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상희의 삐딱한 시선

수동휠체어에 갇혀 수동적인 삶을 살다

나는 모든 일상생활 영역에서 보조가 필요한 중중장애여성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장애가 있었지만, 부모님 집은 계단만 있는 3층 단독 주택이라서 외출 한 번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도 나를 위한 편의시설이 하나도 갖추어 있지 않았다. 다니던 특수학교에서 하교하고 돌아오면 줄곧 방 안에 머물렀다. 그 시절 나의 꿈은 장애가 나아서 걷는 게 아니라, 내 장애에 맞춰서 개조된 집에서 불편함 없이 생활하면서 바깥 외출하는 것이었다. 집 안에서 휠체어를 타고 싶어도 바닥이 손상된다는 이유로 휠체어조차 타지 못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단순히 바닥 손상 때문에 휠체어를 못 타게 했던 것보다는 가족이 나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가 더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외출할 때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유일한 이동 보조기기로 수동휠체어를 이용해야 했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밀어주는 사람이 이끄는 대로만 다녀야 했다. 소음으로 시끄러운 시내라도 나가게 되면 휠체어 밀어주는 사람과 전혀 소통할 수가 없어서 친한 사람과 마주치더라도 인사조차 못 나누고 그냥 지나치게 될 때도 많았다. 방 안에 갇혀 지내는 것처럼 외출해서도 수동휠체어에 갇힌 것만 같았고, 한 번이라도 마음껏 이동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특수학교에서 한 장애 학생이 모양은 휠체어인데도 뒤에서 누가 밀어주거나, 손으로 바퀴를 밀지 않고도 조이스틱 하나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바로 그 순간! ‘저 휠체어만 있으면 나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흥분되었다. 그날 이후로 짝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자동으로 움직이는 휠체어 생각만 매일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전동휠체어를 타려면 상위 1%의 경제적 기반을 갖춘 장애인이거나, 로또 복권에 당첨될 만큼 운이 좋아야 했다. 1년에 1대, 장애인 1명만 지원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정 형편도 좋지 못하고 운도 좋지 못했던 나는, 그저 갖고 싶은 바람만 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점점 커져갔던 바람과는 별개로 나는 꽤 오랜 시간 수동휠체어에 동상처럼 가만히 앉아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한 장애인이 전동휠체어 조이스틱을 운전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 중증장애인이 전동휠체어 조이스틱을 운전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나의 첫 날개, 전동휠체어! 그러나…

스무 살이 되면서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게 되었다. 단체 활동을 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얻게 되자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전동휠체어를 가질 기회였다. 아는 분이 추천해 주셔서 전동휠체어 보급 사업에 신청했는데, 드디어 운이 좋게 선정되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짝사랑하던 대상과 마침내 사랑이 이루어진 것처럼 무척 설렜고, 황홀했다.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언제든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하늘을 나는 새가 된 것만 같았다. 그 해방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전동휠체어를 얻은 이후로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동휠체어 덕분에 혼자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장애여성단체에서 상근 활동가로 채용되었으며, 가족으로부터 독립도 하였다. 스스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은 곧 삶의 변화에 대한 욕망으로 번졌다. 누군가가 이끌어주는 삶이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동휠체어는 단순한 이동보조기기가 아니라 내 삶을 제대로 살아가게 해 준 기적의 날개였다.

그러나 날개만 달았다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새가 날갯짓하며 날고 싶어도 작은 새장에 갇히면 그만인 것처럼, 막상 밖에 나가려고 하면 전동휠체어가 씽씽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독립하기 전에 살았던 부모님 집 근처에는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20년 전만 해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하철 역사는 극히 드물었다. 독립을 반대하였던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출퇴근을 강행하면서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엘리베이터 있는 지하철역을 이용해야만 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동안 길에 목숨을 내놓았다. 좁은 인도로 달리다 보면 턱과 공사 설치물 등으로 가로막히는 일이 빈번해서,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차도로 달려야 하는 상황이 잦았다. 그러면 도로의 차들은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려댔고,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때는 그렇게 위험을 자초해서라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목숨을 걸고 이동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을 오래 설득한 끝에 독립하게 되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하철역과 가까운 집을 얻었다. 비로소 진짜 이동의 자유를 맛보았다. 독립한 후에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전동휠체어로 달리고 또 달렸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탈출한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세상 어디든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아는 사람과 식사라도 하려면 턱이 없는 식당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열심히 경사로가 설치된 식당을 찾아 헤매다 보면, 겨우 비싼 패밀리 레스토랑만 가능할 때가 많았다. 나는 분명히 전동휠체어란 날개를 달았는데도 사회는 자꾸 날개를 꺾으려 하고 다시 새장으로 가둬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전동휠체어 타고 나가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전동휠체어가 문제가 아니라 비장애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가 바꿔 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완벽한 보조기기는 없다

