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 교회 지원했지만 모두 서류전형 탈락
이 중 6곳이 밝힌 사유는 “장애 있어서”
장추련 “명백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인권위에 진정할 것”

자 퇴 원 서

대학원에 들어와서 느낀 것은 장애인은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사역할 수 있는 교회가 없어서 나중에 목사안수를 받아도 과연 제가 사역할 수 있을지에 관해 걱정과 근심이 들었습니다.

대학원 교수님들에게 사역할 수 있는 교회를 알아봐 달라고 요청을 해도 “기다려라”라는 답변만 돌아오고 변하는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알던 목사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목사들을 보고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으로서 목사가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제도 때문이든 암묵적인 동의 때문이든 간에 회의감이 들어서 더는 신학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만두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자퇴서를 제출합니다.

지난달 11일, 유진우 씨(27세)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4학기 과정 중 세 번째 학기 종강 2주 전에 자퇴서를 내고 17년간 품어온 목사의 꿈을 접었다. 서울에 있던 자취방도 모두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내려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예정이다.

유 씨가 신학대학원을 자퇴한 이유는 전도사가 되기 위해 지원서를 낸 모든 교회 채용의 서류전형 단계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유진우 씨가 휠체어에 앉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다.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했다. ⓒ유진우
유진우 씨가 휠체어에 앉아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다.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했다. ⓒ유진우

- ‘예수 같은 목사’ 꿈꿨는데 돌아온 답은 ‘장애 있어서 안 된다’

유 씨는 중증뇌병변장애인(기존 2급)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이 목사였다. 그는 ‘예수 같은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수는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그들에게 공감했던 분이에요.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이 누군지 생각하다가 저와 같은 장애인은 사회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목사가 돼서 예수처럼 장애인과 함께 살고, 먹고, 마시자고 다짐했어요. 장애인의 고통이 곧 제 고통이니까요. 사회로부터 장애인을 분리한 국가체제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을 보면서 더욱 간절하게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19년 3월에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유 씨가 한신대를 선택한 이유는 한신대가 속해 있는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아래 기장)가 개신교 교단 중 가장 진보적이라 불리기 때문이다. 유 씨는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단이라 한신대에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장 교단의 교회는 유 씨의 바람과 달랐다. 유 씨는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10개월간 12개 교회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전도사로 근무하기 위해서다. 전도사는 일종의 인턴 과정이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2년간 전도사로 근무하는 목사수련 과정을 거쳐야 목사고시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유 씨는 신학대학원 재학 중이었지만 미리 전도사 경험을 쌓고 타지에서의 생활비를 벌고자 12개 교회의 문을 두드렸다. 지원 전에 교회를 사전답사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휠체어 접근성을 확인했다. 모든 교회 지원 시 장애인 당사자라는 걸 알렸다.

12개 중 6개 교회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유 씨를 서류전형에서 탈락시켰다. 유 씨가 지난달 14일, 비마이너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탈락 사유는 아래와 같다.

△교회 화장실에 턱이 있어서

△운전도 하고 많이 움직여야 하는데 유 씨는 휠체어 이용자라 그럴 수 없어서

△유 씨의 집에서 교회까지 거리가 멀어 장애 특성상 출퇴근하기 어렵고 교회에 유 씨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교회에 축구부가 있는데 유 씨는 축구부를 지도할 수 없어서

△교회에 엘리베이터는 있지만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교회 구조상 휠체어가 들어올 수 없어서

나머지 교회 중 세 곳은 정확한 이유를 알리지 않고 유 씨를 서류전형에서 떨어뜨렸다. 다른 한 곳은 “담임목사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보고하고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연락이 오지 않았다. 두 곳은 ‘유 씨의 경력이 부족하다’, ‘교회가 재건축 중이다’라는 이유를 고지했다.

유 씨는 2019년 한 해 동안 탈락을 경험한 이후 2020년에는 어떤 교회에도 지원하지 않았다. ‘지원해 봤자 어차피 안 되겠지’라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유 씨는 “자퇴하겠다고 마음먹은 걸 다시 바꿀 생각은 없다. 장애인 당사자가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된다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꿈은 공무원이 아니라 목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요원해 보인다”고 말했다.

