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질병과 함께 춤을’ 연재를 마무리하며 ①

두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춤을 추고 있다. 한 손은 서로를 맞잡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서로의 등을 감싸듯 안고 있다. 사진 언스플래쉬
두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춤을 추고 있다. 한 손은 서로를 맞잡고 있으며 다른 한 손은 서로의 등을 감싸듯 안고 있다. 사진 언스플래쉬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춤의 영어 표현인 댄스(dance)는 산스크리트어 탄하(tanha)가 어원이며, 이는 생명의 욕구를 의미한다. 그리고 질병이 바로 생명의 욕구다. 건강을 인체의 각 구성 요소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할 때, 그 균형과 조화를 잡기 위해 흔들리는 상태가 질병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바이러스를 내보내기 위해 몸은 열을 발생시키고, 평형대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흔들림이 필요하다. 건강과 생명 유지를 위해서는 질병이 필연이다.

춤을 춘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며 호흡을 맞추는 일이고,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아픈 몸을 수용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회복되지 않는 아픈 몸을 의학은 ‘실패한 몸’으로 보고, 자본주의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쓸모없는 몸’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그런 규정은 모두 건강중심세계에 의한 일방적 규정일 뿐이다. <다른몸들>의 모임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하고 있는 우리 연재는 아픈 몸의 시선으로 우리의 몸과 삶을 서사화함으로써, 재규정하는 작업이다.

모임 <질병과 함께 춤을>은 건강중심세계에서 ‘실패한 몸’들의 모임이고, 전문가 중심의 보건의료 운동에서 ‘자기 목소리가 없는 아픈 몸’들의 모임이다. 탈식민페미니스트 스피박은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라고 제기하며, 동시에 하위주체에 대한 ‘말 걸기’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모임 <질병과 함께 춤을>은 몇 해 전 언어가 없는 아픈 몸들에 ‘말 걸기’를 하기 위해 만든 장이었고, 구성원들은 그 안에서 연극과 책 읽기, 토론, 말하기, 글쓰기를 통해 조금씩 아픈 몸과 삶을 설명할 언어를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재해석하면서 내밀한 언어로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을 채워나갔다. 우리 연재는 아픈 몸들이 따돌림, 성폭력, ‘찌질한’ 빈곤, 변형된 몸, 무능한 몸, 죽이고 싶은 통증 등을 용기 있게 드러낸 사소하고 뜨거운 질병 세계의 언어였다. 그리고 연재를 통해 우리의 질병 세계의 언어가 사회의 다른 아픈 몸과 건강한 몸들에 또다시 ‘말 걸기’를 해나가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소수자 인권운동은 그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가시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소수자가 자신의 삶을 서사화한다는 것은 기존 세계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분열 된 삶을 재구성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이다. 그 맥락에서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하고 있는 질병서사 작업은 의료로서의 질병이 아닌 삶으로서의 질병이며, 아픈 몸을 복원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이었다. 이는 당연히 우리 사회 주류 질병서사인 질병을 '극복'하는 서사나, 질병이 '선물'처럼 가족이나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들어 주었다는 서사가 아니었다. 그런 주류서사들은 질병경험을 ‘승리’의 경험으로 만들거나, 긍정적으로 재배열하는 것을 중시한다. 그렇지 못한 질병경험은 쓸모없는 경험, 듣기 싫은 이야기에 불과해진다. 무엇보다 그러한 주류 서사들은 아픈 몸의 삶을 사회적으로 설명하기에 부적합하다. 질병을 극복하거나 인정하는 것 중심으로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질병이 발생한 사회구조적 맥락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주류 질병서사는 질병을 둘러싼 사회 정치적 문제를 은폐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한 사람이 커다란 종이에 싸인펜으로 글을 쓰고 있다. 다른 한 손은 종이 위에 올려져 있으며 그의 손목에는 파스가 붙어 있다. 몸으로 쓰는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 중에서. 사진 혜영
한 사람이 커다란 종이에 싸인펜으로 글을 쓰고 있다. 다른 한 손은 종이 위에 올려져 있으며 그의 손목에는 파스가 붙어 있다. 몸으로 쓰는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 중에서. 사진 혜영

- 저항적 질병서사

아무리 노력해도 건강을 회복하기 어려운 아픈 몸들에 필요한 것은 건강해지라는 요구보다는 질병권(疾病權: 잘/아플 수 있는 권리)이고, 이를 위해서는 질병과 아픈 몸을 사회정치적으로 해석해 내는 서사가 필요하다. 나는 이를 ‘저항적 질병서사’라고 부른다. 저항적 질병서사란, 질병이 사회적 결과라는 것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면서 아픈 몸과 삶을 재해석 하는 것이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해온 연재가 바로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이었다.

