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콩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한 모험

하루가 길었다. 바쁜 일정에 식사 시간을 놓쳤다. 우리 동네에 들어서자 긴장이 풀리는지 온몸이 늘어지면서 배가 고파진다. 딱히 생각나는 음식이 떠오르지 않지만, 시원하고 담백한 뭔가가 먹고 싶다. 이 막연한 욕구를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보이는 수많은 음식점 간판들을 살펴본다. ‘저걸 먹으면 좋겠다’ 싶은 메뉴는 가게 앞이 계단이거나 턱이 높다. ‘아! 먹고 싶은 메뉴는 또 포기해야 하나. 어쩔 수 없지’ 하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이 욕구에 피곤까지 겹쳐서 슬그머니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순간, 동네 콩국수집이 생각났다. 입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못 봤다. 국수를 좋아해 언제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지금이라는 생각이 났다. 시원 담백 고소한 콩국수 한 그릇이면 이 허기를 채울 것만 같은데. 만약 이런 간절함으로 갔다가 가게에 못 들어가면 실망으로 더 짜증이 나겠지만,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런 짜증이 하루 이틀도 아니니 또 해보는 거지하고 애써 의욕을 내 찾아 나섰다.

오른쪽에 콩국수집 출입구가 있다. 그러나 바로 앞에 경사로가 없어서 정면으로 못 들어가고 왼쪽에 설치된 경사로를 통해 인도에 올라가야 한다. 인도에서 콩국수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데, 인도가 좁아서 겨우 돌려서 들어갈 수 있으며 나올 때도 겨우 돌려서 나올 수 있다. 사진 박김영희
오른쪽에 콩국수집 출입구가 있다. 그러나 바로 앞에 경사로가 없어서 정면으로 못 들어가고 왼쪽에 설치된 경사로를 통해 인도에 올라가야 한다. 인도에서 콩국수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데, 인도가 좁아서 겨우 돌려서 들어갈 수 있으며 나올 때도 겨우 돌려서 나올 수 있다. 사진 박김영희

전동휠체어 바퀴를 굴러 굴러 가게를 찾았다. 콩국수, 팥칼국수, 팥옹심이, 등등. 마침 딱 당기는 메뉴다. 그런데, 출구에 턱 하나. 다음 단계로 내부의 식탁과 의자가 붙박이인지, 전동휠체어도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인지 등등을 살폈다. 전동휠체어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넓고 탁자도 괜찮다. 그런데 이 턱을 어떻게 하지……. 주인은 내 고민이 무엇인지 살피기도 전에 “우리집은 국산 밀을 써서 좋아요” 하고 첫말을 뗀다. 이렇게 고객의 욕구를 모를 수가.

그런데 탁월한 운전 솜씨를 부리면, 가게 안으로 진입할 길이 보인다. 쾌재다! 쾌재! 일단, 대모험은 성공적이었다. 마침내 콩국수 한 그릇이 떠억, 내 앞에 왔다. 뽀얀 콩국물에 탄력 있는 면발, 상큼한 오이 몇 조각, 고소한 깨소금 한 꼬집, 반짝이는 얼음 몇 개가 콩물에 하얀 치장을 더한다. 면발 한 젓가락 입으로 쏘옥 들어가자 담백하고 시원한 그 맛에 찰랑찰랑 넘치려던 짜증이 싹 가시고 소박한 만족감이 온몸을 감돈다.

‘우와, 참 좋다! 이게 사람 사는 행복이지!’ 나에게는 이 말 한마디가 왜 이리 어려운지. 콩국수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 기복을 느껴야 하는지. 그러함에도 이나마 시원한 콩국수를 먹을 수 있어 다행인 상황이 영 위안이 되지 않는다.

