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 장애계 민관합동조사 요구도 묵살… 51일째 1인 시위
가해자 4명 중 1명만 ‘50만 원 벌금’ 구형
“전북도 시설정책 버리고 탈시설정책으로 전환해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장애인인권단체는 2일, 전라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 지역에서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범죄에 대해 전북도의 책임을 촉구했다. 한 참가자가 ‘무주 하은의집 민관합동조사 실시하라!’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장애인인권단체는 2일, 전라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 지역에서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범죄에 대해 전북도의 책임을 촉구했다. 한 참가자가 ‘무주 하은의집 민관합동조사 실시하라!’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 장애인거주시설 하은의집에서 폭행·학대 등의 정황이 알려졌음에도 제대로 된 조사 없이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장애계는 반복되는 시설문제에도 뒷짐 지는 전북도의 책임을 지적하며, 하은의집 시설폐쇄와 탈시설 계획 수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장애인인권단체는 2일, 전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 지역에서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아래 거주시설) 범죄에 대해 전북도의 책임을 강조했다.

기자회견 전 장애계 대표단은 △하은의집 시설폐쇄 및 거주인 개인별 탈시설 지원 계획 수립 △전북도의 탈시설 정책 선언 △전북도 내 거주시설 10년 내 폐지·장애인탈시설지원 조례 제정 △민관합동시설조사 즉각 진행 등을 요구하며 전북도와 면담을 했지만 별다른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장애계는 전북도의 약속을 끌어낼 때까지 정문 앞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7월 28일 전주MBC는 무주의 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정황이 담긴 SNS 내용을 보도했다. 사진 전주MBC 영상보도 캡처 편집
지난 7월 28일 전주MBC는 무주의 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정황이 담긴 SNS 내용을 보도했다. 사진 전주MBC 영상보도 캡처 편집

- 전북도, 장애계 민관합동조사 요구 묵살… 51일째 1인 시위

지난 7월 28일 전주MBC는 무주의 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정황이 담긴 SNS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사회복지사들은 SNS를 통해 상습적 폭행과 학대를 예상할 수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대 후려쳤는데 멍들었을 것 같아요’
‘등에 도화지, 난초 그렸어요?’
‘일단 속옷 다 벗겼더니 저 꼬집고 가져가려고 하길래 팬티 찢어버렸어요’
‘자꾸 (꼴)깝 떨면 잠옷도 찢어버려요’
‘이불 있었는데 그런 게 생각이 안 났어요. 이성이 사라져서…’
‘내일도 염병 떨면 삼청교육대 보낼게요’

이 시설은 하은의집(전북 무주군 부남면 소재)으로 밝혀졌다. 하은의집은 29명의 거주인(남성 17명, 여성 12명)이 거주하고 있는 지적장애인거주시설이다. 이에 전북 지역 장애인인권단체는 하은의집 전국대책위를 꾸리고 전북도에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전북도가 대책위에서 요구한 민관합동조사를 받아들이지 않아, 대책위는 이를 요구하며 전북도청 앞에서 51일째(12월 2일 기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승권 전북장애인인권옹호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하은의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혀야 할 전북도는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을 끝내 밝히지 못했다. 하은의집 거주인들은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그곳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다”라며 “기본적인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거주인 인권을 챙기겠다는 전북도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기자회견에서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자회견에서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가해자 4명 중 1명만 솜방망이 처벌… “시설범죄 계속되는 원인”

결국 언론 보도 이외의 내용은 밝혀내지도 못했고, 사회복지사 4명만 약식기소됐다. 그중 1명만 재판에 넘겨져 벌금 50만 원을 구형했다.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분명히 피해자는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강에 쓰레기를 투기해도 과태료 100만 원 이상을 부과하는데 거주인 여러 명이 인권침해를 당해도 고작 50만 원을 내라고 한다”며 “장애인을 이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한 분들은 ‘거주시설은 감옥’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주시설이 감옥보다 더 하다. 감옥은 적어도 사회로 언젠가는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거주시설 거주인들에게는 내일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으로 전북도가 내놓은 대책은 △하은의집에 대한 행정·재정적 조치 △피해거주인 및 거주인 권익 보호 계획 △정기적 인권실태 조사 △종사자 인권교육 강화 등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책위는 “장애인에 대한 폭행과 학대가 일부 개인의 일탈이라는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며 “거주시설의 구조적 문제를 회피하는 대책”이라고 분노했다.

2019년 기준으로 전북의 거주시설은 49곳이고, 1700여 명이 수용돼 있다. 이 중에서 33곳은 30인 이상 대형 거주시설이다. 전북 지역 시설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김제 영광의집(2007), 자림원(2012), 장수 벧엘의집(2019)에서도 거주인 성폭행, 학대 등의 인권침해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강현석 전북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 소장은 “시설범죄가 발생했을 때 전북도는 항상 ‘예방책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러한 미온적 태도로 계속 시설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전체 시설 거주인의 88%가 가족, 친척에 의해 시설에 들어왔다.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시설에 수용돼 있다”며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탈시설 방안 마련만이 ‘유일한 예방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북도는 탈시설 계획이 아닌, 30인 이상 거주시설 24곳에 대한 ‘거주시설 소규모화’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북도가 장애계 대표단에 제시한 문건에는 탈시설 계획으로 ‘거주시설 소규모화, 인권향상 등 거주시설 운영 개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북도가 장애계 대표단에 제시한 문건에는 탈시설 계획으로 ‘거주시설 소규모화, 인권향상 등 거주시설 운영 개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전북도 시설정책 버리고 탈시설정책으로 전환해야”

기자회견에서는 하은의집 사건을 계기로 전북도가 시설정책이 아닌 탈시설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기자회견 전 면담에서 전북도는 ‘중앙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왜 전북도가 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미 지자체 차원에서 탈시설-자립생활 종합계획을 세운 곳은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경기 등 6곳이 있다는 점에서 전북도의 의지 결여가 엿보인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노르웨이정부 공식 장애인권기관에서는 거주시설 발달장애인의 삶을 ‘인간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라는 보고를 했다. 그런데 전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하은의집 사건에 대해 ‘문제가 있는데 조금밖에 없다’라는 결과를 내놨다. 가해자 고발조치를 어떤 내용으로 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이게 장애인권익옹호를 한다는 기관인가?”라며 “전북도가 시설 소규모화를 해서 거주시설 거주인의 인권향상을 도모하겠다고 하는데, 시설 소규모화는 탈시설 정책이 아니다. 전북 내 거주시설 10년 내 단계적 폐쇄, 장애인탈시설 지원 조례를 제정해 시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북도뿐 아니라 전국 거주시설에서 모든 장애인이 나올 수 있도록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과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 투쟁에 더욱 힘을 모으겠다”고 힘줘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기자회견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장애인인권단체는 2일, 전라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 지역에서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범죄에 대해 전북도의 책임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장애인인권단체는 2일, 전라북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북 지역에서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범죄에 대해 전북도의 책임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계는 전북도의 약속을 끌어낼 때까지 정문 앞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계는 전북도의 약속을 끌어낼 때까지 정문 앞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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