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활동지원 필요한 와상장애인, 코로나19 확진되자 나 홀로 격리
아내가 방호복 입고 나섰지만, 병원 가면 활동지원 없어 “고문받으러 가는 심정” 
병원 입원한 장애인 확진자에겐 “신경안정제 주입·손발 묶을 것” 엄포
K-방역 내세우면서 장애인 지원 대책 마련 안 해… ‘허울뿐인 매뉴얼’

7일, 오후 3시  장추련 등이 인권위 앞에서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7일, 오후 3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인권위 앞에서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코로나19로 장애인 확진자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장애계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17일, 오후 3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코로나19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긴급구제를 인권위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천 명에 육박하고 있는 현재, 장애인 확진자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지만, 장애를 고려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긴급구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근육(지체)장애인인 정영만 씨는 평소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을 필요로 하는 중증 와상장애인이다. 지난 16일, 정 씨는 코로나19 선제적 조치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가, 예상치 못하게 확진 판정을 받게 됐다. 그러나 보건당국으로부터 병상이 부족한 상황에서 와상장애인 입원 시 생활지원이 가능한 인력배치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더구나 활동지원사와 가족 등 주변인들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어버린 바람에 홀로 집안에 방치됐다. 

사방팔방으로 방법을 찾던 중, 정 씨는 지난 4월 대구시 사회서비스원이 장애인 확진자에게 긴급지원서비스를 제공한 선례를 듣고,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에 긴급 활동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음성판정을 받은 뒤 2주간 자가격리를 하는 장애인에게만 지원하며, 확진자에 대한 지침이 없어 활동지원을 배치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보건당국에도 강하게 문제제기했지만, 결국 그가 받은 것은 방호복뿐이다. 현재 그의 아내가 방호복을 입고서 자택에서 정 씨를 지원하며 입원 가능한 병상만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병상이 나오면 문제는 해결되는 걸까?

지난 16일, 확진 판정을 받은 정영만 씨의 자택에서 배우자가 방호복을 입고 정 씨를 침대로 옮기기 위해 리프트에 슬링을 걸고 있다. 정영만 씨 제공. 
지난 16일, 확진 판정을 받은 정영만 씨의 자택에서 배우자가 방호복을 입고 정 씨를 침대로 옮기기 위해 리프트에 슬링을 걸고 있다. 정영만 씨 제공. 

홀로 방치된 와상장애인 확진자, 병원에 입원 묻자 “활동지원 없이 기저귀 차야”

정 씨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자, ㅅ의료원에서는 17일 오전 정 씨의 장애정도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전화를 해왔다. 이에 정 씨가 병원에서는 신체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 차 묻자, 관계자는 ‘가족과 같이 확진되면 병원에 들어와서 입원할 수 있지만, 확진자가 아닌 사람이 들어와 신체보조 서비스를 지원할 수는 없다. 지금 병원에서는 기저귀를 차고 있는 사람이 많다. 기저귀에 대한 신변처리 외에 다른 서비스는 받을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 와상장애인이 아무런 활동지원을 받지 못하면 욕창 등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정 씨는 비마이너와의 전화통화에서 “어젯밤 아내가 오기 전까지 활동지원이 없어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소변통에 해결해야 했다”라며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홀로 양치질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완치될 때까지 약 14일 동안 입원해야 하는데, 평소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이가 다 썩게 될 것이다. 치아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위생관리를 못 해, 코로나 치료하려다가 엉뚱한 병만 더 얻게 될 수 있다”라며 분노했다. 

또한 정 씨는 기자회견에서 전화연결을 통해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활동지원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는 최중증장애인의 활동지원 공백을 메꾸는 것을 우선으로, 안정적인 활동지원 일자리 제공을 목적으로 2018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 활동지원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충격적이다”라며 “병원에 가면 그냥 누워있어야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결국 저 혼자 병원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무증상이고 단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활동지원이 안된다고 하니, 마치 고문받으러 들어가는 느낌이다”라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정 씨는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촉구했다. 

활동지원 없이 입원한 장애인에게 ‘신경안정제 투입·팔다리 묶을 수밖에’

정 씨와 유사한 사례는 또 있었다. 지난 14일, 포항시에 거주하는 중증 뇌병변장애인 김 아무개 씨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뇌병변 장애로 인해 왼쪽 팔과 다리에 장애가 있어 홀로 균형을 잡고 걷기 어려우며, 혈관성치매로 인지장애를 동반한 중증·중복장애인이다. 

