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 “장애인 참정권 보장하라” 외친 장애인들
수년째 ‘그림투표용지, 알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요구에도 선관위는 ‘무반응’

발달장애인 활동가가 “2018년 우리의 약속 잊으셨나요? 약속을 이행하라. 한국피플퍼스트”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한국피플퍼스트는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날이었던 2018년 6월 8일,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피케팅 시위를 하던 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문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사진 강혜민
발달장애인 활동가가 “2018년 우리의 약속 잊으셨나요? 약속을 이행하라. 한국피플퍼스트”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한국피플퍼스트는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날이었던 2018년 6월 8일,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촉구 피케팅 시위를 하던 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문제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사진 강혜민

“모든 발달장애인이 만 18세가 넘으면 선거에 참여하거나 투표할 권리를 가집니다. 그러나 투표 전에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 내용은 너무 복잡해서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어렵고, 투표용지는 글로만 되어 있어서 투표하러 가더라도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몰라 그냥 돌아오거나 아무나 찍게 됩니다.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 날이었던 2018년 6월 8일, ‘발달장애인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림투표용지를 도입하라’는 피케팅 시위를 하던 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날 대통령은 우리 이야기를 듣는 듯했지만 말로만 약속할 뿐, 여전히 발달장애인 참정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

2021 재·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 장애인들은 또다시 투표소 문턱에서 발을 돌린 채 완전한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며 거리에 서야 했다.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아래 장애인참정권대응팀)’은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2일 오전 10시 30분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이날 발달장애인들은 “발달장애인도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을 만들어라”, “공적조력인을 배치하라” 등 요구안을 손수 적은 손피켓을 들고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문윤경 대표는 “발달장애인이 부모나 장애인거주시설 직원의 간섭 없이 투표할 수 있게 공적 조력인을 배치해야 한다”라면서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 다양한 선거가 있는데 발달장애인은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지역별로 선거 설명회를 열어서 발달장애인도 참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는 배미영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공적 조력인을 배치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는 배미영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공적 조력인을 배치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1948년 5월 10일,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라는 민주적 선거제도가 도입된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지난 73년간 수많은 선거가 치러졌다. 그러나 국민의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과정에서도 장애인 참정권에 대한 국가적 고민과 시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장애인참정권대응팀은 선거 시기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67조의2(투표소의 설치 및 설비) 1항에 “투표소는 고령자·장애인·임산부 등 이동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위하여 1층 또는 승강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명시되어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1층 투표소 설치가 이뤄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만,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하여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려서, 여전히 전체 투표소 중 10%가량은 장애인 접근이 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72조는 ‘후보자 연설 방송에서 수어 또는 자막 중 한 가지만 제공하면 된다’고 규정하여 청각장애인과 농인의 접근권 또한 보장되지 않는다. 게다가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투표 시 조력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지침마저 5년간 사용되다가 갑자기 폐기되기도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은 2일 오전 10시 30분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대응팀’은 2일 오전 10시 30분 청운효자동 사전투표소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의 완전한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사진 강혜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도 “작년에 선거하러 갔더니 투표보조용구가 바로 제공되지 않아서 5분이나 기다려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도 제대로 된 선거 정보를 받을 수 없다”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점자공보물 매수 제한이 있어서 어떤 공보물엔 후보 설명만 있고 공약이 없었으며, 다른 공보물엔 공약은 있는데 대표적 내용 한 줄씩만 적혀있는 경우, 묵자공보물에는 없는데 점자공보물에만 ‘장애인 공약’이라고 적혀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곽 활동가는 “법 개정으로 최근 점자공보물 내용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하는데 (비시각장애인이 받는 묵자공보물과) 내용이 동등하게 들어있을지는 의문이다”라면서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USB로도 공보물이 제공되나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호 후보 15명 중 USB가 온 후보는 4명뿐”이라고도 밝혔다.

따라 장애인참정권대응팀은 △그림투표용지 도입 △알기 쉬운 선거 정보 제공 △공적조력인 배치 △지역설명회 개최 △선거 전 과정에서 수어통역과 자막제공 의무화 △시각장애인 점자공보물 내용을 비시각장애인과 동등하게 제공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한 투표소 선정 △장애인거주시설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여전히 많은 투표소가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만 있는 곳에 투표소를 설치해놓고, ‘임시투표소’라는 또 다른 편법으로 장애인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장애유형별로 정당한 편의지원을 해야 하는데 선관위는 신체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만 투표 지원을 하도록 해서, 발달장애인은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

김 사무국장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같은 요구를 외치지만 몇 년째 바뀌지 않고 있다”면서 “다음 투표 때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고 인증샷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참정권 보장 요구안을 손수 적은 손피켓을 들고서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피켓에는 “발달장애인이 좀더 알기 쉬운 공보물을 만들라”,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의 유권자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모의 투표를 진행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참정권 보장 요구안을 손수 적은 손피켓을 들고서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다. 피켓에는 “발달장애인이 좀더 알기 쉬운 공보물을 만들라”, “발달장애인도 대한민국의 유권자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모의 투표를 진행하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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