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근거 있어도 지자체·학교·교사에 따라 달라 “운에 맡길 수밖에”
제정 13년 만에 질적 향상 위한 ‘전부 개정’ 논의
‘중도중복장애 지원·국가 책무성 강화 등’ 중점

12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부모연대의 주최로 장애인부모가 요구하는 특수교육법 개정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이가연
12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부모연대의 주최로 장애인부모가 요구하는 특수교육법 개정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이가연

지난 2007년, 장애계의 오랜 투쟁 끝에 장애인등에대한특수교육법(아래 특수교육법)이 제정됐다. 당시만 해도 특수교육 현장은 학령기 장애학생들이 학교 입학조차 어려울 만큼 열악했는데, 특수교육법 제정을 통해 이러한 문제는 다소 해결됐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학생들은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법률에 규정된 조항들은 문구로만 남아있을 뿐 행정적 지원이 부족해 지자체와 학교 및 담당 교사마다 장애학생 지원은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장애학생에 대한 교육환경의 열악함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자 장애인부모를 중심으로 장애계에선 특수교육법 전부개정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12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주최로 장애인부모가 요구하는 특수교육법 개정 방향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도경만 장학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도경만 장학관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질적 향상 위해 국가 책무성 강화해야 

도경만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특수교육지원센터 장학관은 특수교육법 전면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동안 특수교육법은 특수교육 기관 및 특수교육대상 학생 확대, 무상의무교육 범위 확대 등 양적 성장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또한 가족·치료·통합·편의에 대한 지원인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와 학급당 학생 수 기준을 규정하는 등 특수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했다. 그러나 도 장학관은 “현행 특수교육법은 특수교육의 질적 수준 제고를 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며, 중도중복장애학생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재 연구 중인 특수교육법안에는 그동안 지적됐던 특수교육 현장의 다양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먼저 도 장학관은 “이번 개정안 중 가장 핵심적인 점은 바로 특수교육에 대한 국가 책무성 강화”라면서 “현행 특수교육법에서는 유치원·초·중·고등학교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못 간다. 예를 들어, 시군구 담당자가 특수교육대상자를 선정해 유치원에 배치하려고 해도, 국공립 유치원이 부족해서 갈 수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정안에서는 특수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무·무상 교육에 대한 특수교육 기관을 확충하고, 특수교육 교원 배치 규정을 신설했다. 또한 다른 법률과 상충하는 점을 고려해 특수교육법이 우선해 적용한다는 특별법적 지위를 명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립 특수교육기관의 책무를 강화하기 위해 사립의 특수교육기관 위탁 요건 및 취소, 그리고 관리·감독의 규정도 신설했다. 이에 대해 도 장학관은 “(시설중심의 장애인 정책이 이뤄지던) 1977년에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시설 장애인에 대한 교육을 위해 인건비를 지원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현행 특수교육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사립 특수교육기관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시 위탁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만들었다”라면서도 “물론 여러 사립특수학교 이사장으로부터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특수학교의 70% 이상이 학교법인이 아닌 사회복지법인이기 때문에 학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 부족하다”라며 규정 신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행 특수교육법에 따라 각급 학교의 장은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적 요구에 적합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개별화교육지원팀을 구성한다. 이번 개정안에는 교육지원팀 구성원에 특수교육대상자 또한 포함했다. 도 장학관은 “현장교사와 부모들은 당사자의 참여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당사자 스스로가 자기 삶의 영향을 미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그동안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제했다고 볼 수 있다. 북유럽에서는 이미 특수교육에 학생·학부모·교사의 삼자 대화가 일상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당사자가 참여하는 개인별(개별화) 교육지원팀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개정안에서는 특수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특수학교의 학급 및 특수학급의 학급당 학생 수를 유·초·중·고 4명, 6명, 6명, 7명에서 3명, 4명, 5명, 5명으로 감축했다. 이와 함께 중도중복장애학생이 배치된 학급의 경우 장애인의무고용 제도의 ‘더블카운팅’을 활용해 학급당 학생 수 기준보다 더 감축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근거를 규정했다. 

