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해’가 된 2020년, 감염의 일상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기
2020년을 읽어낼 네 가지 키워드
- 감염의 일상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기
대구에서 코로나 1차 대유행이 번지던 2월 20일, 청도대남병원 폐쇄 정신병동에서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그에 관한 기록은 이렇습니다.
“A 씨는 20년 이상 시설에 수용되어 있었으며 최근 몸무게는 42킬로에 불과했다.”
곧이어 그곳에 입원해있던 104명의 정신장애인 중 102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총 7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첫 사망자가 정신병동에서 발생했다는 것, 사망 당시 그의 몸 상태, 시설 내 집단감염과 연쇄살인처럼 일어난 잇따른 죽음까지. 그들의 죽음은 우리사회가 이제까지 은폐했던 ‘시설 수용’ 문제를 또렷이 드러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해외에서도 코로나19 사망자 절반이 집단 거주시설에서 일어났습니다. 한국 장애계는 해외 장애계와 연대하여 ‘긴급 탈시설’이 코로나 대책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시설 바깥도 결코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같은 시기, 대구 장애계는 장애인 감염 대책 마련을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무대책 속에서 결국 2월 29일, 대구에 사는 발달장애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의 기본값이 된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요? 12월 16일, 중증 근육장애인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병상이 없어 자택에 홀로 방치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중증장애인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 대책은 없으며, 중증장애인 확진자가 코로나 치료를 위해 입원한 경우 생활지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생활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양치도 할 수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으며, 잠을 잘 때 체위 변경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즉 병원 내에서 방치된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 코로나로 멈춘 사회, 선명히 드러난 문제들
코로나로 우리사회 곳곳이 멈춰 섰습니다. 학교 수업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는데, 발달장애학생은 온라인 수업 참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복지관과 같은 복지시설도 기약 없는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그로 인해 기존에 민간 복지시설과 분담했던 돌봄이 온전히 가정 안으로 들어오면서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돌봄 부담은 가중됐습니다. 발달장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그 자신도 목숨을 끊는 참담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장애인만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감염을 이유로 서울역 대합실 등 공공장소 중심으로 신속한 폐쇄가 이뤄지면서 홈리스들은 머물 곳을 잃었고, 민간급식 지원이 중단되면서 ‘한 끼 식사’를 잃었습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가는 공공병원은 ‘코로나 전담병원’이 되면서 가난한 쪽방 주민들은 치료받을 곳을 잃었습니다. 쪽방에서는 확진자가 발생하여 그와 밀접촉한 이들에게 자가격리를 통보했지만 쪽방에서 자가격리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방역당국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코로나로 인해 발생했다기보다 ‘더 선명히 드러났다’는 것이 더욱 적절합니다. 수용시설, 발달장애인의 교육과 돌봄, 홈리스의 머물 곳과 공공급식, 쪽방 환경 문제 등 코로나로 인해 짙게 드러난 문제 중 사실 새로운 문제는 없었습니다.
- 한 발 진보 : 장애인 노동권, 65세 활동지원 연령제한, 2기 과거사위 출범
코로나로 장애계도 대규모 집회나 기자회견 등을 할 수 없어 주춤했지만, 그럼에도 의미 있는 변화들이 있습니다. 올해 장애계에서 눈여겨볼 변화를 꼽는다면, 장애인 노동과 관련해 지난 7월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는 장애인운동의 끈질긴 요구로 만들어진 일자리인데요, 지금껏 노동시장에 진입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탈시설 최중증장애인들이 장애인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 인식개선활동을 통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일자리입니다. 이는 재활 중심의 장애인 노동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로 기존에 시혜적인 복지일자리 중심의 장애인노동 정책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경기도에서도 시작한다고 하니, 빠른 시일 내에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시행하길 기대해봅니다.
또 하나는 ‘활동지원 만 65세 연령제한’과 관련한 변화입니다. 장애계는 수년 전부터 ‘활동지원 연령제한 폐지’ 투쟁에 집중했는데요, 올해서야 그 투쟁의 수확을 조금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으로 내년부터 복지부는 만 65세가 되어 장기요양서비스로 넘어간 이들 중 활동지원시간이 대폭 삭감된 장애인들에게 서비스 시간을 보충해줄 예정입니다. 또한, 지난 23일에는 헌법재판소가 ‘만 65세 미만의 노인성 질환을 가진 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은 이용 못 하고 장기요양만 이용할 수 있는 현행 조항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도 했죠.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올해 또 한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끈질긴 투쟁과 시민사회계의 노력으로 20대 국회 막바지인 지난 5월, 과거사법 개정안이 극적으로 통과된 일 또한 ‘한 발 전진’입니다. 조사위원 수와 조사기간이 과거보다 축소되었다는 깊은 안타까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당사자들의 투쟁으로 2기 과거사위가 시작된다는 값진 의미가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에 관한 진상규명이 속히 이뤄져서 피해자들의 원통함이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염원합니다. 또한, 아직 확실시되진 않았으나 김영삼 정부 시절 의문사한 이덕인 열사에 대한 진실도 규명되길 바랍니다.
