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공소시효는 없어, 용산학살 책임자 김석기 처벌해야”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가 18일 저녁 7시 조계사 역사문화박물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용산참사 10주기 기억과 추모의 밤’을 열었다. 유가족 네 명과 피해생존자 다섯 명이 무대 위에 오른 모습. 유가족 대표로 고 이상림 씨 아내 전재숙 씨가 발언하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가 18일 저녁 7시 조계사 역사문화박물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용산참사 10주기 기억과 추모의 밤’을 열었다. 유가족 네 명과 피해생존자 다섯 명이 무대 위에 오른 모습. 유가족 대표로 고 이상림 씨 아내 전재숙 씨가 발언하고 있다.
 

용산참사 피해생존자와 유가족 등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18일 저녁 7시 조계사 역사문화박물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용산참사 10주기 기억과 추모의 밤’을 열었다. 이들은 함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여전히 더딘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힘을 모았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용산참사 10년을 맞이하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일이 있고 여전히 사람들이 잘못된 사실을 주장하고 인정하지 않는 차가운 현실을 기억할수록 슬프다”라며 “이 시간 가장 밀도 있게 뜨겁게 살아온 유가족을 비롯해 굳건하게 이 자리를 지킨 피해생존자분과 함께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 잘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주최 소감을 밝혔다.

용산참사 당시 목숨을 잃은 다섯 사람의 영정 앞으로 국화꽃이 놓여있다.
용산참사 당시 목숨을 잃은 다섯 사람의 영정 앞으로 국화꽃이 놓여있다.
 

고 이상림 씨(당시 72세)는 20여 년동안 용산구 한강로 2가에서 ‘레아호프’ 식당을 운영해온 소시민이다. 하지만 2007년 한강로 2가가 ‘도시환경정비사업지구’로 지정,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가 나게 되면서 철거용역 깡패들에 의한 협박과 폭행, 영업방해로 인해 대책 없이 쫓겨나는 처지에 놓였다.

이 씨는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투쟁을 위해 2009년 1월 19일 구청의 외면과 조합과 용역의 폭력에 내몰린 세입자들과 함께 레아호프 옆 남일당 옥상에 망루를 짓고, “여기, 사람이 있다”, “대책 없는 살인개발 중단하라”, “철거민 주거, 생존권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점거 농성에 돌입했으나, 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경찰특공대가 투입, 진압과정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사망했다.

이날 추모의 밤에 참여한 고 이상림 씨 아내 전재숙 씨(75세)는 그날을 돌아보며 “국가는 현장에 있던 용산 시민에게 물대포를 쏘고 꼼짝 못 하게 공권력을 투입해서 때려죽였지만, 오히려 그 죄를 동지들에게 덮어씌웠다. 그 뒤로 우리는 길거리를 헤매고 헤맸지만, 지금까지도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섯 사람이 죽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당시 과잉진압을 지시한 김석기는 여전히 국회에서 활보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 나올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10년이 지났지만, 언젠가는 저 사람을 유가족 앞에 무릎 꿇리고 구속해야 한다”라며 추모의 밤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우리와 함께 꼭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모두 이뤄나갈 때까지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석기 의원은 용산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으며, 과잉진압을 지시해온 책임자다. 김 의원은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 경주시에 출마해 당선되어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15일엔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김석기 의원의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안하는 긴급기자회견을 국회 내에서 열기도 했으나, 이에 응답하는 국회의원은 없었다.

추모의 밤에 함께한 한 참가자가 지난해 강제철거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박준경 씨의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
추모의 밤에 함께한 한 참가자가 지난해 강제철거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박준경 씨의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철거민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마포구 아현2구역 세입자 박준경 씨(당시 37세)는 지난해 9월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에서 강제퇴거를 당한 뒤 철거지역을 떠나지 못한 채 방황했다. 석 달 동안 철거지역 빈집을 전전하던 박 씨는 빈집에서 마저도 내쫓겼다. 결국, 그는 나흘간 노숙 생활을 이어오다 광고 전단지 뒷면에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라고 유서를 쓰고 작년 12월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이날 박준경 씨 어머니 박천희 씨도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박 씨는 “우리 준경이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8일째다.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엄마’하고 부르면서 올 것만 같다. 지난주 아들을 마석 모란공원에 묻고 왔다. 용산참사 열사들이 먼저 있으니 우리 준경이를 잘 품어줄 거로 생각한다”면서 어렵게 운을 뗐다. 

이어 “비록 오래된 월셋집에서 살았지만, 준경과 내게 아현동은 정겹게 살던 동네다. 개발하기 전부터 우리가 먼저 살던 곳인데 왜 우리가 이렇게 쫓겨나야 했는지, 재건축한다고 할 때도 이렇게 대책 없이 쫓겨날 줄 몰랐다. 강제철거가 이렇게 폭력적이고 마구잡이인 줄 상상도 못 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강제철거가 왜 우리나라에만 있느냐? 사람이 먼저라고 하지 않았나?”라며 따져 물었다. 이어 “강제철거 때문에 이 시간에도 거리에서 노숙하는 우리 철거민이 많다. 또 가족이 흩어져 이산가족처럼 지내는 가정이 많다. 이 순간에도 강제철거가 들어올까 봐 잠 못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앞으로 이 잘못된 법, 가진 자들만 누리는 법을 우리가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가 강제집행 없는 나라가 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의 밤이 열리는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 들어가는 길목에 용산을 기억하는 이들의 사진과 글이 전시됐다. “김석기가 죽였다. 공기업사장 웬말이냐? 김석기는 퇴진하라!”가 적힌 손팻말을 찍은 사진과 “김석기! 두고 봐라! 곧 잡으러 간다!” 등이 적힌 글 등이 걸려있다.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의 밤이 열리는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 들어가는 길목에 용산을 기억하는 이들의 사진과 글이 전시됐다. “김석기가 죽였다. 공기업사장 웬말이냐? 김석기는 퇴진하라!”가 적힌 손팻말을 찍은 사진과 “김석기! 두고 봐라! 곧 잡으러 간다!” 등이 적힌 글 등이 걸려있다.
 

박래군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국가폭력에 공소시효란 있을 수 없다. ‘용산 학살’ 책임자 처벌로, 국가폭력 끝장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집행위원장은 “10년 만에 과잉진압과 여론조작이 경찰 조사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간접적이지만, 정부의 사과도 있었다. 검찰 과거사 조사단의 조사도 진행 중이다”라면서도 “과잉진압이란 결론이 났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한다. 가슴에 죄수의 번호를 달아야 할 경찰 진압 책임자 김석기는 금배지를 달고, 공소시효 뒤에 숨어 책임 없다 발뺌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위원회 측은 정부에 관해 “경찰 조사위 권고 발표가 4개월이 지나도 사과조차 없는 경찰, 잘못한 과거사에 대해 규명조차 막고 있는 검찰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다”라며 “법무부·검찰 개혁을 위해서도, 청와대에서 검찰 조사단 외압을 조사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검찰 조사단 결과발표 이후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별도의 국가 조사기구를 통해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에 대해서는 “김석기가 금배지와 공소시효 뒤에 숨어 책임회피로 국민을 우롱하는 것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 김석기 제명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현재 국회 법사위에 상정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관련 법안을 통해 '국가폭력 사건에 공소시효란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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