특히 중도중복장애학생에 대한 별도의 건강관리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필요 시 의료인 등을 배치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이에 대해 김기룡 부모연대 사무총장은 “건강관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특수교사의 역할을 고민했지만, 현장 교사들이 받아들이기에 논란이 많았다. 일본의 경우 건강관리 지원 주체로 특수교사와 보건교사가 협력한다는 점을 참고해 개정안에 건강관리 지원체계에서 의료인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만들었다”라면서도 “그러나 의료인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있다. 만일 정부가 의료인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간호 인력을 조정하는 안도 고려 중이다”라고 말했다. 

김기룡 부모연대 사무총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김기룡 부모연대 사무총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좋은 선생 만날 수 있을까’ 운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교육의 질 

그렇다면 특수교육법 전면 개정에 대한 장애인부모들의 생각은 어떨까? 학부모들은 한 목소리로 특수교육법 자체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현장에서는 법률의 내용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박주란 중등특수학급 학부모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좋은 특수교사를 만나 통합교육을 받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교사와 학교에 따라 교육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경험을 했다. 박 씨는 “똑같은 특수교육법과 이에 근거하는 기준으로 자녀들이 수업을 받지만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지원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운이 좋아야 (법령의 내용을 지키는)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녀의 성장도 달라진다”라며 “매번 운에만 의존하는 일은 자녀와 부모에게 굉장한 부담이다. 이번 개정에 있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수교육법에는 각급 학교의 장이 보조공학기기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원되지 않고 있다. 정순경 고등특수학교 학부모는 “제 자녀는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중복장애인이다. 그래서 입학 시 학교에서 제공되는 책걸상도 쓸 수 없게 되자 학교에서 자녀에게 맞는 책상을 직접 준비해오라고 해서 제가 100만 원이 넘는 돈으로 구매해 비치했다”라며 “당시에도 특수교육법에 보조공학기기 지원 근거가 있었지만, 법률에 따른 예산이 집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원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에는 예산의 실행주체가 정확히 명시되어 국가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정 씨는 코로나시기를 겪으며 자녀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학생과 부모에 대한 상담지원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정 씨는 “자녀에게 집에 있는 상황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해 부쩍 짜증이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근력이 무너지고 자세 유지를 못하게 됐다. 학교에 갈 수 있는 기간에라도 열심히 학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언제 종결될지 모른다고 한다. 전염병으로 인해 평소에 없던 도전행동과 신체에도 변형이 생기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학생과 부모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상담 지원이라도 마련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연주 초등특수학교 학부모는 “특수학급이 설치되지 않은 학교는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로 가라고 하지만,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는 과밀이라며 입학을 거부한다. 그러면 결국 학부모는 통합교육을 포기하고 특수학교로 가려고 하지만 특수학교의 수도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2019년 10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최종견해를 통해 한국에 ‘통합’이란 단순히 물리적 포함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의 ‘포용’을 의미한다며 주요 특수교육 제도의 변화를 권고한 바 있다. 유 씨는 이를 언급하며 “특수교육 환경이 물리적 개선으로만 끝나지 말아야 하며, 특수교사들에게도 통합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특수학교는 폐쇄적인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진보적 환경에 이바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장애인부모들이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도 장학관은 구체적인 예산이 지원되기 위해서는 투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도 장학관은 “2003년 이동권 투쟁 당시 전문가들이 ‘예산이 얼마인데’라며 가장 많이 반대했다. 장애인복지의 우선순위가 다른 곳에 있으니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장애인 당사자들의 끊임없는 투쟁 끝에 이를 현실화했다. (특수교육법에 관한) 요구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모와 조직들과 연대하여 투쟁하는 구체적 작업이 있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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