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피해장애인 지원을 위한 실천적 모형 구축 방안 토론회’ 열려
피해장애인에게 제일 필요한 것, 자립‧정착 위한 ‘주거서비스’
네 가지 모형 두고 토론자들 의견 갈려

2012년, 사망한 장애인을 10년, 12년 동안 병원 영안실에 방치하고 있던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장애인 학대의 개념과 학대 금지 조항 등이 처음으로 법에 명시됐다. 2012년 10월에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는 장애인 학대 신고의무와 절차, 응급조치의무, 보조인 선임, 학대금지행위, 과태료 조항 등이 신설됐다.

법은 있었지만 학대 피해자에 대한 지원 시스템은 미비한 실정이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전남지역 염전에서 수십 명의 장애인이 노동착취, 학대 등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해인 2015년, 장애인복지법은 한 번 더 개정됐다. 개정된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설치, 사후관리 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장애인 학대피해를 예방하고 지원하는 국가적 시스템이 법에 명시됐다.

하지만 아직도 장애인 학대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장애인 지원현장에서는 장애인학대범죄처벌특례법 제정, 장애인복지법 개정 등을 통해 학대피해를 입은 장애인의 회복, 특히 지역사회에서 자립‧정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일 오후 두 시, ‘학대피해장애인 지원을 위한 실천적 모형 구축방안 토론회’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연구회 주최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학대피해를 입은 장애인의 회복과 지역사회 정착지원 모형을 제시하면서 장애인 지원현장 실무자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과제가 모색됐다.

토론회 참여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토론회장에 앉아있다. 토론회장 뒷면에는 '학대피해 장애인 지원을 위한 실천적 모형 구축방안 토론회'라고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함께걸음 유튜브 갈무리
토론회 참여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토론회장에 앉아있다. 토론회장 뒷면에는 '학대피해 장애인 지원을 위한 실천적 모형 구축방안 토론회'라고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함께걸음 유튜브 갈무리

- 학대피해장애인 지원 시스템 전무… 회복 이후 자립까지 지원해야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조주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피해장애인지원센터 센터장은 장애인 학대피해 지원 시스템이 전무한 현실을 지적했다.

조 센터장은 “우리나라 학대피해자 지원체계는 아동, 노인, 가정폭력 피해자, 성폭력 피해자, 강력범죄 피해자 등 유형별로 상담과 지원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전문적인 지원체계는 아직 없는 상태다. 기존체계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려다 보니 비전문적이고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어려워 서비스 제공이 거부되거나 제한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고 비판했다.

2015년 염전사건 이후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전국에 설치됐다. 또한 피해자의 임시보호와 사회복귀를 지원하도록 하는 피해장애인 쉼터가 설치됐다. 현재까지 전국 14개의 쉼터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조 센터장은 현재의 쉼터 시스템도 피해장애인을 온전히 지원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 센터장은 “쉼터 수는 경기도와 서울을 제외한 광역시도별로 1개 설치에 그치고 있다. 인력도 부족하다. 최대 4~6명의 종사자가 배치돼 있지만 24시간을 운영하는 쉼터 특성상 이 인력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피해장애인이 쉼터에 머물며 피해를 회복한 이후도 중요했다.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며 다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했지만 쉼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제도적 공백 보완’, ‘피해장애인 중심의 권리회복과 사회통합 지향’ 등을 목표로 피해장애인을 지원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학대피해장애인지원센터(아래 센터)’를 2016년 설립, 운영했다.

센터는 △1단계 학대상담‧신고 △2단계 긴급지원 △3단계 피해회복지원 △4단계 자립준비지원 △5단계 정착지원 등 다섯 단계로 피해장애인을 지원한다.

조주희 센터장이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 함께걸음 유튜브 갈무리
조주희 센터장이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 함께걸음 유튜브 갈무리

이 중 조 센터장은 ‘자립지원홈 운영’을 센터 사업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자립지원홈은 피해장애인이 쉼터에서 퇴소한 후 거주할 곳이 없거나 자립의 경험을 필요로 할 때 무상으로 제공하는 주택이다. 조 센터장은 “자립지원홈에서 퇴거한 이후에도 피해장애인이 거주하길 희망하는 지역 등을 고려해 LH임대주택, 민간임대계약 등 정착지원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2016년부터 5년간 추진해온 센터 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장애인 학대방지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2016년 센터 개소 이후 시범사업 지역의 조례가 개정되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비사업 지역의 지원체계는 여전히 미흡했다. 또한 센터 운영은 곧 종료를 앞두고 있다. 조 센터장은 “5년간의 피해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사업 종료 후 예상되는 서비스 공백의 해결책 마련과 비사업 지역까지 포괄한 피해장애인 지원체계의 구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피해장애인들도 주거를 바탕으로 한 자립‧정착 지원을 가장 많이 필요로 했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2년간 지원한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체 지원 3,155건 중 주거지원이 287건, 자립주택지원이 297건 등 총 584건의 자립‧정착 지원이 이뤄졌다. 이는 ‘기타지원’으로 분류된 691건을 제외하고 제일 많은 수치다.

이 같은 사례를 발표한 이건희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원장은 “LH매입임대주택 입주자격 요건에 피해장애인이 가점을 받을 수 있는 항목이 추가되거나 매입임대주택 공가를 피해장애인 주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피해장애인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는 기관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또한 “현재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이 탈시설 장애인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학대피해장애인까지 포괄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피해장애인 지원체계 실천모형 네 가지를 표로 나타낸 것. 자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피해장애인 지원체계 실천모형 네 가지를 표로 나타낸 것. 자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피해장애인 자립 위한 네 가지 모형 제시돼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에 토론회에서는 피해장애인의 자립‧정착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네 가지 실천모형이 제시됐다.

1안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쉼터, 지역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통합형’이다. 2안은 쉼터의 사회복귀 지원 역할을 강화하는 ‘쉼터강화형’, 3안은 별도의 사업을 통해 피해회복과 자립정착을 지원하는 ‘전문지원 사업형’이다. 마지막 4안은 쉼터와 센터를 결합하고 자립주택 등 주거서비스 제공을 포함한 ‘전문지원 기관형’이다.

토론자로 나선 이복실 서울특별시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4안 ‘전문지원 기관형’이 제일 타당한 모형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센터장은 “피해장애인의 성공적인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의 기관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주거, 의료, 법률, 일상지원 등 통합적인 형태의 밀착지원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담인력과 지원예산 등을 갖춘, 특화된 전문지원기관이 필요하다”며 “4안은 전문성을 확보하고 시급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3안 ‘전문지원 사업형’을 제일 적절한 모델이라고 말했다. 염 변호사는 “1안과 2안만으로는 자립과 정착에 대한 협력체계 구축이 어려워 보인다. 4안을 실행하면 장애인 거주시설이 확대될 것 같아 우려된다. 별도의 조직 구성이 필요 없는 사업 형태로 운영해 지자체로의 확대적용도 용이해 보이는 3안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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