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 선거에서도 재발한 장애인 참정권 차별… 인권위에 진정
수십 년 똑같은 외침에도 개선은 없어… “백 번, 천 번 더 요구하고 싸울 것”

기자회견에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이 될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허현덕
기자회견에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이 될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활동가가 '공적조력을 매치하라, 피플퍼스트서울센터'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허현덕

지난 4월 7일 서울시와 부산시에서 시장 재보궐 선거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장애인 유권자는 ‘한 표 행사’가 어렵기만 했다. 장애계는 오는 2022년 대통령선거, 지방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장애인 참정권 차별을 끊어야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정책 권고를 촉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19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박병석 국회 의장, 각 정당 원내 대표 등 9명을 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한 피진정인으로 인권위에 진정한 사실을 알렸다. 

공직선거법 제6조에는 국가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서도 모든 국민에게 참정권 의무와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최근 재보궐 선거에서도 장애인들의 참정권 차별 제보는 끊이지 않았다. 장추련은 11년 전부터 참정권 모니터링을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개탄했다.

시각장애인 유권자 곽남희 씨는 “투표보조용구는 투표소 내에 의무적으로 상시 비치되어 있어야 하고, 한 번 사용한 투표보조용구는 반드시 폐기하는 내용이 공직선거법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허현덕
시각장애인 유권자 곽남희 씨는 “투표보조용구는 투표소 내에 의무적으로 상시 비치되어 있어야 하고, 한 번 사용한 투표보조용구는 반드시 폐기하는 내용이 공직선거법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허현덕

- 선거 정보접근권 보장받지 못하는 시각·청각장애인   

시각·청각장애인들은 이번 선거·투표에서 정보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지난해 점자 선거공보물 면수가 두 배로 늘었지만, 여전히 동등한 정보 제공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묵자를 점자로 점역했을 때는 대략 면수가 3~4배로 늘어나는데, 2배로는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점자 품질이 떨어지거나 잘못된 정보가 들어가는 일도 있다. 더욱이 점자공보물이 아닌 인쇄물접근성바코드(QR코드, 보이스아이)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후보가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각장애인 유권자 곽남희 씨는 “점자 선거공보물을 제공하지 않았고, 내용이 빠지거나 다른 경우도 있었다. 최근 후보자 정보를 UBS에 담아 제공하도록 하고 있지만 의무가 아니어서 서울시장 후보자 15명 중 단 4명밖에 USB를 활용하지 않았다. 그중 1개는 새로 포맷을 해야 해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라며 “동등한 정보접근을 위해 점자 선거공보물 면수 제한을 없애고, 인쇄물접근성바코드와 USB 등 3개 모두를 시각장애인이 선택해 정보를 취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투표보조용구 문제도 있었다. 곽 씨는 종로구 서울농학교로 투표를 하러 갔는데, 투표보조용구가 비치돼 있지 않아 5분을 서서 기다렸다 투표를 할 수 있었다. 투표보조용구는 시각장애인 유권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으로 후보자 이름이 점자로 새겨진 투표보조용구에 투표용지를 끼워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기표할 수 있도록 돕는 보조용구다. 

투표보조용구가 비밀투표를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도 개선되지 않았다. 곽 씨는 “지난해 선거에서도 투표보조용구에 도장이 묻어 비밀투표를 보장해달라고 차별진정했지만, 이번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내가 투표 도장을 찍었을 때 폐기가 되는지, 혹은 재사용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불안했다”라며 “투표보조용구는 투표소 내에 의무적으로 상시 비치되어 있어야 하고, 한 번 사용한 투표보조용구는 반드시 폐기하는 내용이 공직선거법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도 고려되지 않았다. 보궐선거를 앞둔 4월 5일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는 후보자 2명이 언쟁을 벌이는데, 수어통역사가 1명만 배치되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 청각장애인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장추련은 “공직선거법 제82조의2에 근거해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대담·토론회에서는 토론 참여자 수와 동일한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변경 전 선거사무지침. “점자를 읽을 수 없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과 신체 장애(지적·자폐성 장애 포함)로 자신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1인도 가능)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에게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음을 안내함(특수형 기표용구 교부 가능)”이라고 적혀있다. 해당 내용 중 ‘지적·자폐성 장애 포함’은 현재 지침에서 삭제되었다. 사진제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변경 전 선거사무지침. “점자를 읽을 수 없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과 신체 장애(지적·자폐성 장애 포함)로 자신이 혼자서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1인도 가능)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에게 투표를 보조받을 수 있음을 안내함(특수형 기표용구 교부 가능)”이라고 적혀있다. 해당 내용 중 ‘지적·자폐성 장애 포함’은 현재 지침에서 삭제되었다. 사진제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 발달장애인 투표 조력 조항 삭제, 참정권 침해 사례 속출

