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마무리된다. 올해도 많은 장애담론들이 부각되었고 어떤 것은 퇴보하였다. 그 가운데 장애인의 성 문제는 수년 전 대두한 이후로 올해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였다. 성은 말초적인 수준에서부터 가장 고차원적이고 근원적인 수준까지 모두에게 가장 큰 관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 노력에도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대한 담론수준, 또는 그에 대한 현실적인 해방은 그다지 진척되지 않은 것 같다. 장애인이 성이나 사랑을 향유할 권리가 없어서인가? 이 문제에 답하면서, 나는 그것이 권리일 수 있는지 혹은 권리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권리는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그에 대응하는 의무를 발생시킨다. 장애인에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수용된다면, 교통수단을 설계하고 운영하고 이를 감독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애인의 이동기회를 확보해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에게 사랑과 성에 대한 ‘성향유권’이 인정된다면, 반대로 누군가 그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영역과는 달리, 사랑은 본질적으로 의무가 개입될 때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즉 에로스에 ‘도덕’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개입될 수는 없다. 한 사회, 또는 한 사람이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정치적 신념과 도덕적 의무로부터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이 보장되도록 그에 대응하는 의무를 이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덕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살기 위해 일부러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그와 성관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맺는 사랑은 애초에 사랑일 수가 없다. 사랑이란 의무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극적인 끌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의무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살고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더없이 비참한 존재가 될 것이다.
장애인운동은 봉사와 시혜의 대상으로서의 장애인을 벗고 새로운 권리의 주체로 장애인 스스로 바꾸어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다. 그렇다 보니 장애인성담론도 그와 유사한 맥락에서 제기되었다. '장애인의 성향유권'이라는 말은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대한 논의를 ‘권리담론’의 형식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사랑은 의무로부터 도출될 수 없으므로 성향유권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는 협소하게, 즉 중증장애인의 자위를 돕고 삽입섹스의 기회를 주는 ‘성 도우미제도’를 모색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행위만으로 섹스의 모든 것을 충족하기도 하는 남성 장애인위주로 성담론이 전개된다. 이런 몇 가지 행위를 청구하는 것은 ‘권리’에 근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근본적으로 누군가의 ‘사랑’을 청구할 수는 없다. 물론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자유롭게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할 것을 사회공동체나 국가를 상대로 청구할 수는 있다. 장애인의 사랑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교통시설과 문화시설, 거주시설에서의 자유와 사생활보장을 통해 장애인의 성적인 기회를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우리는 사랑의 기회를 청구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청구할 수는 없다.
나는 결국 장애인의 성담론은 ‘권리’의 맥락에서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권리가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제반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위는 권리이다. 그러나 그 권리는 사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교육과 문화, 주거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다루어질 일이다. 사랑을 권리담론 내로 포섭시키면 장애인의 몸은 ‘권리의 주체’, ‘정치적 변혁의 주체’가 되어 에로스적 주체나 대상이 될 영역이 오히려 좁아진다. 사랑의 해방은 권리라는 이름으로 타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타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일단 엄숙한 정치적 해방의 담론에서 빠져나와, 우리들의 몸이 춤추는 ‘판’을 벌이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새로운 해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체장애인. 올해가 20대의 마지막. 지하생활자로 15년간 살았고 세상으로 나온지 올해가 지나면 15년이 된다. 한국사회의 장애인치고는 운이 좋아서 대학을 지나 대학원까지 왔다. 관심사는 연극, 장애학, 생물학, 드라마, 소설, 진화론 등 다양하다. 까칠한 말투로 종종 비난을 듣는다.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원영의 '지하 생활자의 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