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울려 퍼진 발달장애인들의 외침 “우리를 존중하라”
‘부산시 발달장애인권리보장선언문’ 낭독, “부산시민에게 널리 알릴 것”

“주변에서 발달장애인이 연애한다고 하면 왜 걱정하나요. 제가 연애하는 거에 대해서 묻고, 신기해하지 마세요. 연애하는 것은 내 사생활입니다. 사생활을 지켜주세요. 남자를 사랑하던, 여자를 사랑하던, 아무도 사랑하지 않던, 연애를 하지 않던 장애인을 만나던 비장애인을 만나던 우리의 사랑은 소중합니다. 발달장애인도 연애할 권리를 주세요. 발달장애인 어린이 취급하지 마세요. 연애하는 것 위험하다고 하지 마세요.” (조화영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
발달장애인들이 기획하고 진행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20일 오후 2시,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한국피플퍼스트는 부산 벡스코와 아르피나 유스호스텔에서 이틀간 진행된다.
개회식 사회를 맡은 정해민 충북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오늘은 우리가 연애하고, 일하고, 자립하고 싶은 마음속 이야기를 마음껏 할 것”이라며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춤을 출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고 대회 시작을 알리자,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번 대회에는 강원 18명, 경기 63명, 경남 168명, 경북 45명, 광주 10명, 대구 151명, 대전 35명, 부산 200명, 서울 108명, 세종 1명, 울산 32명, 인천 30명, 전남 133명, 전북 1명, 제주 10명, 충남 8명, 충북 36명 등 총1,049명이 참가해 피플퍼스트대회에 대한 발달장애인들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변성완 부산시 행정부시장과 박인영 부산시의회 의장,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대회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했다. 또한 피플퍼스트가 최초로 시작된 스웨덴과 1994년 대회를 시작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일본의 피플퍼스트 회원들이 영상으로 대회를 축하했다.

이어 발달장애인 13명과 변성완 부산시 행정부시장, 안형필 부산피플퍼스트 위원장이 ‘부산시발달장애인권리보장선언문’을 낭독했다. 선언문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소중하고 평등하다. 부산시와 부산의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부산 시민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아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총 11개로 이어진 선언을 통해 부산시는 발달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자유와 평등,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부산시를 만들고, 나아가 이를 부산시민에게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 발달장애인 당사자들, 연애·일자리·자립 등에 대해 직접 목소리 내
유용남 부산피플퍼스트 활동가가 사회자로 나선 주제발표 시간에는 △발달장애인의 연애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발달장애인의 자립 △부산시에 바란다 등을 함께 이야기했다.
발달장애인들도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의 연애를 걱정하거나 지나친 관심을 보이고 관여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우리들이 연애할 권리와 사생활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주제 발표는 조화영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가 맡았다.
“내 주변 친구들이 연애를 하면 부모님들이 혼냅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합니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이용을 당하거나 데이트 폭력, 성폭력 당한다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비장애인은 안 위험한가요? 이렇게 걱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현재 연애를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결혼해서 신혼여행도 가고, 자식도 낳아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불쌍한 장애인으로 동정받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권리로서 내 자신이 가장 행복한 연애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조화영 활동가의 발표가 끝나자 저마다 연애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떤 참가자는 짝사랑을 고백했고, 응원을 받기도 했다.

발달장애인의 일자리에 대해서는 오지현 인천피플퍼스트 회장이 발표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은 직장이 있지만, 장애인은 10명 중 3명만 직업이 있다. 그중에서 발달장애인은 2~3명만 직업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주어진 일은 조립이나 포장, 가게 정리, 편의점 제품 진열, 바리스타, 빵 굽기, 문서 수발, 청소 보조, 도서관 보조, 세탁 보조 등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만 할 수 있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일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분위기에서 일하고 싶다고 외쳤다.
“제 경험을 말하자면 요양보호사 보조와 바리스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터에서는 저를 회식 자리나 회의에서도 끼워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고 화가 납니다. 사회생활 쉽지 않은 거 압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도 발달장애인을 이해해줄 수 있는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 곳에서 일하면 우리도 잘할 수 있습니다.”
2016년부터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최관용 대구피플퍼스트 회장은 자립생활을 하면 좋은 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무엇보다 ‘자유롭다’고 했다. 시설에서 지낸 5년간 밤 9시만 되면, 자야 했고 휴대폰도 빼앗긴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하고 싶을 때 뭐든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지원금을 늘리고, 필요한 만큼의 활동지원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장애인 이동권 보장되는 부산, 시설 없애고 탈시설-자립생활 보장되는 부산 되길”
부산에서 열리는 대회인 만큼 부산시에 대한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심정아 부산피플퍼스트 활동가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산’을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우리 센터 소장님과 국장님은 걷기가 힘든데, 센터 앞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합니다. 경사로가 없어서 계단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차별입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도 편하게 식당을 가거나 공원을 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김재훈 부산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울산 동향원에서 지냈던 세월을 이야기하며, 부산시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동향원은 입소인들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시키고, 병원에서 방치되다 죽음에 이르게까지 했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요즘 동향원의 장애인 인권 침해 기사를 접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20년 동안 동향원에서 지냈습니다. 시설에서는 자기들 말 안 듣는 장애인들을 벌주려고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저에게는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의 기저귀를 갈게 하고, 화장실 청소를 시켰고, 건물에 있는 거미줄을 없애게 했습니다. 저만 보면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정신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서 일을 하긴 했지만, 돈은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신병원이 너무 무서워 자립을 하게 됐습니다. 자립해서 생활하는 것이 좋습니다. 동향원이 경찰 조사 중이라고 하는데, 부산시는 철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이후 참가자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 노래, 춤으로 자유롭게 표출하는 ‘자유 발언’ 시간을 보냈다. 이어서 혜영·혜정 자매와 인서의 노래공연, 풍물패 양천리축제단의 공연, 슬릭의 랩 공연, 퀴어댄스팀 큐캔디의 공연이 이어졌다.
대회 둘째 날(21일)에는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차별 △일자리 △자립 △스트레스 관리 방법 △참정권 투쟁 등을 주제로 분과 회의가 예정돼 있다. 이후 폐회식이 진행된다. 폐회식에서는 2020년 개최지 발표가 이뤄질 예정이다.
한편, 피플퍼스트는 197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개최된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주장대회에 참가한 한 발달장애인이 사람들이 자신을 “정신 지체"로 부르는 것에 대해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운동을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다. 현재 전 세계 43개 나라에서 발달장애 당사자가 피플퍼스트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 ‘한국피플퍼스트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