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계, 진주교대서 기자회견 후 총장실 점거
교무처장 “합격자를 추가합격 명단에 포함한 것뿐”이라고 주장
2시간 면담 끝에 유 총장 “공식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하겠다”

진주교육대학교(아래 진주교대)가 장애학생의 성적을 조작해 탈락시킨 것에 책임을 지고 다음 달 중에 공식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권단체는 8일 오후 3시, 경상남도 진주교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길한 총장 사퇴 △재발방지 대책 마련 △장애학생 입학정원 확대 △학생모집 관련자 인권교육 △학생모집 시 장애학생 차별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요구했다.

기자회견 후 이어진 유길한 총장, 김도헌 교무처장 등 학교 관계자와 진행된 면담에서 유 총장은 7월 중 공식적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중증장애인 입시성적을 조작한 진주교대와 이를 방관한 교육부를 규탄하며 4월 14일 오전 10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중증장애인 입시성적을 조작한 진주교대와 이를 방관한 교육부를 규탄하며 4월 14일 오전 10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 진주교대 입학관리팀 팀장 “장애인은 날려라”

장애학생 성적조작 사건은 입학사정관 ㄱ 씨의 내부고발로 세상에 알려졌다. 내부고발에 따르면, 입학관리팀 팀장 박 아무개 씨는 2018년 수시모집 특수교육대상자 전형 과정에서 ㄱ 씨에게 시각장애1급 학생의 성적을 조작하라고 세 차례 이상 지시했다. ㄱ 씨가 이를 따를 수 없다며 거부하자 박 팀장은 자신이 지켜보는 앞에서 ㄱ 씨가 점수를 바꾸게 했다.

성적조작은 2017년에도 있었다. 박 팀장은 당시 ㄱ 씨가 면접관으로 참석한 면접에서 중증장애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주라고 압박했다. 경향신문 4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박 팀장은 ㄱ 씨에게 “장애인은 날려야 한다”, “장애인이 네 아이 선생이라고 생각해 봐” 등의 혐오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성하고 바뀌어야 할 진주교대는 내부고발자 ㄱ 씨를 되레 징계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 지난달 1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진주교대는 “자체조사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관련자의 명예가 실추됐고 행정력이 낭비돼 직원 고충이 컸다”고 주장하며 ㄱ 씨에게 징계를 시도했다고 알려졌다.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중증장애인 입시성적 조작하는 차별대학 총장 사퇴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 촉구’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전장연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중증장애인 입시성적 조작하는 차별대학 총장 사퇴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 촉구’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전장연

- 장애계, 의무고용률 못 지키면서 장애학생은 뽑지 않는 교육당국 규탄

기자회견에서는 국립대인 교육대가 앞장서서 장애학생을 차별하는 현실에 대한 규탄이 이어졌다.

민경선 진해장애인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대한민국 헌법 3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그 누구도 한 인간의 학습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의 도시라는 진주에서 장애학생을 차별하는 참담한 사건이 발생했다”며 “총장과 관련자는 즉각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 이런 문제 생기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진주교대 ‘방과 후 페미니즘’ 동아리 이세영 학생은 “어린 시절, 어떤 게 장애인 차별인지 알려 준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이렇듯 교육은 한 사람의 관점을 바꾸고 소수자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진주교대는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정반대로 후퇴했다”고 규탄했다.

김수정 전교조 경남지부 참교육실장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차별대학 진주교대’라 적혀 있다. 사진 전장연
김수정 전교조 경남지부 참교육실장이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차별대학 진주교대’라 적혀 있다. 사진 전장연
기자회견 참가자가 들고 있는 피켓에 ‘진주교대는 학생모집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전장연
기자회견 참가자가 들고 있는 피켓에 ‘진주교대는 학생모집과정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지침 및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전장연

더 많은 장애인 교원이 필요하다는 발언도 있었다. 김수정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남지부 참교육실장은 “20년간 교직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장애인 동료를 만난 적 없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라며 “학생이 장애인 교사를 본다면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려면 지원을 받아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이 더 많은 장애인 교사에게서 배워야 다양한 삶의 공존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정 참교육실장이 장애인 동료를 못 만난 이유가 있다. 교육부는 교육공무원에 장애인 의무고용이 적용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애인 의무고용률(현 3.4%)을 지킨 적이 없다.

교육부는 ‘장애인 예비교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긴 하다.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장애인 예비교원의 수는 평균 280명뿐이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작년 10월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을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 장애인 교사는 4,485명이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하려면 7,047명이 더 필요하다. 이들 전원이 교원이 된다고 가정하더라도 현행 의무고용률 3.4%를 충족하려면 25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권익위가 공개한 '최근 3년간 교육대학교 장애인학생전형 입학현황'. 장애학생을 가장 많이 모집한 학교도 의무고용률에 미달되는 수준으로 장애학생을 뽑고 있었다. 사진 권익위 자료 캡처
권익위가 공개한 '최근 3년간 교육대학교 장애인학생전형 입학현황'. 장애학생을 가장 많이 모집한 학교도 의무고용률에 미달되는 수준으로 장애학생을 뽑고 있었다. 사진 권익위 자료 캡처

원인은 장애학생을 애초에 적게 뽑는 데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달 2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교육대학(초등교사)의 장애학생 모집비율은 최대 3.22%였다. 장애학생을 가장 많이 모집한 교대의 경우 2020년을 기준으로 총정원이 311명인데 장애학생 모집인원은 10명에 그쳤다. 34명의 장애학생이 지원했지만 합격자는 6명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주교대는 우수한 성적을 받은 장애학생마저 성적을 조작해 불합격시켰다.

박경석 전장연 교육권위원회 위원장은 이 같은 현실을 지적하며 “교육부는 15년간 장애인 교원이 없다며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 장애인 교원 수 자체가 적다고 핑계 댄다. 그런데 장애학생을 뽑는 사람은 장애인을 ‘날리라’고 한다. 교육이 이 지경이 될 동안 장애학생의 교육권, 노동권 등은 모두 배제돼 왔다”고 성토했다.

진주교대 총장실. 유길한 총장(왼쪽)과 장애인 활동가들이 면담하고 있다. 사진 전장연
진주교대 총장실. 유길한 총장(왼쪽)과 장애인 활동가들이 면담하고 있다. 사진 전장연
유길한 총장(왼쪽)과 김도헌 교무처장(오른쪽). 사진 전장연
유길한 총장(왼쪽)과 김도헌 교무처장(오른쪽). 사진 전장연

- 장애계의 끈질긴 요구 끝에 총장이 공식 사과하기로

기자회견 후 이뤄진 면담에서도 김도헌 교무처장은 장애인 차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김 교무처장은 “장애학생을 불합격시켰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해당 학생은 원래 4등으로 합격했다. 성적조작 이후 11등으로 떨어졌지만 추가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그런데 그 학생이 다른 대학으로 가느라 우리학교에 등록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발언을 했다. 또한 김 교무처장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공식 사과는 조심스럽다. 또한 내부고발 관련해서도 쟁점이 남아있다”고 변명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장애계의 끈질긴 요구 끝에 유길한 총장은 △7월 안으로 공식 사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해 장애계 측에 문건 전달 △경남 내 인권센터와 협의해 실태조사 진행 등을 약속했다. 성적조작 사건은 유 총장 취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총장사퇴 요구안은 철회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