휠체어 장애인이 모든 가게를 1층처럼 접근할 수 있도록

내가 활동하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장애인의 1층이 있는 삶’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대책위를 만들어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을 준비 중이다. 먼저 공익변호사와 장애인 단체들이 모여 대형 커피숍을 상대로 휠체어 장애인이 가게에 접근 가능하도록 소송도 했다. 본사에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공문도 보내고, 시정하지 않는 커피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도 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몇몇 대형 커피점으로부터 언제까지 시정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이것은 장애인이 모든 가게를 1층처럼 자유롭게 접근하기 위한 활동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 순간, 일상 속에서 밥을 먹기 위하여, 누군가를 만나기 위하여, 무엇을 구매하기 위하여 그곳을 찾아간다. 그 길 위에 아무런 물리적 장애를 못 느꼈다면, 그것은 그만큼 공기처럼 당연하게 접근권을 보장받아와서다. 장애인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어떤 장애가 있든 그 장애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나 접근이 필요하다. 이 사회에서, 이 동네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기 위하여 소소하고 소박하고 별것 아닌 삶을 위해, 그냥 그렇게 살기 위해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장애인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조용히 요란하지 않게 편의점도, 옷가게도, 분식점도, 마트도 가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등편의법을 좀 더 섬세하고 세심하게, 요소요소 곳곳에서 장애인에게 필요한 법이 되도록 개정하려 한다. 더이상 장애인이 혼자 고민하고 눈치 보고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가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권이 보장되려면 그를 위한 사회적 약속이 돼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장애인에게 1층이 있는 삶’을 위한 권익 옹호 활동을 한다.

1984년 김순석이라는 소아마비장애인이 서울시장에게 ‘서울의 턱을 없애주시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돈이 있어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고, 밥 한술 먹을 수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턱 때문에 행인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고, 육교를 오를 수 없어 차도를 가니 무단횡단했다고 경찰에게 잡혀가야 했다.

1984년의 휠체어 탄 장애인 김순석이 외친 절망을 2020년을 살아가는 장애인도 느끼고 있다. 1984년의 김순석이 식당 문 앞의 턱 때문에 배고픔을 참고, 가게 계단 앞에서 목마름을 참으며 돌아서야 했던 모습이 2020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같은 모습 같은 마음으로 반복되고 있다. 2020년 김순석이 여기 그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지난 11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1층이 있는 삶’을 위한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 11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1층이 있는 삶’을 위한 플래시몹을 진행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법보다 앞서 사회 인식이 개선되기를

가게 주인은 가게 앞에 경사로 하나 놓으면 안 될까. 가게 안에 탁자와 의자 공간이 있으면 안 될까. 가게 입구에 턱을 없애면 안 될까. 장애인 손님도 같은 손님으로 친절히 맞아주면 안 될까. 구청이나 주민센터 소관이 아니냐고 미루기 전에 가게도 장애인을 당연히 고객으로 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세월이 가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장애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장애인은 열심히 차별에 저항해 투쟁하며 법을 개정해 나가려 한다. 그렇게 법을 바꾸면 법대로 지켜내는 것이 필요하고, 동시에 사회의 인식 변화 역시 필요하다. 누구나 편하게 접근하도록 만들려는 건설업자의 인식, 장애인도 소비자로 존중되고 장애인 고객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가게 주인들의 인식 말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그 변화는 참 느리기만 하다. 누가 먼저 이런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일까. 사회 변화는 특별한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이 순간부터 나부터 시작할 때 가능해진다. 이는 누구나 알고는 있다. 그런데 왜 안 되는 것일까.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장애인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도록 되어 있으나, 일상에서는 이것이 요원하기만 하다. 이와 같은 권리를 모두가 보장하기 위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전동휠체어는 나의 몸이기에 분리될 수 없다. 휠체어와 한 몸인 채로 어느 동네 어느 가게든 약속을 잡고, 먹고 싶은 메뉴를 마음대로 고르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 볼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상을 나는 바란다.

노을이 고운 저녁, 느지막이 동네 어귀로 휠체어를 타고 나와 바퀴가 닿는 곳 어디든 들어가 친구와 웃으며 차 한잔할 날이 어서 오면 좋겠다.

필자 소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대표. 점점 더 약해지는 몸의 메시지에 때로는 거부하고 때로는 순종하며 투쟁하는 장애여성입니다. 교활함과 부정의 상징 ‘늙은 여우’의 직관과 지혜로 삶 속에서 긍정을 발견하며 나이 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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