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과거사 때 ‘추가 조사 필요하다’ 했지만 과거사위 해산으로 종결
정근식 위원장 “2기 과거사위 선결과제,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11월, 인천 아암도에서 인천시와 연수구청의 노점 강제 철거에 맞서 싸우다 의문사한 장애빈민운동가 이덕인 열사. 그 죽음의 진상은 규명될 수 있을까.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애써온 시민사회단체와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는 이달 업무를 시작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의 정근식 과거사위 위원장과 16일 오후 4시, 과거사위 대회의실에서 면담을 가졌다. 정 위원장은 이날 면담에서 “2기 과거사위에서 당연히 선결과제로 조사를 추진하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 김영삼 정부 당시, 영안실 벽 부수고 열사 시신 탈취해가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실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이덕인공대위)는 “1995년 11월에 일어난 아암도 노점 강제철거 사건과 이덕인 의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조사해 달라”고 과거사위에 요구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당시 경찰 병력이 열사 시신이 안치된 인천 길병원 영안실 벽을 깨부수고 들어와 시신을 탈취해 강제로 부검했다. 이 문제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2002년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 직속 기구였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 열사가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사망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정 위원장은 이를 언급하며 “의문사위원회의 결정을 검토해봐야겠지만, 이 결정에 근거해 진실조사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덕인공대위는 “장애빈민의 생존권 요구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의문제로 다뤄질 수 있도록 이 열사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로부터 배·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도 촉구했다. 이 열사의 아버지 이기주 씨는 “인천시장이 (강제철거로) 이덕인을 죽여놓고선 책임지지 않았다. 아직까지 명예회복을 못하고 25년이나 흘렀다”고 호소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민주화운동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당시 인천시와 연수구청이 아암도 노점을 폭력적으로 강제철거한 것에 관해 “노점을 단속한 지자체의 고유 사무”라고 해석했다. 즉, 이 열사의 죽음은 지자체 사무와 관련 있는 것이지 이 열사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사망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이 같은 결정 때문에 이 열사의 명예회복과 배·보상심의 신청은 기각됐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이었던 2009년, 1기 과거사위는 이 열사 의문사 사건에 관해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한 사망인지에 대한 조사는 미진하므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김대중 정권과는 다른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듬해 12월에 과거사위가 해산돼 결국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못했다.
- 정 위원장 “의문사, 과거사 진실규명에서 중요… 노력하겠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민주화운동 보상 심의 문제는 본 위원회 소관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권고 등의 결정은 추진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위원장인 본인은 조사할 의지가 있지만 아직 위원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았고 정치적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겪게 될지 확답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의문사 사건은 ‘과거사 진실규명’에서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1기 과거사위에서 조사 개시 결정을 했으나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2기 과거사위에서 선결과제로 최대한 빨리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사법 2조에는 과거사위가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의 사건을 다룬다고 나와 있다. 통상적으로 권위주의 통치시기를 김영삼 정부 이전으로 해석하기도 하나, 관점에 따라서는 더 너른 해석도 가능하다.
정 위원장도 이러한 포괄적 해석에 동의하며 “권위주의 통치시기를 1993년 2월 이전으로 해석하는데 이 시기 구분 또한 쟁점이다. 하지만 권위주의 통치 관행이 권위주의 통치시기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기 문제, 노점상 장애인 문제, 사회적 연대 문제 등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륜 이덕인공대위 간사는 1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2기 과거사위에서 이덕인 열사 의문사 사건이 제대로 다뤄질지 우려가 되긴 하나, 정 위원장이 의문사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조속히 조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의지를 밝혀서 희망적이다. 진상이 빨리 규명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