 할까.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도 성소수자로서, 게이로서 운동 진영 내에서 대의명분에 의해 계속 밀려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에 의해서 우리는 늘 나중으로 미루어진다. 그래서 연대자들의 억울한 마음이 공감됐던 것 같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이라는 대의명분에 가려진 이들의 갈등과 고민을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면 똑같이 우리가 당해왔던 것들을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 내부 갈등을 영화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드러내면 진상규명으로 갈 수 있는 어떤 기반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계속 나눴다.
사실 자칫 집안싸움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면 어떡하나, 고민도 하셨지만 이것을 함께 꺼내놓고 이야기를 함으로써 용산참사의 운동방향, 나아가 다른 진영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는 것에 공감하셔서 사실 큰 문제 없이 동의하셨던 거 같다. 다섯 분의 용기가 다 똑같겠지만 그래도 가장 미운 모습이었기에 이충연 위원장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이충연 위원장이 영화 속에서 “부끄러운 기억이라도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해서라면 이야기할 수 있다”라고 말하듯, 그런 마음이었다.
극장에 처음 공개하기 전에 주인공들 모시고 상영회를 했다. 영화 보고 나서 천주석 님이 “이충연 위원장이 그 쪽으로 먼저 뛰어내렸기에 사람들이 그걸 보고 다 그쪽으로 뛰어내려 조금이라도 일찍 탈출해 함께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원망이 앞선 나머지 먼저 뛰어내린 것을 비겁함으로만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지금은 다들 그때보다는 좀 더 자주 만나고, 술먹고 어영부영하기 싫어하던 이충연 위원장이 지금은 술먹고 당구치고 어영부영하고 있다. (웃음)

# 피해자다움, 소수자다움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 정창조 : 영화 팸플릿에 이런 문구가 있다. “참사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당신마저 기억하지 않는다면.” 9년의 시간이 지나니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를 잊어가고 있는 듯 하다. 지금 이 시점에 다시 ‘기억’으로 살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 김일란 : 용산참사 이후 9년간 한국사회에 여러 격동이 많았는데 재개발이나 생명권, 안전권과 관련해서 그다지 변화된 것은 없다. 그래서 용산참사를 우리한테 어떻게 계속해서 중요한 이슈로 남길 것인가가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영화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오랫동안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질문을 잘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영감을 받아 피해와 가해, 유가족의 고통과 생존자들의 고통 등에 대해 생각했다. (김일란 감독은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무엇보다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피해자란 누구인가, 사회적 소수자란 누구인가였다. 왜 항상 사회적 소수자들은 부탁해야 되는 입장일까? 연분홍치마 ‘커밍아웃’ 다큐 3부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 많은 평론가분들이 참 선하고 예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는 왜 항상 착하고 정의롭고 선한 모습으로 우리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어필하는 걸까?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유가족이 되는 순간부터 계속 사회에 호소해야 한다. “도와주세요, 국민여러분” 세월호 유가족도 매번 그랬다. 항상 슬퍼야하는 이미지로 비춰져야만 동정받기에 웃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어떤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해 동등한 관계에서 피해자들이 피해자로서 정확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이충연 위원장의 모습도 꾸미지 않았다. 옳은 말을 하지만 그 옳은 말을 듣는 우리가 불편할 수도 있는 피해자. 투쟁하고 있지만 동의하기 힘든 피해자. 그런 모습이 보여지고 이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게 더 오랫동안 용산참사를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정창조 : 가해, 피해 이분법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이명박과 김석기 얼굴이 나왔을 땐 정말 너무 화가 났다. 영화에선 드러나진 않았으나 삼성물산, 포스코와 같은 가해자들이 있다. 자본의 탐욕이 큰 역할을 했는데 이런 자들에 대해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김일란 : 현재 이명박 구속 혐의 대부분이 다스 관련한 뇌물수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정말 화가 나는 것 중 하나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원수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4대강과 쌍용차, 용산참사 등 대부분이 이명박 정권 때 벌어졌다. 재조사 되어야 하는데 아직 어떤 것도 조사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팀이 꾸려졌으나 이 조사팀은 수사까진 하지 않는다. (조사팀은 2년동안 용산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평택 쌍용차 파업, 밀양 송전탑 건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5개 사건에 대해 조사한다. 그러나 경찰권 행사의 적정성 여부를 볼 뿐 처벌 목적이 아니며, 형사 사건과 같은 수사권은 없다.) 그래서 계속해서 관심 갖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잊는 순간 그것을 밝힐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공동정범’ 공동체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영화 ‘공동정범’ 공동체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다.
- 정창조 : 관객분 중 질문 있으신가.

- 관객 1 : 처음 편집본에선 이충연 위원장 모습이 좀 더 ‘나쁘게’ 담겼는데 최종 완성본에선 좀 부드럽게 편집이 되었다고 들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 김일란 :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결말 때문인 것 같다. 오리지널 버전 결말은 ‘모두가 다 모이는 동지회는 한번도 개최되지 않았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그런데 오리지널 버전 상영 후 1년이 지나면서 이충연 위원장이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한국사회도 ‘촛불’을 거치며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영화 엔딩은 김석기 국회의원 선거 때 김석기가 어떤 인물인지 알리는 집회에 모두가 참석한 모습이 담겼다.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진상규명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으신 거 같다.

- 관객 2 : 한 친구가 ‘이런 비극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힘든데 이거를 어떻게 다 기억하고 사느냐’고 했을 때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최근 동학농민운동을 공부하는데 이런 과거 고통들에 대해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용산은 100년 뒤엔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 궁금하다.

- 김일란 : 용산참사를 ‘2009년 1월 20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의해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 한 분이 돌아가신 사건’으로 기억하는 것은 기억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단순 정보를 아는 것이지. 누군가의 눈물과 노력, 그 고통으로 얻어진 성과가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때,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기억하는 것 아닐까.
4.16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이 사회적 참사 특별법을 만들려고 했다. 304명의 희생자 이름 하나하나를 아는 것이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희생으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주는 것이 기억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장애인이동권 투쟁도 마찬가지다. 장애이동권투쟁으로 어느 열사가 돌아가셨는지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나 그것이 사회전반의 경험이 되는 것, 누구의 성과인지에 대해서 기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용산참사로 인한 성과가 아무것도 없다는 거다. 이게 국가폭력이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반면, 백남기 어르신의 희생으로 물대포가 집회 현장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것이 국가폭력이었고, 물대포 사용이 과잉진압으로 인정된거다. 그러나 용산참사의 경우, 적어도 점거농성에선 경찰특공대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성과도 얻지 못했다. 용산참사 이전과 이후로 한국사회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라고 물었을 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현재는 없다는 것. 이게 기억하는 것에서의 핵심이지 않을까.

- 정창조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

- 이혁상 : 사회적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는 이것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이야기되고 기억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발 방지,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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