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5년이 흘렀지만 빈곤 문제 여전해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촉구하며 장애인 활동가들, 사다리 목에 걸고 도로 점거

송파 세 모녀 사건 5주기 추모제가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렸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는 빈곤문제 해결할 수 없다. 생계급여·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하라”라는 문구가 쓰인 대형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사진 박승원 기자.
송파 세 모녀 사건 5주기 추모제가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렸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는 빈곤문제 해결할 수 없다. 생계급여·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하라”라는 문구가 쓰인 대형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사진 박승원 기자.
 

“주인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2014년 2월,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이 5주기를 맞았다.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에서는 송파 세 모녀를 기리며 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극과 비현실적인 정부 정책, 허술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정부를 향해서는 가난의 최대 적폐로 일컬어지는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이행을 촉구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결의를 다졌다.

추모제는 송파 세 모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현재에도 어딘가에 존재하는 송파 세 모녀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신묘장구대다라니 경으로 시작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5주기 추모제가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렸다. 사진 박승원 기자.
송파 세 모녀 사건 5주기 추모제가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렸다. 사진 박승원 기자.
 

추모제 내내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지난 1월에도 중랑구 반지하에 살던 모녀가 생활고로 자살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송파 세 모녀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개정으로 통합급여는 맞춤형 개별급여로 바뀌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은 여전히 폐지되지 않았고, 최근 통계청의 분기별 가계동향조사에서 빈곤층 소득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발언자들은 지난 2016년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법상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스님은 “우리는 평등한 국가에서 평등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며 “문재인 정부는 선거 공약에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지만 자그마한 땜질과 눈 가리고 아웅 하기식으로 지나가려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형숙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한데 현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며 “지금까지의 투쟁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 목소리를 모아야 할 때”라고 결의를 다졌다.

허술한 정부 정책과 엉성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협회장은 “이맘때 가장 많이 문의하는 것은 연료비 연체에 대한 것”이라며 “기초법 제8조에는 생계급여에 연료비, 피복비, 음식비 등이 포함돼 있지만, 겨울철 연료비를 내지 못해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밝혔다.

또한 “주거급여 기준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지만 주거급여 기준 중위소득이 43%로 높아, 실질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또한 “정부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됐다고 하지만, 국토부가 예상했던 60만 명에 1/3 정도인 20만 명이 늘었을 뿐”이라고 지적하며 “생계급여에서 수급자 탈락도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송파 세 모녀 사건 5주기 추모제가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렸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기자.
송파 세 모녀 사건 5주기 추모제가 28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렸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 박승원 기자.

부양의무제로 장애인과 부모, 가난한 사람이 제대로 사회보장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도 표출됐다.

윤진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는 “부양의무제로 가난을 면하기 힘든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이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일이 계속되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지원을 제발 국가가 책임져 달라고 요구해서 만들어진 주간활동서비스는 조건도 까다롭고, 하루 2시간~5.5시간 지원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정부가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줄이는 꼼수도 쓰고 있다고 성토했다.

박용수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10년 전 사고로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됐는데,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더니 부모님의 금융정보동의서를 요구해 신청을 포기했다”며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비로소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수급신청이 가능했더라면 10년간 거리 생활로 건강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일자리도 얻었을 것”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투쟁결의문을 통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절대 잊지 말자, 다시는 가난한 이들이 가난 때문에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하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추모제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로는 빈곤문제 해결할 수 없다. 생계급여·의료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하라”라는 문구가 쓰인 대형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활동가 100여 명은 “내일 3·1 운동 행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 수용시설 진짜 폐지’를 촉구하며 한 시간가량 사다리를 몸에 걸고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 무대 뒤편 전부와 도로를 점거했다. 결국 육성철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이 점거 장소까지 직접 찾아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계획을 묻는 질의서를 받아간 후에야, 이들은 점거 농성을 풀고 해산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활동가 100여명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 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 수용시설 진짜 폐지’를 촉구하며 한 시간가량 사다리를 몸에 걸고서 도로를 점거했다. 사진 박승원 기자.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활동가 100여명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장 앞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 수용시설 진짜 폐지’를 촉구하며 한 시간가량 사다리를 몸에 걸고서 도로를 점거했다. 사진 박승원 기자.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