이를테면 연재에서 다리아는 요가를 하고 좋은 음식을 챙기는 삶을 살지 못해서 몸이 아프게 됐다며 자책감에 빠져있었던 삶에 대해,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을 통해 이렇게 재해석한다. 일터에서 긴 시간 노동을 하고 출퇴근에 왕복 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요가를 하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다고. 자신이 더 부지런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 과로와 서울의 높은 집값이 자신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며 원인을 사회적으로 진단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잘못된 생활습관과 게으름으로 인해 질병이 왔다며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부여하고, 아픈몸을 자책감에 시달리게 만드는 ‘질병의 개인화’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다리아에게 내면화되어 있던 자책감은 부당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변화했고, 자신의 질병경험을 사회적으로 말하는 것이 변화를 촉발 시키는 질병권 운동일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처럼 ‘저항적 질병서사’는 질병을 개인의 관리 실패가 아닌 사회적 구조의 결과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아픈 몸으로서 겪는 차별과 배제를 폭로하며, 아픈 몸이 건강 중심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유한 삶의 현실과 방식을 질병세계의 언어(논리)로 만들어가는 작업인 것이다. 아픈 몸에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은 치료만 필요로 하는 ‘환자’ 혹은 효율성 떨어지는 노동자라는 사회적 평가를 탈각하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결국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는 길 위에 놓이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질병은 삶의 배신이 아님’을 인식하고, 아픈 몸을 ‘극복’하지 않고도 인권이 보장받기 위해 필요한 것을 사회에 요구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보건학자들이 데이터를 가지고 사회적 결과로서의 질병을 설명했다면, 저항적 질병서사는 아픈 몸들이 자신의 삶을 통해 질병의 사회 구조적 맥락을 ‘증언’하는 것이다. 즉, 사회의 모순이 개인의 몸에 질병이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연구자의 데이터로서가 아니라, 아픈 몸이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고 재해석해내는 것이 저항적 질병서사다. 그리고 증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증명을 근거로 아파도 괜찮고 잘 아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을 통해 질병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삶으로 증언·증명함으로써 아픈 몸을 재해석하게 되고, 그 재해석을 근거로 변화를 요구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바로 질병권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 질병권(疾病權)과 함께 춤을

질병과 함께 춤을 춘다는 것은 질병과 리듬(rhythm)을 탄다는 것인데, 플라톤은 리듬을 ‘운동의 질서’라고 표현한 바 있다. 질병과 함께 춤을 추며 리듬을 탄다는 것은 건강중심세계가 규정한 질서에 맞추는 게 아니라, 아픈 몸에 맞는 질서인 질병권에 맞춰 삶을 재구성해 보는 일이다.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는 아프다는 것이 의구심에 놓이지 않는 사회, 병명으로 삶의 고통이 재단 당하지 않는 사회, 아픈 몸도 원하는 만큼의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질병이 빈곤과 불행이 아닌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인 사회, 아픈 몸이 기준이기 때문에 의존과 취약함이 인간의 보편으로 수용되는 사회, 의존과 취약함이 보편이기 때문에 돌봄을 주고받는 게 인간의 덕목·권리·의무·기쁨인 사회이다.

사회 곳곳의 아픈 몸들이 ‘쓸모없는 경험’, ‘듣기 싫은 소리’로 치부되는 질병 경험을 저항적 질병서사로 만듦으로써 우리와 함께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직 아프지 않은 이들도 우리의 저항적 질병서사를 목격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강박과 질병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길 바란다. 언젠가 떠나보낼 수 없는 질병이 당신에게 도착했을 때, 좌절과 자책감에 점유되지 않고, 질병과 스탭을 맞추려 애쓰며 세상을 두리번거릴 때 우리의 활동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을 시작으로, 질병과 춤을 추며 질병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느릿하지만 선명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코로나19를 건너는 저항적 질병서사 공모>

코로나19 초기부터 소위 기저질환자들이 더 취약하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올 한해 코로나19에 대한 엄청난 논의가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아픈 몸들이 코로나19를 어떻게 건너고 있는지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를 건너는 아픈 몸들을 목소리, 아픈 몸을 돌보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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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를 건너는 아픈 몸의 목소리' 

아픈 몸으로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경험과 의미인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픈 몸을 돌보는 이들의 이야기도 가능합니다.

○ 대상: 아픈 몸, 아픈 몸을 돌보는 이

○ 형식: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 분량: 1500자 이상

○ 마감: 12월 13일(일)

○ 접수: damoms2015@gmail.com

-원고 접수 시 이름, 휴대폰 번호, 간략한 자기소개 기재

○ 발표: 12월15일(화)

- 개별통지 및 다른몸들 페이스북페이지

○ 부상: 도서 및 문화상품권

○ 주최: 다른몸들

# 필자 소개

조한진희(반다). 젠더, 질병, 장애, 평화관련 운동을 한다. '다른몸들'에서 활동하고,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 『라피끄:팔레스타인과 나』를 썼고, 다큐 <나는 장애인이다>, <장차법 이제 다시 시작이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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