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학잡지 에피 공동기획 : 장애와 테크놀로지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출전기

저는 이 글을 2024년 제 뒤를 이어 사이배슬론 웨어러블 로봇 부문에 출전할 선수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당신은 세계 각국 팀들과 실력을 겨룰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대회를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대회 준비 기간과 대회 이후 제가 가졌던 생각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이 사이배슬론을 준비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 신촌 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었던 나는 나동욱 교수, 신지철 교수의 권유로 사이배슬론에 선수 후보로 참가하게 되었다. 2019년 6월부터 평가전을 위한 준비를 하였고 평가전에서 선수로 발탁되면서 대회를 위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웨어러블 로봇은 나에게 다시 걸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훈련 초기에는 로봇을 조작하고 웨어러블 로봇을 이용하여 보행하는 느낌에 적응하는 데에 집중했다. 로봇을 착용하고 보행함으로써 나는 다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것이 비장애인의 보행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웨어러블 로봇을 사용하여 보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평상시에 사용하는 이동 수단인 휠체어에서 웨어러블 로봇으로 트랜스퍼한다. 그리고 로봇에 신체를 고정하기 위해 로봇에 달려 있는 벨트로 몸을 고정하고 로봇 뒤쪽에 위치해 있는 전원 버튼을 켜야만 보행을 위한 준비가 완료된다. 나는 휠체어에서 로봇으로 몸을 옮기고 로봇 뒤쪽에 위치한 전원 스위치를 누르는 단계에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 두 개의 과정은 신체적 여건상 로봇 파일럿이 스스로 수행할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장애인이 웨어러블 로봇을 완전하게 스스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웨어러블 로봇은 비장애인의 보행을 완전히 동일하게 제공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 지금의 웨어러블 로봇은 대중의 기대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웨어러블 로봇에 탑승하고 벨트로 몸을 고정하고 전원이 켜지기까지 기다리는 모든 과정은 약 5분 정도가 소요되며 커다란 불편함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휠체어의 경우, 내가 현재 앉아 있는 위치에서 휠체어로 탑승하고 휠체어를 움직이는 데에는 채 1분도 소요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직까지 장애인들의 실생활에 있어서 휠체어의 활용이 더욱 선호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주현 선수가 사이배슬론 경기에 입은 ‘워크온슈트4’ 이미지. 사진 카이스트 제공
이주현 선수가 사이배슬론 경기에 입은 ‘워크온슈트4’ 이미지. 사진 카이스트 제공

