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주거지원법안’ 공개… 시설 소규모·다양화 내용 담겨
“장애인의 삶 배제한 거주시설 출구 전략 아니냐”는 비판도

5일 오후 2시, 전경련회관 뱀부홀에서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주관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주거지원법 제정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유튜브 캡처.
5일 오후 2시, 전경련회관 뱀부홀에서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주관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주거지원법 제정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유튜브 캡처.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주축으로 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안’이 공개된 5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주축이 되어 준비한 ‘장애인주거지원법안’도 공개됐다. 이들 법안은 표면적으로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목표로 하지만, 한쪽은 장애인당사자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쪽은 거주시설 개편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10년 내 탈시설’과 ‘10년 내 거주시설 전환’이라는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은 두 법안, 우리 사회는 어느 쪽을 지향하고 있을까. 

5일 오후 2시, 전경련회관 뱀부홀에서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주관으로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주거지원법 제정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윤상용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가 ‘장애인주거지원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의 핵심은 10년 이내에 현재의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의 다양화·소규모화다. 법안에서는 현재의 거주시설이 ‘장애인주택’으로 전환된다. 장애인주택은 △전문요양주택 △집중돌봄주택 △지원주택 △자립주택 △단기지원주택 △생활주택 등 6개로 나뉜다. 이들 주택은 장애정도와 서비스 종류에 따라서 구분된다. 그러나 이 중 장애인의 독립적인 주거생활 유지를 위한 ‘생활주택(2명)’을 제외하고는 최대거주 인원이 10명이어서 사실상 시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장애인주택은 [중앙정부-장애인주거지원인증원-주거지원센터(운영사업자)]의 전달체계를 통해 운영된다. 주거지원센터를 운영할 장애인주거지원인증원은 중앙·지역으로 따로 설치되며, 이 중 지역주거지원인증원은 △주거서비스 상담 및 정보 제공 △장애인주택 이용 희망 장애인의 이용적격성 사정 및 개인별 주거서비스계획 수립 △장애인주택의 주거지원센터 인증 업무 등을 맡는다. 

장애인주택의 생활지원을 맡을 주거지원센터에는 서비스 인력이 배치된다. 인력배치는 현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사회재활교사’의 역할을 하는 인력은 ‘자립지원인’으로 명칭이 바뀌고 (촉탁)의사는 폐지된다. 또한 현재 각 1명씩 배치되는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청능치료사·언어치료사·보행훈련사·상담평가요원·영양사 등에서는 이 중 2명만 선택해 배치한다. 주거지원센터는 3년 인증제로 운영된다. 

이 밖에도 시설폐쇄 후 설립자의 기본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장애인주거지원법(안)'에서 제시된 전달체계도. 윤상용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발표 자료 캡처
'장애인주거지원법(안)'에서 제시된 전달체계도. 윤상용 충북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발표 자료 캡처

- 장애인주거지원법, 결국 장애인거주‘시설지원’법 지적

법안이 처음 공개된 만큼 수정하거나 보완한다는 전제가 깔렸지만, 법안이 현행 장애인정책 전달체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안은 시설의 소규모·다양화를 중심으로 논의돼 현재의 시설거주인과 시설의 권력관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따라서 거주시설의 출구전략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동석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법안은 현재의 국가와 장애인의 관계, 국가에 대한 장애인의 통제 또는 국가가 위임한 전문가에 의한 통제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완전한 갑을관계인 시설법인과 시설거주인의 관계도 그대로다. 주거지원인증원을 설립해 장애인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반영하는 것뿐 자립생활을 주도적으로 장애인당사자에게 맡기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 제29조(장애인주택 이용절차) 제1항에 ‘장애인주택을 이용하려는 장애인과 그 친족, 그 밖의 관계인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서류를 갖추어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장애인의 장애인주택 이용을 신청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보장 관련 법률이 지니고 있는 관행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용 교수는 “법안에 현재의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법안 제29조에서 친족과 그 밖의 관계인이 이용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타법을 별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왔다.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장애인주택에서 10명이라는 정원을 둔 것도 거주시설을 연상하게 한다. 이에 윤상용 교수는 “5명으로 고려하기도 했지만 이는 수정이 가능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시설 정원보다 시설 정책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이 나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거주시설은 감옥’이라는 말로 지탄을 받았지만, 이 말은 실제 거주시설에 살았던 장애인이 한 말이다. 실제로 거주시설과 감옥의 생활 양상은 비슷하다”라며 “10~20명이 함께 있던 시설에서 독방을 쓴다고 감옥을 탈피했다고는 할 수 없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5에서는 ‘시설이나 시설화의 결정적인 요인을 갖고 있다면, 자립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이 법안은 거주시설운영자 중심의 ‘장애인거주시설지원법’이다”라며 “장애인의 삶의 변화를 위해서는 결국 ‘탈시설’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최혜영 의원이 발의를 앞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안’에서는 10년 내 거주시설을 폐쇄하고,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초기 정착 지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안)’과 '장애인주거지원법(안)' 비교표. 사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발표 자료 캡처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안)’과 '장애인주거지원법(안)' 비교표. 사진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발표 자료 캡처

- 시설협회 “탈시설 정책이 돌봄공백 만들었다”… 정부 ‘탈시설 정책 사실상 없다’

정석왕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은 오늘 발표된 법안이 ‘탈시설 정책’ 흐름에서 나왔다고 하면서도 돌봄공백이 ‘탈시설 정책’으로 발생했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쳤다. 

정석왕 회장은 “지역사회의 준비가 부족하고 탈시설에 대한 대안이 없는 현 상황, 낮은 사회인식 속에서 (장애계의 탈시설 주장은) ‘탈시설 찬반’이라는 이분법적 논란만 가중시켰다. 이는 결국 동반자살, 가족해체 등의 혹독한 결과를 낳았다”면서 “현 정부가 제시하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에 동의한다. 거주시설이 변화의 대상이 아닌, 변화의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현아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연대 대표도 “정부가 지난 10년간 탈시설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신규 입소 금지, 거주시설 축소를 했고, 강제적으로 시설 정원을 줄이고 있다”라며 “탈시설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 지적장애인, 발달장애인은 한 번도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채 변화의 직격탄을 맞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적극적인 탈시설 정책을 이행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신용호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과장은 “계속 탈시설 정책 설계는 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정부가 내놓은 내용은 없다”며 “장애계 일부에서는 10년 이내에 탈시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50년이 걸릴지 30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정부부처에서 혁명적으로 탈시설을 추진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는 개별법 제정보다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추진한다는 입장을 공공연하게 내비쳤다. 

박경석 대표는 “탈시설은 우리사회에서 수면 위로 올라온 적도 없다. 정부에서도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며 쓰지 않는다. 따라서 탈시설 찬반논란 종식하자는 말은 오히려 본질을 호도하는 게 아닌가 싶다”라며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펼친 적이 없는데, 탈시설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다는 논거도 맞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노르웨이는 이미 1985년에 발달장애인의 생활여건을 통해 ‘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처해 있는 생활 여건은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상황은 활동의 재조직이나 자원 공급의 증가로 변화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1988년에 시설해체법을 시행했다. 모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온 이후 이 시설해체법도 폐지되었다”라며 “2020년 우리나라가 시설해체로 가야 할지, 시설 소규모·다양화라는 역행의 길로 갈지 결정해야 할 때다. 시설 소규모화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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