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으로 읽는 세상
사회 변화를 담보하는 아동정책이 필요한 때

정치권에서도 양천 아동학대 사건 이후 '#정인아_미안해' 해시태그 물결에 동참했다. 왼쪽부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해시태그 웹자보. 사진 출처 국민의힘 홈페이지,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정치권에서도 양천 아동학대 사건 이후 '#정인아_미안해' 해시태그 물결에 동참했다. 왼쪽부터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해시태그 웹자보. 사진 출처 국민의힘 홈페이지,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정인이 사건’으로 불리는 양천 아동학대 사건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말의 의미와 무게를 생각하게 된다. ‘#정인아_미안해’와 ‘#우리가_바꿀게’ 해시태그 물결에 담긴 애도와 다짐은 피해아동을 입양하고 학대한 양부모와 세 번의 기회를 놓쳐버린 경찰 대응에 대한 격렬한 비판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사법적 처벌과 학대피해아동에 대한 분리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다. 국회와 정부의 아동학대 대책이 졸속, 땜질, 재탕, 여론 잠재우기 식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국가의 대책 속에서 ‘사회적 공분’은 대중의 공통된 분노로서만 소모되는 듯하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책임 주체를 밝혀내거나, 피해아동의 죽음에 대한 정당한 사회적 처벌의 수준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일을 넘어서는 문제다. 아동학대가 특정한 가해자나 방관자만이 아닌 사회의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라면, 아동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아동학대를 지속시키는 사회적 환경과 제도를 변화시키려는 공공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가족 형태의 문제?

아동학대 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계부모나 양부모를 사건의 이름에 붙이며 부각시키는 관행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었다. 아동학대를 ‘혈연가족 외부’의 문제인 것처럼 왜곡하고, 재혼·입양가족과 같은 특정 가족형태나 원가정으로부터 분리된 가정 밖 보호(out-of-home care) 아동, 그 가족구성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을 강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아동보호관련기관들이 아동학대가 친생부모 가정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아동학대 사망처럼 심각성이 두드러지는 사건이 가시화되면 논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기에 십상이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던 새해, 국가 정책의 책임자인 대통령과 국무총리까지 아동학대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입양절차에 대한 공적 관리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자 입양 당사자 가족들과 관련 단체들이 즉각 반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제시한 입장은 사회적 공분을 ‘가족 형태의 문제’로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2015년 말, 친부와 동거인의 폭력과 극단적 방임으로 인해 11살 여아가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한 인천 감금학대 사건도 마찬가지로 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사건이었다. 당시 집으로부터의 탈출이 두 번째였던 피해아동은 경찰에게 ‘보호시설에서 나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첫 번째로 탈출했을 때 행인이 도움을 주었지만, 그 방식이 원가정의 부모를 찾아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집이 있다고 알려준 걸 후회했다”는 피해아동의 말은 우리에게 아동학대를 가족 형태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형태를 불문하고 가정 안에서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를 ‘가정폭력’의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요청한다.

가족 자체를 들여다봐야

가족형태와 관계없이 가족 안에서 일상적인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모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아동이 성인인 부모와의 권력관계에서 사회적 약자의 위치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하지만 국가는 가족을 사적 공간으로 규정하고 스스로를 ‘외부자’로서 위치시키며 공공의 개입을 최소화해왔고, 아동학대는 가족 내 권력관계와 사회적 약자인 아동의 권리 보장의 문제이자 가족 내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여겨지기 어려웠다. 아동의 양육과 돌봄에 대한 책임과 역할은 여전히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다.

수사·재판과정에서 확인된 가해부모 진술을 통해 가족 내 영유아학대의 동기를 살펴보면 경제적 이유를 제외하고 ‘울거나 보채서’가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그리고 ‘지시를 따르지 않아서’, ‘본인이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피해아동이 잘못을 저질러서’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진술은 대다수의 부모, 보호자, 성인들에게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동기로 여겨질 것이다. 가족은 사랑과 돌봄을 전제로 한 ‘안전한 공동체’가 아니라, 바로 그 친밀함을 방패삼을 수 있는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이자 긴장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아동학대 뿐만 아니라 여성, 노인, 장애인 가족구성원에 대한 폭력의 구조와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해결해나갈 수 없다.