- ‘수용시설의 역사’에 마침표 찍고,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조건 만들기
비마이너가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문제를 줄곧 다루었던 이유는 장애인거주시설의 근본 문제인 ‘수용시설 문제’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문제가 비마이너에서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입니다. 올해만 해도 서울 루디아의 집, 전북 무주하은의 집 등의 ‘문제시설’이 언론에 오르내렸고, 미신고시설 평택 평강타운에선 거주인이 맞아 죽었습니다. 시설이 존재하는 한 문제는 계속 발생합니다.
지난 10일, 국회의원 68명의 공동발의로 탈시설지원법이 발의되었습니다. 이 법은 10년 내 모든 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합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평범한 일상이 장애인에겐 ‘혁명’과도 같은 일인데요, 이 법이 과연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거대한 시설 권력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릅니다.
사실 장애계는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투쟁을 지난 10여 년간 해왔습니다. 작년 7월 시작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도 그러한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삐걱거리는 부분도 많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에서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자, 화성시에서는 그에 따라 ‘모든 장애인이 시 추가 시간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중증장애인에게 지원하던 ‘활동지원 24시간’을 폐지하고 ‘모든 장애인에게 골고루 월 30시간씩 지원하겠다’는 다소 엉뚱한 대책을 내놓아 장애계의 커다란 반발을 샀습니다. 다행히 장애계의 거센 항의로 이 개악안은 곧 철회됐죠.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 후 새로 도입된 종합조사표로 판정한 결과, 활동지원 갱신자 5명 중 1명은 시간이 삭감되는 것으로 드러났고 복지부는 임시방편으로 3년간은 기존 시간을 보전해주겠다고 했지만 이후 대책은 없습니다. 또한, 장애등급제 폐지 후 월 최대시간(480시간)을 받는 사람이 없자, 복지부는 활동지원시간을 산출하는 수식만을 ‘살짝’ 손 봐서 최대시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오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애초에 ‘사지마비에 중증의 정신적 장애가 있으면서 사회활동을 해야’ 월 최대시간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제도의 근본적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않고서요.
게다가 올해 말부터는 이동지원에서의 장애등급제를 폐지했는데, 정부는 예산을 이유로 장애인 주차표지와 장애인콜택시에서만 기존보다 5%가량 이용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지원하라’고 촉구해온 장애계의 목소리는 깡그리 무시한 채, 예산 맞춤식 행정을 몰아붙이는 복지부의 태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습니다.
- 코로나만 끝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
이러한 일상적 취재와 함께 비마이너는 올해 여러 가지 기획연재를 시도했습니다. 비마이너가 자체적으로 꾸린 연재도 있고, 외부에서 함께하자고 먼저 손 내밀어준 연재도 있습니다.
질병권 운동을 하는 ‘다른몸들’과 함께 한 ‘질병과 함께 춤을’(4월~현재)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면서 ‘건강중심사회’에 낯선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다이애나랩’과 함께 꾸린 ‘차별없는 가게’(10월~12월) 연재를 통해서는 기존에 ‘휠체어 접근권’으로만 한정되었던 가게 이용에 관한 이야기를 트랜스젠더, 이주민, 영유아, 청각장애인, 청소년 등 다양한 주체로 확장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2020년 1017빈곤철폐의날 투쟁 조직위원회’와 함께한 ‘코로나19, 싸우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다’(10월~12월)를 통해서는 코로나 시기에도 여전히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마스크’로 상징되는 이 시간이 단지 마스크를 벗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비마이너가 기획하고 준비한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8월~현재)가 있습니다. 작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는데요, 올해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새해부터 낙태죄는 효력을 잃게 됩니다. 그 시기에 맞춰 비마이너는 장애여성공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와 함께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는 기획연재를 비롯해 좌담회, 토론회까지, 올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향후 낙태죄 논의에서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이 충분히 고려되길 기대합니다.
- 2020년을 읽어낼 네 가지 키워드
이제 코로나로 기억될 2020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비마이너가 주요하게 다루었던 주제를 중심으로 지난 1년을 돌아보려 합니다. 올해 장애인 사망 사건으로 또다시 드러난 미신고시설의 문제(허현덕 기자), 코로나의 상징이 된 ‘청도대남병원 사건’ 이후,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이가연 기자)를 추적합니다. 이와 함께 올해 2차 기초생활보장종합계획에 끝내 실리지 못한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하민지 기자)에 관한 이야기와 서울시가 범죄시설을 폐쇄하고 민관합동으로 거주장애인에 대한 탈시설지원계획을 수립한 긍정적 모델로 기억될 루디아의집의 ‘절반의 승리’에 대해 현장에서 이를 지원한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직접 전합니다.
정부는 ‘거리두기’ 방침을 고수하며 ‘모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대면의 시대, 비마이너도 현장에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어려운 물음 앞에 놓였습니다.
지구의 안녕과 나의 안녕이 연결되어 있음을 통렬히 깨닫는 한 해였습니다. 이 화면 넘어 계신 당신께도 안녕을 전합니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궁리하며, 고된 한 해를 마무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