어느덧 독립한 지 17년이 흘렀고 전동휠체어를 타게 되면서 장애인에게 보조기기가 얼마나 중요한 수단인지 몸으로 체험하였다. 독립한 후 한동안은 집 안 편의시설 설치에만 집중했다. 부모님 집에 살 때는 꿈조차 꾸기 어려웠던 일을 하나둘씩 실현했다. 급여를 받는 대로 집 안에 편의시설 설치하는 데 주력했으며, 주택 개조 사업에 꾸준히 신청하여 내가 원하는 집 형태로 바꿔 갔다.

집에 있는 리모컨들. 독립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집에 있는 기기들을 리모컨 하나로 작동 가능한 자동화기기로 바꾸었다. 사진 김상희
집에 있는 리모컨들. 독립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집에 있는 기기들을 리모컨 하나로 작동 가능한 자동화기기로 바꾸었다. 사진 김상희

우선 방 안에 전등을 리모컨으로 켜고 끌 수 있게 설치하였고 웬만한 가전제품은 리모컨이 있거나 블루투스로 작동이 가능한 것으로 바꿔 나갔다. 가장 애착이 많은 보조기기는 전동침대이다. 이 전동침대 역시 지원받았다. 벌써 지원받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전동침대를 지원받은 뒤로 나의 독립이 더 독립다워졌다. 일정 시간 외에는 보조인이 없이 밤에 홀로 있어야 했는데 일반 침대에 앉아 있다가 넘어져서 큰일이 날 뻔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긴 밤을 누워만 있기에는 무료했고 잠도 잘 오질 않았다. 그래서 보조인이 퇴근한 후에는 혼자 앉아서 컴퓨터 하다가 자고 싶으면 뒤로 벌러덩 누워서 자곤 했는데 가끔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 넘어진 자세에 따라 크게 다칠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동침대가 생긴 후로는 리모컨으로 등받이 각도 조절이 가능하게 되어 넘어지는 횟수가 줄었다. 넘어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안심했던 어느 날,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컴퓨터를 하고 잘 시간이 돼서 등받이를 내리려고 리모컨을 눌렀는데 작동이 안 되는 것이었다. 자동차는 고장 나면 24시간 출동하는 서비스가 있지만, 전동침대 같은 보조기기 제품들은 그런 서비스가 없다.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야 했지만, 스스로 몸을 전혀 못 움직이는데 무슨 대책이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리모컨만 계속 눌러보는 일 외에 아무 방법이 없었다. 밤새 눕지도 못하고 아침에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만 했다. 전동침대 지원받고 마냥 좋았던 마음은 혹시 언제 또 멈출지 모른다는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은행 대출까지 받아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구입했지만