지난 국회 본회의에서 수많은 아동학대 대책 입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징계권’을 명시한 민법 제915조 삭제보다 아동학대처벌법상 의무수사를 강화하는 법 개정이 훨씬 더 부각되고 있다. 아동학대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과 사회적으로 합의된 대처를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한 공공의 역할이지만, 아동이 경험하는 위험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 위주의 정책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아동학대에 대한 공적 책임은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 부모가 아동을 잘 양육하고 보살필 수 있는 역량을 성장시키는 정책, 가족 내에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맺기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지·지원하는 제도와 환경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아동학대 ‘대응’과 ‘예방’에 대한 국가의 책임

나아가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발생 이후 ‘대응’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아동의 권리에 기반한 국가의 책임은 아동학대가 발생하기 전 위험과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아동학대를 줄일 수 있는 ‘예방’이라는 또 다른 축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아동학대 예방 정책은 여전히 공공성의 방향을 제대로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정책의 목표가 아동의 인격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보다, ‘가족 해체 예방’이나 ‘가족 회복 지원 강화’ 관점을 실현하도록 추동하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 제4조 제3항에는 아동보호서비스의 원칙으로서 ‘원가정 보호 원칙’이 담겨 있다. 이는 부모가 아동 양육과 돌봄을 포기하거나 학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예방적 조치를 해야 할 책무를 드러낸다. 가정뿐만 아니라 아동보호시설과 같은 가정 밖 보호를 포함해 사회 전체가 아동에게 안전한 환경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을 포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 주요 통계를 살펴보면 2019년 아동학대사례 3만여 건 중 원가정 보호 지속은 83.9%, 분리조치는 12.2%, 가정 복귀는 3.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스스로 아동복지법에 따른 ‘원가정 보호 원칙’이 구현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원가정 보호의 지속이나 복귀가 그 자체로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 책무를 다한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양천 아동학대 사건이 보여주듯이 피해아동들이 학대행위자가 있는 가정에 돌려보내지는 현실은 ‘원가정 보호 원칙’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수많은 현장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쉼터나 위탁가정과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가, 전담공무원, 법원에 이르기까지 신체적 학대 이외의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및 인지가 부족하거나, 양육자의 ‘친권 제한’을 소극적으로 적용하거나, 담당 기관 간의 유기적이지 못한 사례관리, 포괄적이지도 충분하지도 못한 지원 정책 등에 기인했을 확률이 높다. 전체 아동학대 피해자의 80% 이상이 원가정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학대 위험을 대처·예방하기 위해 원가정 보호를 원칙으로 한다는 취지가 무색할 따름이다.

사회 변화를 담보하는 아동정책이 필요한 때

양천 아동학대 사건 이후 한파 속에서 내복을 입은 채 발견된 여아의 사건이 보도되고, 양육자에 대한 비판이 높았다. 그러나 해당 양육자가 최근 시설에서 자립한 한부모 여성이며, 노동시간으로 결정되는 생계와 자녀 돌봄 사이에서 늘 선택을 저울질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뒤이어 보도되었다. 연이은 아동학대 사건은 아동학대에 대한 분절적인 ‘대응’이나 가족구성원 개인의 잘잘못을 똑바로 묻는 데 그치지 않는 국가의 책임을 촉구한다. 그리고 이 책임은 모든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권리 보장이라는 국가의 책무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2016년 정부의 아동학대 종합대책에서 한부모, 조손, 이혼, 재혼, 다문화, 새터민, 장애인 가정은 ‘정상가정’에 비해 아동학대의 위험 혹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가정’으로 전제되었지만, 청소년/미혼모 및 한부모가 아동 양육을 선택하고 지속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정책은 외면당해 왔다. 그리고 정부는 최근까지도 복지 급여 및 서비스 연계・지원 등을 통해 위기가정의 가족 해체를 예방하고 이를 통해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가족 기능의 보완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순간, 그 부담을 오롯이 떠안은 ‘가족’은 계속 학대와 폭력을 내포하는 공간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 대책이 아동정책뿐 아니라 주거, 고용, 돌봄, 실업, 빈곤, 사회보장제도 등 다양한 사회정책들을 함께 개선시키고, 그 사회정책들이 다시 아동정책으로 연계될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 인권운동사랑방은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인권의 이름으로 지키고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운동단체입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비마이너]와 [프레시안]에 공동게재됩니다.

*필자 소개 _ 몽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