경기일이 다가올수록 로봇을 조작하고 보행하는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이전에는 안정적으로 보행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면 훈련 후반부에는 완주 시간을 단축하는 데에 중점을 두어 연습했다. 훈련을 할 때 나는 로봇과 내가 한몸이라는 생각으로 연습했다. 그러나 훈련이 끝나고 휠체어에 탄 채로 거울을 보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어디까지가 내 몸의 범위에 해당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기 이전 휠체어만을 타던 나에게 있어서 내 몸의 범위는 신체뿐 아니라 휠체어까지 포함했다. 휠체어는 타기도 쉽고 조작하기도 쉬웠다. 휠체어를 조작하는 행위는 내가 손을 움직여 어떤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이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되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나는 휠체어로 나의 몸을 옮길 때 ‘휠체어를 탄다’, 또는 ‘휠체어에 앉는다’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손을 사용할 때는 ‘손을 사용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나는 휠체어를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표현은 손을 사용할 때의 표현과 다르다. 또한 사회적으로 휠체어는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는 보조 도구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휠체어는 내 몸의 일부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신체를 사용할 때와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신체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가? 웨어러블 로봇의 경우를 살펴보자. 내가 웨어러블 로봇을 사용할 때에는 ‘로봇을 착용한다’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이렇듯이 로봇을 사용하는 표현은 휠체어를 사용할 때와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을 고려하면 휠체어와 로봇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웨어러블 로봇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손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휠체어 또는 웨어러블 로봇을 사용하기까지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한다면, 웨어러블 로봇은 신체가 아닌 보조 도구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웨어러블 로봇은 신체의 일부와 같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신체 능력을 증강하기 위해 테크슈트를 사용한다. 특히 토니 스타크가 슈트를 착용하는 장면은 로봇이 신체의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연출되어 착용에 따른 불편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테크슈트를 그의 신체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로봇을 실제로 사용하는 장애인과 이에 대해 다루는 미디어 간의 입장이 상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나는 웨어러블 로봇을 보조 도구로 생각했지만 사회에서는 웨어러블 로봇을 신체의 일부로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에, 로봇을 신체의 일부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보조도구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내적갈등을 겪었다. 현재의 나는 휠체어를 내 신체의 일부로, 웨어러블 로봇을 보조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휠체어는 현재 나의 삶에서 내 신체 일부를 가장 활발하게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에 있어서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과 나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다. 미디어에서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보조공학기기의 도움을 받는 장애인을 아이언맨에 비유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장애인이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아이언맨에 비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기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기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능숙하게 기기를 다루게 된 후에도 이따금씩 발생하는 기기의 문제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상당한 공포심을 동반하게 된다. 처음 보조공학기기를 착용하고 사용하면 내 몸은 평소와 다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 기기에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일부에 이상이 생기면 나에게 위험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웨어러블 로봇을 처음 착용하고 로봇을 작동시켰을 때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몇 개월 동안 앉은 상태로 생활하고 있었던 내게 갑자기 서 있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낯설었다. 또한 보행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약 한 달간의 훈련을 거쳐야 했다. 코스 훈련을 할 때에도 새로운 코스를 시도할 때마다 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긴장을 유지했다. 이처럼 실제로 보조공학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이언맨처럼 멋있지도 빠르지도 않다. 오히려 장애인에게 있어 이는 적응해야 할 낯선 환경이다. 여러 기업에서 선보이는 장애인을 주제로 한 광고는, 대체로 장애인들이 접하지 못한 감각을 처음 접함으로써 감동 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애인에게 보조공학기기를 제공하고 그들이 처음 소리를 듣거나 세상을 보는 순간을 감동적으로 연출하곤 한다. 그러나 감동적인 분위기는 그 상황을 지켜보는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영상에서 청각장애인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기를 착용하고 소리를 듣는 순간, 그리고 색맹인이 색깔을 볼 수 있는 안경을 끼고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은 낯선 환경에서의 두려움, 혼란스러움의 표정이 아닐까.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된 이주현 선수의 경기 장면. 사진 카이스트 제공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된 이주현 선수의 경기 장면. 사진 카이스트 제공