지금껏 많은 보조기기에 관심을 가지며 때로는 무리해서라도 구매했었던 나는 결국 대형 사고(?)를 크게 쳤다. 작년에 허리 통증이 갑자기 심해졌다. 결국 일상생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 달간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심각했던 허리 통증이 조금씩 나아졌다. 통증이 나아진 이유는 몸을 계속 움직이고 서 있는 운동을 자주 해서인 것 같았다. 퇴원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여러 전문가와 상담을 했고 고심 끝에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이 다기능 전동휠체어는 휠체어에 앉은 채 누웠다, 앉았다, 섰다 등 모든 동작이 버튼 하나로 가능한 고가의 수입품이다. 국내 전동휠체어가 처음 보급될 때와 마찬가지로 구매가 쉽지 않은 제품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거나 몇 년에 한 번 지원 사업 품목으로 올라와 지원 대상 1~2명에 선정되어야 탈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가격이 비싸다. 나 역시 다기능 전동휠체어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구매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어렵게 가꿔 놓은 일상이 무너져가는 상황이다 보니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루 15시간 넘게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허리가 예전만큼 버티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렸다. 정해진 근무 시간이 있어서 재활 치료도 자주 다니지 못하는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저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구매해야만 일상이 그대로 유지 가능해 보였다. 막상 구매를 결정하고 금액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다기능 전동휠체어 가격은 3,800만 원이다. 나의 급여 수준에서 몇 년을 꼬박 모은다 해도 구매가 불가능하다. 최선의 방법으로 은행 대출을 받았다. 은행 대출을 받으면서까지 전동휠체어를 구매했던 나를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는 그만큼 절박했지만 어떤 이에게는 사치 용품으로 보일 것이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명품 옷을 휘감고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뽐내는 사람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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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능 휠체어. 버튼 하나로 좌석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며, 일어서는 기능이 있다. 사진 강혜민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탄 지 1년이 되어 간다. 이 휠체어 덕분에 허리 통증은 현저히 나아졌으나, 처음 몇 주는 구매한 걸 후회도 했었다. 그동안 탔던 전동휠체어와 구동 방식이 달라서 운전도 어려운 데다 국내 환경과 맞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나의 생활 환경과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장애인권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야 한다. 다기능 전동휠체어는 부피가 크고 운전할 때 회전 반경이 넓어야 하는데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작은 역은 이용할 수가 없고 좁은 사무실 안에서는 민폐 아닌 민폐가 되었다. 내가 자주 만나야 하는 장애인들은 대출조차 받을 수 없는 이들이 많은데 그분들 앞에서 왠지 죄인이 된 느낌도 든다.

이 다기능 전동휠체어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편의시설이 설치된 자차가 있고 넓은 사무 공간을 가진 전문 직종에서 일하는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제품인 것만 같다. 특정한 소비 계층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눈치 없이 구매해서 매 순간 나의 위치를 확인받는 것 같다. 1년 가까이 아무도 의식 못 하는 싸움을 홀로 하면서 지금은 운전 방식에 나름 적응하고 사람들 시선도 목에 가시를 넘기듯이 뜨끔뜨끔 넘기고 있다. 여전히 불편하지만, 다시 되돌릴 수도 없기에 포기할 건 포기하면서 타고 있다.

장애인에게 보조기기란

다기능 전동휠체어가 필요해진 것처럼 몸 곳곳에 통증이 생기면서 점점 다른 보조기기도 필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보조기기 대부분이 수입품이고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나마 보조기기를 얻을 방법은 인터넷 검색으로 보조기기 지원 사업을 찾아서 신청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지원 사업을 찾아서 볼 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몰려온다. 한정된 지원금 안에서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방식이지만 지원 대상 선정 기준을 너무 능력 중심주의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단체에서 공고한 첨단 보조기기 지원 사업 대상은 ‘성장 가능성이 높은 역량 있는 20~30대 장애인 또는 성장 잠재력이 있는 장애 아동·청소년’으로 되어 있다. 아무래도 ‘첨단’이란 단어가 수상해 보인다. ‘첨단 보조기기’를 가질 만한 조건에는, 미래를 발전시키고 지원 재단에서 돈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을 ‘엘리트 장애인’만 해당한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신청서는 일반 공모 사업의 사업계획서 수준의 양식이라서 신청 단계부터 문턱이 느껴진다. 첨단 보조기기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고 미리 선을 긋는 것만 같다.

장애인에게 보조기기는 단순히 편리함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장애를 감추고 비장애인처럼 보이기 위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전동휠체어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뀌었던 것처럼 보조 역할만 해주면 된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도 나답게 혹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보조해 주는 수단으로써, 누구나 쉽게 지원받고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 소개

김상희. 장애여성공감에서 첫 상근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 이 글은 비마이너가 공동기획한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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