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의집 경찰 수사 7개월 지나도 거주인은 그대로 시설에
경찰 수사 조속히 마무리해 피해 거주인과 가해자 분리해야 
장애계,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설치 촉구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거주시설에 대한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에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설치 요구안’을 제출했다. 사진 허현덕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거주시설에 대한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에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설치 요구안’을 제출했다. 사진 허현덕

장애계가 여주 라파엘의집을 비롯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인권침해를 끊어내기 위해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아래 특수본)’를 꾸릴 것을 경찰청에 요구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9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거주시설에 대한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에 특수본 요구안을 제출했다.    

- 인권침해 경찰 수사 7개월 지났지만 피해 거주인 분리조차 안 돼

지난 3월, 대형 거주시설 여주 라파엘의집(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재단)에서 거주 장애인 7명을 종사자 15명이 폭행·학대한 사실이 알려졌다. 여주경찰서가 CCTV를 조사한 결과 종사자들은 거주인을 이종격투기 하듯 폭행했고, 팔·다리·어깨 등의 신체를 일상적으로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정민구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시각장애가 있는 거주인을 이종격투기 하듯 폭행을 하고, 짐볼을 25차례나 던졌다는 것이 경찰이 조사한 약 1년간의 CCTV를 통해 드러났다”라며 “이는 CCTV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폭행과 학대가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드러난 거주인 인권침해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어 매우 참담하다”라고 말했다. 

라파엘의집에는 나무로 만든 기립기가 다수의 방에 설치돼 있었다. 세 개의 까만 벨트는 몸을 묶는 용도로 달아놓았다. 한 눈에 봐도 임의로 만든 걸 알 수 있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제공
라파엘의집에는 나무로 만든 기립기가 다수의 방에 설치돼 있었다. 세 개의 까만 벨트는 몸을 묶는 용도로 달아놓았다. 한 눈에 봐도 임의로 만든 걸 알 수 있다. 사진 장혜영 의원실 제공

라파엘의집에서는 종사자의 거주인 폭행뿐 아니라 거주시설 내에서 조직적 학대 정황도 발견됐다. 다수의 ‘유닛(방 5개+거실 1개)’에 설치됐던 기립기가 그 증거다. 기립기는 전동 재활기구로, 시중에서는 300~400만 원 정도의 의료기기다. 그러나 여주 라파엘의집에 설치된 기립기는 자체 제작한 나무 기립기로, 이를 벽에 부착해 사용했다. 몸통과 다리를 고정할 수 있는 것은 세 개의 밸크로(일명 찍찍이 테이프) 벨트뿐인데, 거주인이 30분 이상 묶여 있던 경우는 64건에 이른다. 거주시설 측은 이를 재활기구로 활용했다고 했지만, 인권침해 지적이 나오자 철거했다. 

뇌병변·지적장애 자녀를 둔 정순경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꼭 제 아이의 일 같아 마음이 무너진다”라며 “라파엘의집에 설치된 기립기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런 기립기가 아니었다. 그냥 나무판자에 불과하다. ‘관짝’보다 못한 고문기구, 학대기구처럼 보였다. 종사자가 거주인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다”라고 성토했다.  

정순경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라파엘의집에 설치된 기립기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그냥 나무판자에 불과한 ‘관짝’보다 못한 고문기구, 학대기구처럼 보였다”고 성토했다. 사진 허현덕
정순경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라파엘의집에 설치된 기립기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그냥 나무판자에 불과한 ‘관짝’보다 못한 고문기구, 학대기구처럼 보였다”고 성토했다. 사진 허현덕

- 경찰, 지자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수수방관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명백한 인권침해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여전히 피해 거주인과 가해 종사자의 분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라파엘의집 인권침해 공익제보가 나온 건 지난해 8월, 경찰조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수사 중간발표는 6개월 만인 지난 2월에 있었다. 조사 발표 직후 가해 종사자 15명 중 죄질이 가장 나쁜 2명은 퇴사했다. 나머지 13명은 잠시 업무에서 배제되었다가 이 중 5명이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경숙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 이사장은 “수사가 시작된 지 7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가해 정황이 있는 종사자가 거주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2, 3차 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장애계는 지자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지적했다. 서울장차연은 “권익옹호기관에서는 거주시설이 유닛구조로 되어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날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하지만 같은 거주시설에 있는 한 가해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해자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인데, 이를 쉽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여주경찰서는 가해자 업무 복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여주경찰서 담당자는 9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중간 조사 발표 후 가해자, 피해자가 분리조치가 됐다고 보고 받았는데, 5명이 복귀했다는 건 몰랐다. 강남구청과 권익옹호기관에 자문을 구해 보겠다”라면서 “CCTV 양이 많아서 분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현재 하드 포렌식 작업은 국과수에서 마쳤고, 경찰은 CCTV 자체 분석을 마쳐서 이번 달 말까지는 수사를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아있다. 폐쇄적인 시설 문제 특성상 거주 장애인들의 진술이 무척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각·발달 중복장애인 특성에 맞는 형사사법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의사소통 경험이 많은 전담 경찰관이 조사를 하고, 피해자 진술 과정에서 당사자와 신뢰 관계에 있는 조력인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이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민구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더 이상 거주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유야무야 되지 않도록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사진 허현덕
정민구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더 이상 거주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유야무야 되지 않도록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사진 허현덕

-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꾸려 악순환 끊어내야

기자회견 직후 서울장차연은 ‘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아래 특수본)’에 대한 요구안을 경찰청에 제출했다. 

울주군 동향원·경주 푸른마을·선인재활원·경주 혜강행복한집(2018년), 오산 성심재활원·장수 벧엘의집(2019년), 가평 루디아의집·평택 사랑의집(평강타운)·무주 하은의집(2020년) 등 셀 수 없이 많은 거주시설에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졌다. 거주인이 사망했고, 같은 시설에서 같은 인권침해가 재발하기도 했다. 요구안에는 이런 시설범죄 리스트와 탈시설장애인 100명이 쓴 ‘탈시설지원법 제정 촉구 서한’이 담겨 있다. 

장애계는 이처럼 반복되는 시설범죄의 원인을 △행정의 관리감독 책임처벌 부재 △봐주기식, 시간 끌기 행정처분 △피해 거주인에 대한 지원대책 부재 △피해가 증명되지 않은 거주인은 피해자 보호에서 배제 △다른 시설로의 전원조치 △가해자에 대한 낮은 처벌 수준 △원장 및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책임처벌 이행 부재 △공익제보자 보호시스템 부재 등이라고 지목하며, 특수본을 꾸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가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설치 요구안’을 받아 살펴보고 있다. 사진 허현덕
경찰청 관계자가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특별수사본부 설치 요구안’을 받아 살펴보고 있다. 사진 허현덕

정민구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복지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주 라파엘의집을 비롯한 전국 100인 이상 대형 거주시설 37곳에 대한 인권침해 전수조사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침해, 학대, 강제노역 등 시설범죄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다”라며 “이런 흐름에 맞춰 경찰도 사안의 엄중함을 알고 수사에 임해야 한다. 더 이상 거주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유야무야 되지 않도록 특수본을 꾸려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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