지난 21대 총선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의 선거사무지침이 바뀌면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속출했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만 20세 이후부터 어머니의 조력으로 투표를 했던 발달장애인 ㄱ 씨는 복지카드를 제시하고 어머니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투표소 직원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동안 투표 조력을 했었고, 조력인이 들어갈 수 있다는 지침을 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마포선거관리위원회는 중앙선관위에 문의해야 한다고 했고, 중앙선관위는 ㄱ 씨 혼자서 투표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ㄱ 씨는 혼자서 기표해야만 했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투표용지를 접어 투표함에 넣을 때까지 2시간이 걸렸다. 

발달장애인 ㄱ 씨의 어머니는 “시간이 오래 걸려 아들이 불안해했다. 인지와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는 발달장애는 장애가 아닌가? 아들은 수능시험을 볼 때도 선생님 3명의 도움을 받아 시험을 치렀다”라며 “저의 아들과 같은 발달장애인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장애부모나 특수교육을 전공한 분들이 투표소에 배치돼 투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직선거법 제157조에는 시각·신체장애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은 해당 조항의 ‘신체장애’ 분류에 들어가지 않아 인적 지원을 받지 못하자 장추련을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의 끈질긴 문제제기 끝에 2016년경부터 중앙선관위는 시각 또는 신체장애 외 ‘발달장애(지적·자폐)’도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선거사무지침을 개정했다. 그런데 지난해 총선부터 이 문구가 삭제되면서 ㄱ 씨와 같은 발달장애인이 투표 조력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었다.
 
이에 장추련은 지난해 4월, 인권위에 발달장애인이 투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시정권고를 진정한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식적인 시정권고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인권위 내부적으로 차별로 판단을 했고, 앞으로 권고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인권위에서도 발달장애인의 투표 조력을 못하게 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판단했고, 많은 발달장애인이 참정권을 침해받고 있는 만큼 공직선거법이나 지침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인권위에서도 발달장애인의 투표 조력을 못하게 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판단했고, 많은 발달장애인이 참정권을 침해받고 있는 만큼 공직선거법이나 지침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사진 허현덕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인권위에서도 발달장애인의 투표 조력을 못하게 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판단했고, 많은 발달장애인이 참정권을 침해받고 있는 만큼 공직선거법이나 지침이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사진 허현덕

- 투표소 100% 물리적 접근 막는 예외조항, 삭제해야  

1층이 아니거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물리적 접근이 안 된 사례도 있다. 휠체어 이용자인 ㄴ 씨가 송파1동 투표소에 갔지만, 투표소 입구에 20cm의 턱이 있었다. 편의제공을 요청하자 투표소 직원은 ‘턱이 있어서 전동휠체어는 못 올라가는데 걸을 수 있나요?’라는 모욕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나무판이나 각목이라도 놓아달라고 했지만 ‘없다,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결국 ㄴ 씨는 투표를 포기했다.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67조의2 제1항에 ‘투표소는 고령자·장애인·임산부 등 이동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하여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하여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편의제공에 대한 단서로 ㄴ 씨와 같이 투표를 하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예외조항을 삭제해 100% 투표소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장애인은 왜 하나하나 요구하고 하소연을 하고 눈총을 받아 가며 참정권을 행사해야 하는가?”라며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장애인 참정권 보장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19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박병석 국회 의장, 각 정당 원내 대표 등 9명을 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한 피진정인으로 인권위에 진정한 사실을 알렸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19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박병석 국회 의장, 각 정당 원내 대표 등 9명을 장애인 참정권 차별에 대한 피진정인으로 인권위에 진정한 사실을 알렸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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