김 씨는 포항시에 입원 가능한 병상이 없어서 안동의 의료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이송 과정 중 아무런 인력지원 없이 홀로 이동해야만 했다. 이에 김 씨의 남편은 ‘김 씨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활동지원사가 꼭 붙어야 한다’라고 포항북구보건소 직원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김 씨는 현재 활동지원을 받지 못한 채 3인실 병상에 입원 중이다. 김 씨가 홀로 신변 처리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자, 같은 병실을 이용 중인 확진환자들이 김 씨를 번갈아 가며 지원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의료원에서는 오히려 김 씨의 남편에게 “(김 씨가) 혼자서 신변처리가 불가하고, 인지장애로 사람이 없을 때 복도에 나가서 CCTV가 없었다면 큰 사고가 났을 수도 있었다”라며 “이렇게 통제가 안 된다면 인력 부족으로 인해 신경안정제를 투입하거나 팔다리를 묶는 수밖에 없다”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긴급구제 진정에 참여한 김 씨의 남편은 기자회견에서 전화 연결을 통해 “포항시와 경상북도에 아내의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 답했다. 아내는 걷는 것도 혼자 못하고 약봉지 하나 뜯지 못한다”라며 “장애인이 코로나19에 걸리면 매뉴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확인해보니 매뉴얼이 전혀 없고 비장애인과 똑같더라. 제가 자가격리 중인 상황에 아내가 병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몰라 답답해 미치겠다”라고 호소했다. 현재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장애인 확진자 발생과 관련해 아무런 지원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의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코로나19를 중심으로)' 중 일부. 돌봄 공백 방지 주요 대상은 일상 및 사회생활 제약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등 일상생활 지원서비스 이용 장애인이다. 대상별 고려사항에 추가적인 급여 제공, 제공인력 풀 확대 등 장애인당사자 또는 돌봄제공자 격리상황에도 중단없는 서비스 제공 지원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예산 책임 여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복지부의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코로나19를 중심으로)' 중 일부. 돌봄 공백 방지 주요 대상은 일상 및 사회생활 제약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등 일상생활 지원서비스 이용 장애인이다. 대상별 고려사항에 추가적인 급여 제공, 제공인력 풀 확대 등 장애인당사자 또는 돌봄제공자 격리상황에도 중단없는 서비스 제공 지원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예산 책임 여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장애계 요구 반영되지 않은 허술한 매뉴얼, 우려는 현실로… 

지난 2월, 한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했을 때 첫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 폐쇄정신병동에 있던 장애인이었다. 이어서 청도대남병원에서 집단감염·사망 사태가 발생하자, 장애계는 정부와 지자체에 장애인·가족이 자가격리 또는 확진 판정을 받을 때를 대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장애계의 요구는 △장애인 확진자 우선 입원 가능한 병상 확보 △장애인 확진자 병상 내 생활지원인 배치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생활치료실 확보 등이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약 10개월이 지난 지금, 이른바 ‘K-방역’을 자랑하는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는 지난 6월,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코로나19를 중심으로)’을 만들었지만, 매뉴얼에는 장애계가 요구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해당 매뉴얼에는 장애인 확진자 발생 시 병원 격리 등 우선조치를 취하고 생활지원 병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내용은 있으나, 장애인 확진자에게 활동·생활지원을 국가와 지자체가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산 책임을 비롯한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있다. 더군다나 해당 매뉴얼은 자가격리 중인 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져, 자가격리가 아닌 확진된 장애인에 대한 조치가 충분치 않다. 이 때문인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도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알려진 장애인 확진자의 상황을 되짚어볼 때,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진정인 김 씨의 경우, 매뉴얼대로라면 혈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으로, 확진 시 병원에 우선적으로 입원해 생활지원을 받아야 했지만,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매뉴얼에는 활동지원 공백이 없도록 격리상황에도 대체인력을 확보해 중단 없는 서비스 제공 지원이 명시되어 있지만, 이 또한 두 진정인에게 이뤄지지 않았다. 

임소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복지부에 매뉴얼 수정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임 사무총장은 “복지부 매뉴얼에는 장애인 자가격리자에 대한 내용만 있는데, 장애인 확진자의 경우 활동지원서비스 수급, 비수급 여부와 관계없이 24시간 지원해야 하는 내용도 추가해야 한다”라며 “또한 매뉴얼에는 자가격리 중인 활동지원 수급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24시간을, 활동지원 비수급 장애인들은 긴급지원으로만 월 120시간 제공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활동지원 비수급 장애인에게도 활동지원 24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가족이 자가격리자가 되는 경우, 함께 사는 장애인도 자가격리 된다. 이때에도 장애인에 대한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장애계는 피진정인으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서정협 서울특별시 시장 권한대행,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이강덕 포항시장을 지목하고, 코로나19 상황에서 장애 유형에 따른 지원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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