기장 교단 소속 이병하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이병하 목사 오른편에는 설교 본문이 PPT 화면에 띄워져 있다. ⓒ이병하
기장 교단 소속 이병하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이병하 목사 오른편에는 설교 본문이 PPT 화면에 띄워져 있다. ⓒ이병하

- 전도사·목사 채용 과정에서 ‘장애’ 이유로 한 탈락은 장차법 위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는 장애인 고용에 관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1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직원을 채용할 때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 또한 11조에는 장애인이 직무 관련 훈련을 받거나 시험을 볼 때 사용자가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교회는 전도사나 목사를 채용할 때 장애를 이유로 탈락시키면 안 된다. 또한 장애인이 목사수련 과정인 전도사 근무를 원활히 하고 목사고시에도 잘 응시할 수 있도록 여러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휠체어가 지나가지 못하는 문턱도 교회에 없어야 하고 목사고시를 진행할 때도 장애 유형에 따른 다양한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 신학생이 목사수련과 목사고시 과정에서 문제를 겪은 건 유진우 씨가 처음이 아니다. 작년 목사고시에 합격한 후 안수를 받은 이병하 목사는 2019년에 처음 응시한 목사고시에서 탈락했다. 뇌병변장애인인 이 목사는 음성언어로 소통할 수 있지만 발음이 정확하진 않아서 PPT로 설교문을 띄워놓고 설교한다.

이 목사가 2019년 6월에 진행된 목사고시에서 설교 시험을 볼 당시, 고시위원회는 이 목사에게 아무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 목사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설교해야 했다. 한정적인 조건에서 준비한 설교를 했지만 고시위원회는 이 목사의 언어 전달력과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합격시켰다. 교단 헌법, 성경, 면접, 설교 작성 등 다른 과목은 모두 통과했지만 오직 ‘설교 실연’ 과목에서만 과락 판정을 받았다.

이 목사도 유진우 씨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전임 전도사 일자리를 구할 때 유진우 씨보다 더 많은 교회에 서류를 넣어봤으나 아무 데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장애인이라고 사역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1년을 쉬었다. 한 목사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셔서 거기서 전도사로 2년 근무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목사를 꿈꾸는 장애인 신학생은 이 목사처럼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선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유 씨처럼 꿈을 포기하게 된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사무국장은 이 같은 사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건 명백한 차별이다. 신학 공부를 했는데도 목사가 될 기회를 아예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교회는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자체를 제공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포용한다는 종교기관에서 장애인 전도사를 고용할 수 없다고 하는 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신학생이 목사가 되는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교단은 목사라는 직업을 가질 때 누구도 차별받지 않도록 절차를 만들어놔야 한다. 이게 종교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유진우 씨가 18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참여한 모습. ⓒ유진우
유진우 씨가 18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 참여한 모습. ⓒ유진우

- ‘신학교에서도 장애 이유로 차별당했다’, 인권위 진정 예고

김 사무국장의 말처럼 목사수련과 목사고시를 주관하는 곳은 기장 교단이다. 교단의 원칙을 명시한 내부 지침 ‘교단 헌법’에는 목사후보생의 자격과 수련 과정에 대한 절차는 적혀 있지만 이 과정 중 장애인 등 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는 지침은 없었다.

헌법 개정은 매년 9월 열리는 총회 때 이뤄진다. 이병하 목사 사례가 2019년 6월에 일어났지만 2019~2020년 9월 총회 때 장애인 차별 금지에 관한 지침이 헌법에 추가되지는 않았다.

교단 관계자는 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유진우 씨 사례를 1~2주 전에 듣고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매년 장애인 학생이 고시에 응시한다. 장애인 응시생을 위한 교단 헌법 개정 등은 고시위원회에서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법이란 게 단순하게 뚝딱 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계속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진우 씨와 이병하 목사는 학교와 교단 모두 문제라고 공통으로 지적했다. 이 목사는 “목사후보생을 양성하는 학교가 장애인을 뽑았다면 그가 훈련을 잘하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학교가 교회와 장애인 학생을 이어줘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그 역할을 못한다”고 말했다. 유 씨 또한 “학교 커리큘럼 중 목회 실습이란 게 있다. 나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목회 실습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학습권을 침해당했다”고 토로했다.

교단에 관해 이 목사는 “장애인 목회자가 목회할 수 있도록 교단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진보적이라고 하는 기장 교단이 장애인에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 씨는 현재 교단이 장애인식개선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인권교육조차 받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장애인복지법 25조에 따르면 교육기관이나 공공단체 등은 매년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의무로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단이나 교회는 교육 의무 대상이 아니다.

유 씨는 “교회 내에서 장애인이 소외돼 있다. 어떤 교회에는 장애인만 모아서 ‘사랑반’이란 걸 만들어 따로 예배드리게 한다. 탈시설하고 통합교육하는 등 지역사회 통합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교회 내에서 장애인을 분리하고 있다. 차별을 올바르게 잡으려면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기장 교단 내 목사 중 소수 빼고는 인권 지식이나 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유진우 씨와 이병하 목사 모두 목사를 꿈꾸는 신학생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장애인이 목사가 될 수 없다면 장애인 교인은 교회에 다닐 수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교단은 교회 전반의 장애인 접근성, 장애인 노동자가 일하는 환경 문제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진우 씨는 장추련과 함께 교단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유 씨는 “지금도 목사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언제나 장애인이 있다. 장애인 신학생이 안전하게 목사를 꿈꿀 수 있는 학교와 교단을 만들고 싶다. 이래야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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