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질병과 함께 춤을’ 연재를 마무리하며 ②

빨간색 물감이 묻어 있는 손바닥들이 하트 모양으로 모여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빨간색 물감이 묻어 있는 손바닥들이 하트 모양으로 모여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질병은 삶을 가로지른다. 불현듯 삶을 파고든 질병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혼돈, 통증, 성찰 그리고 가끔은 기쁨을 만나는 일이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질병과 함께 춤을> 연재를 통해 아픈 몸과 산다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마주했다. 특히 한국처럼 건강에 대한 강박과 열망이 가득한 건강중심사회에서, ‘아픈 몸’은 생의학적 고통 위에 차별과 편견을 통한 사회적 고통까지 경험한다. 구성원들은 원고를 함께 쓰며 질병이 남긴 상처와 고통의 이유를 질문하고, 그 고통의 무늬를 개인화하지 않으며 사회적 요소와 유기적으로 읽어 내고자 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진행한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은 우리가 아픈 게 잘못 살아온 결과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었으며, 우리 사회가 아픈 몸을 어떻게 차별하고 배제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증언이기도 했다. 이는 끊임없이 질병과 건강을 개인적인 것으로 탈정치화시키는 사회를 향한 우리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연재를 통해 아픈 몸으로 산다는 의미를 각자의 언어로 정리해 내면서, 우리는 ‘다른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지난 한 해 동안 각자에게 이 모임과 활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혜정님이 말했다. “이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아픈 몸을 인정할 수 없어서 헤맸던 시간들로부터. 늘 피해자와 약자로만 나를 규정해 왔던 순간들로부터. 살아 있지만, 살 수 없었던 일상들로부터. 그곳으로부터 걸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제야 비로소 삶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내 자신이 입체적으로 감각돼요.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함께 조금 울었다.

견딜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스스로의 몸을 살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날들, 자신의 질병을 인정할 수 없어서 부정하고 도망치며 살았던 순간들, 회복 불가능한 질병에 대해 끊임없이 회복과 희망을 요구받으며 좌절하게 됐던 시간들.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소외시키고 배제시켰던 자신의 몸과 삶. 우리 몸의 생의학적 상태가 완치되지는 않겠지만, 건강중심사회에서 사회적 고통에 눌려 있던 삶으로부터 서서히 시작된 회복. 회복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바깥에서 위태롭게 서성이다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안전해지는 느낌, 삶이 선명하고 짙어지는 느낌, 계속 삐걱거리며 조각나고 어긋나 있는 것 같던 자신이 통합되는 느낌일 것이다. 온전한 자신을 감각하는 기쁨.

질병이 우리 삶을 낚아채서 세차게 내동댕이치는 것 같지만, 사실 상당 부분은 생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우리 삶을 뒤흔든다는 것을 좀 더 선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와 낙인은 아픈 몸에게도 내면화되어 있음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저항적 질병서사 작업을 통해, 질병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파고들수록 내면화된 낙인의 허구성을 만났던 순간의 환희. ‘정말이지, 내가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었어!’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확인하며, 세상 그 누구도 더이상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됐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진행한 <질병과 함께 춤을> 연재 글을 책으로 묶어 더 대중적으로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기 시작한 회복을 다른 아픈 몸들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며, 건강중심사회를 가로지르는 작은 파열음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 아픈 몸들의 좌표가 될 ‘아픈 몸 선언문’

그리고 1년 전부터 조금씩 작업해온 <아픈 몸 선언문> 초안을 최근 완성했다. 알다시피 선언문이라는 것은 소수자의 현실을 말하는 동시에 지향하는 이상적 좌표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아픈 몸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지향을 가지고 변화를 추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거칠고 상징적이더라도 이정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던 <아픈 몸 선언문>에 대해, 1년 전부터 모임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공동으로 조금씩 작업하기 시작했다. 아픈 몸과 살며 고통스럽게 진동했던 순간과 아파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 담아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6명의 구성원이 고민한 내용을 모은 초안이 나왔고, 우리는 이 작업을 다양한 대중들에게도 개방하기로 했다. 우리의 초안을 보고, 다양한 아픈 몸과 아플 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덧대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래 아픈 몸 선언문 초안을 공개하며, 하단의 링크를 통해 여러분의 의견을 적을 수 있도록 했다. <아픈 몸 선언문>이라는 지도를 가지고 우리 사회에 질병권(잘/아플권리)이 보장되고,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은 사회, 질병이 수치와 낙인이 아닌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 길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

▷ <아픈 몸 선언문> 바로 가기

# 필자 소개

조한진희(반다). 젠더, 질병, 장애, 평화관련 운동을 한다. '다른몸들'에서 활동하고, 책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 『라피끄:팔레스타인과 나』를 썼고, 다큐 <나는 장애인이다>, <장차법 이제 다시 시작이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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