사이배슬론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경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장애 관련 행사에서 장애인이 주체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이배슬론이라는 행사 안에서 장애인 파일럿은 경쟁적이고 주체적인 개인으로 활동한다. 이는 비장애중심적인 사회에서 대표되는 장애인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다. 따라서 사이배슬론은 능동적인 장애인을 모델로 제시함으로써 기존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상쇄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원활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사이배슬론을 사회에 소개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까지도 언론은 대체적으로 장애인에 대해 시혜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들을 매우 불행한 사람으로 표현하거나 장애를 극복한 대단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이 부분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이배슬론 경기가 종료된 후에도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세브란스 병원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타고 걷는 보행 연습을 한다. 그러나 확실히 경기를 위한 훈련 목적으로 로봇을 타던 때와의 느낌은 다르다. 경기 이전 훈련을 할 때는 로봇이 하나의 경기 도구였다. 레이싱 경기에서 속도를 높여주는 도구가 자동차인 것처럼 사이배슬론에서 속도를 높여주는 도구는 웨어러블 로봇이다. 따라서 로봇을 탈 때도 철저히 경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따라서 훈련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몸 컨디션을 조정해야 했다. 따라서 항상 보행 훈련을 하기 전후에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로봇이 보완되어야 할 때 즉각적으로 로봇에 대한 피드백이 오갈 수 있도록 모든 정비 물품이 구비되어 있는 대전 카이스트에서 훈련하였다. 훈련의 목적이 로봇을 타고 더 빠른 시간 안에 실수를 하지 않고 코스를 완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로봇을 안정적으로 타면서도 시간 단축에 집중해야 했다. 더 빠른 기록 달성을 위해서는 로봇과 선수가 최적의 상태로 있어야 했다. 따라서 로봇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통 로봇의 한 군데에 문제가 생기면 계속하여 특정 부위의 문제로 인하여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상태가 좋지 않은 로봇을 타면 선수의 컨디션에도 무리가 갈 수 있었다. 따라서 훈련 전에는 항상 로봇의 상태를 평가하는 테스트를 했다. 또한 문제가 발생할 시 로봇을 정비하고 타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경기를 위한 훈련이다 보니 경기일이 다가올수록 연습량도 점차 늘어났고 로봇의 기술적 문제에 있어서도 더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로봇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경기를 일주일 정도 앞둔 날, 오전 연습을 하던 중 갑자기 김병욱 선수와 나의 로봇이 모두 문제를 일으켰다. 평소 같았으면 금세 해결되었을 문제였는데 계속 해결이 되지 않았고, 로봇이 고쳐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걱정이 많이 되었다. 이미 다른 나라 팀에서 로봇의 결함으로 경기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된 사례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에 경기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다행히 저녁 무렵에 로봇의 문제가 완전히 보완돼서 다시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경기 이후 웨어러블 로봇을 타는 목적은 완전히 다르다. 먼저 훈련 목적이 아닌 의료 목적으로 로봇을 탄다. 의료 목적에서 웨어러블 로봇의 역할은 나의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마비 장애를 입은 사람은 다리의 운동 능력이 확연히 떨어지고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어 다리 근육이 약해진다. 또한 오랫동안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허리에 무리가 가거나 등을 굽히고 있는 자세가 되기 쉽다. 따라서 보행 자세를 취함으로써 자세를 바르게 해주고 다리 근육을 수동적으로 움직여 줌으로써 더 이상 근육이 약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을 위한 치료 목적으로 로봇을 타기 때문에 ‘로봇 훈련’이 아닌 ‘로봇 치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의료 목적으로 로봇을 사용할 때에도 경기를 위한 훈련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컨디션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병원에서 훈련을 하다 보면, 로봇에 이상이 생겼을 때에 정비할 수 있는 정비 도구가 없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문제점을 고치기 어렵다. 따라서 한 번 로봇에 문제가 생기면 로봇 치료를 중단하고 로봇을 카이스트로 보낸 뒤 정비되어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로봇 치료에는 훈련이라는 마감일이 없기 때문에 로봇 훈련에 비해 긴장감이 덜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로봇이 경기 목적, 의료 목적 두 가지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로봇을 타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상황에 따라 행위의 명칭부터 목적, 훈련의 분위기 등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사이배슬론 경기 완료 후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 경기장에서 찍은 사이배슬론 팀 사진이다. 가운데가 필자이다. 사진 본인 제공
사이배슬론 경기 완료 후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 경기장에서 찍은 사이배슬론 팀 사진이다. 가운데가 필자이다. 사진 본인 제공

사이배슬론을 위한 훈련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과 경기 전과 경기 후에 로봇을 타는 것이 어떻게 달랐는지 정리해 보았다. 나는 사이배슬론에 파일럿으로 참여함으로써 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장애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사이배슬론을 통해 장애를 약한 것이 아닌 개인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되었다. 사이배슬론은 공학의 발전을 보여주는 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능동적인 주체로 존재할 수 있는 장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2021년 현재 기준으로 2회까지 개최된 사이배슬론 국제대회가 더욱더 영향력 있는 대회로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면서, 로봇 공학과 장애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_이주현 :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외골격로봇 부문 동메달 수상, 현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부생, 현 이화정치사상연구회 학회원.

* 이 글은 비마이너가 공동기획한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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